날씨가 추워요

하나마나 한 소리지만요.

by 노사임당

집에서 잠바에 목도리를 하게 됩니다. 남편은 자면서도 잠바를 입냐며 깜~~~ 짝 놀랍니다. 저는 추운 게 싫어요. 지금은 그것마저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더위를 안 탔습니다. 체지방이 붙으면서 더위도 느껴지더군요. 추위는 좀 덜 느껴지고요. 아주 공평합니다. 엿 바꿔먹고 찌운 체지방. 그러니 예전보다 손발도 덜 차고 추위를 덜 느끼지만 여전히 추운 건 싫어요. 추웠던 기억이 제 몸보다 더 호들갑입니다. 내 뼈를 스치는 찬 바람이 싫다 하네요.

동그라미도 아니고 하트는 더더욱 아닌거같네요. 한입도 안 마신 상태입니다.ㅎㅎ


이제 겨우 산책도 가고 야외스케치도 해야겠구나 다짐한 저는 무안해졌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동동 발을 구릅니다. 누가 가라고 등을 떠밀지도 집에 있다고 등짝을 때리지도 않는데 말이죠. 그래도, 누가 안 시킨 건 알지만 허구의 독자와 약속을 상기합니다. '나는! 약속을 했어! 산책도 가고 그림도 그리고! 진주를 두루 구경시키는 척하며 내가 사는 곳 나들이 갈 거라고!' 허구의 독자도 아마 잊었을 법한데 저는 기억이 나네요.


집을 나갑니다. 저는 남 눈치를 많이 봅니다. 자기 확신이 없어요. 그러니 동행이 있으면 제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을 일을 못합니다. 헤어져야 하지만 헤어지자 말을 못 하고요. 저기 가고 싶지만 상황만 봅니다. 마음이 여리고 상대를 배려하고.. 하는 건 아닌 게요. 잘 보여야 커피라도 얻어먹으니까.. 헤헤

소탐대실의 전형을 보여주는 삶을 실천 중입니다.


그래서 혼자 나갑니다. 매번 지나다니면서도 가보지 않았던 가게를 가야겠다 정했습니다. 진주 '말티고개'에 있어요. 고개와 관련된 지명에는 '티' '치' '재' '개'라는 단어가 붙는다고 해요. 그러니 눈치채셨겠지만 '고개'에 '티'까지 얹어서 제법 까꼬막 고바위입니다. 경사도가 후와~시원스럽습니다. 고개를 넘어 브레이크를 "어어어"하면서 밟다 보면 평지에 내려서기 50미터 전에 가정집이 있어요. 위치가 좀 이상은 해요. 말로만 들으면 대로변이라 상가가 있을법한데 뒤는 푹 꺼진 언덕 가장자리 근처인 데다가 방음막까지 있어 한가하게 상권이 낄 풍경은 아닙니다. 그런 곳 가정집이 어느 날 은은한 향기를 품어요. 빛으로요. 사라 스튜어트가 지은 <도서관>이라는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그런 분위기. 밖은 좀 삭막한 배경인데 저 가게 안은 따뜻한 온기와 커피 향이 은은할 것만 같은 상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바깥일은 다 잊어먹고 저 공간으로 순간이동을 하면 왠지 나를 반기는 그런 세상이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동합니다. 몇 시간이고 책만 읽으면서 주인장이 끓여내 주는 커피나 홀짝이면서 식어갈 커피와 줄어들 책장을 그려봅니다.



주변 주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갑니다. 가게 앞에도 주차장이 있네요. 혹시나 없으면 또 3바퀴 예약인지라 주차자리는 멀어도 오케이. 불만 없습니다. 그런데 불빛이 오늘따라 약합니다. 있을만한 자리에 간판도 없네요. 이거 어째 잘 못온건가? 슬 불안합니다. 아차 선글라스. 색안경을 벗으니 통통한 노란 불빛이 퍼져 나오네요. '아! 잘 왔다'. 30초 정도 밖에서 수상한 사람처럼 어슬렁거리다 들어갑니다. 카드도 있겠다. 스파게티를 팔면 한 그릇 먹고 족발을 팔면 한 발 먹고 샌드위치를 팔면 한 조각 먹지 뭐 대담하게 마음을 굳혔습니다. 간판이 없었거든요. 들어가도 딱히 무언갈 판다는 안내가 없습니다. 약간 어정쩡 몸이 45도로 틀어지려는 찰나. 연필로 쓴 것 같은 연한 글씨의 '카페'라고 적어놓은 나무판을 발견합니다. 다행이네요. 혼자서 족발 먹고 남은 건 싸고 할 뻔했는데..


둘러볼 것도 없이 테이블이 하나라고 해야겠죠? 나머지는 1인 테이블입니다. 저 혼자 온 거는 맞는데요. 어디 호출기다리는 기사님 대기석처럼 모서리에 꽂아놓은 자리에 앉기는 싫습니다. 게다가 손님도 안 올 것처럼 생겼.. 당당히 중앙, 센터에 자리를 정했습니다.


젊은 꽃소년이 가까이 오라 손짓합니다. 이리 빨리 오라네요. 주문은 자기 가까이에 있는 메뉴 판을 보고 하랍니다. 갑자기 아줌마 부끄. 그렇게 아무도 없는 작은 찻집 꽃청년과 독대합니다. 찻집에서 예상치 못한 청년과 데이트를 하며 식어간 커피와 줄어든 책을 즐긴 하루로 적습니다. 혼자 데이트 꽤 할 만한 것 같습니다. 물론 꽃 청년이 있는 듯 없는 듯 근처에 있다는 가정하에 말입니다.



겨울 초입에 쓴 글을 네모작가님 기분 좋아지실까싶어 발랄하게 올려봅니다^^

오늘도 나가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