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녀가 지나간 계절에 서서

이래서 울고 있네요.

by 노사임당

그날.

갑질녀가 예쁜 얼굴로 영하 15도의 말을 한 후. 나는 흔들렸다.



술 먹고 와 행패를 부려도 눈싸움으로 지지 않을 기분이었고. 상황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하는 사람과 옳은 소리로 언쟁도 할 기분이었지만. 자존감을 가격하니 나는 그만 흐물흐물 칼질한 지 2시간 반이 지난 '살았던 낙지'가 된 기분이었다.


새벽 4시부터 "나 일어났어요~"존재감을 과시하는 윗집 할머니 뒤꿈치 노크 소리도 올 초보다는 많이 유 해진 마당에 눌려졌던 기라도 살았었나 보다.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나 보다. 그만 잊고 있던 키 작은 아이가 깨어나 버린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어떻게 찾은 난데.

4년간 이어진 층간소음의 피해로(윗집 거주자는 다문화가정입니다) 외국인만 보면 왠지 움찔하게 되는 이상한 증상도 생겼지만. 이젠 정말 평범한 층간 소음 정도이므로 공존도 가능한 지금.


왜 다시 뒤에서 미는지 모르겠다.


아냐 아냐, 흔들리지 말자.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얼굴을 들어 잠시 천장을 본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내가 될 수 있다. 나는.


슈퍼 맞은편, 화장품 가게를 하는 손님. 일명 '아리따운' 분이 왔다. 평소 너무도 깍듯한 행동으로 실없는 농담이 주특기인 나를 약간은 긴장시키는 분이다. 오늘 당한 일을 쉽게 풀어놔야 곪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툭 던져본다.


"사장님, 가게 하시니까 당연히 이상한 사람 많이 오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상황에 맞는 말을 이성적으로 하려다 약간은 편하게 대꾸한다.

"그럼요. 이상한 사람 많죠^^"

좀 전에 어떤 사람이 계산원인 주제에 손님에게 이래라저래라했다며 일부러 찾아와 갑질한 사연을 얘기한다. 삼성페이 손님 고자질이다.


계산대로 올려놓은 밴드 상품을 계산한다.

"밴드 고구마 4,600원입니다"


카드를 주려나 했던 손님이 손을 올려 갑자기 귀로 붙인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찡긋.

"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옙,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고맙습니다"

짧은 순간 마음 써 좋은 팁까지 주시다니. 역시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거다. 오랜 장사 노하우란 몸속 구석구석 스며들어 이렇게 아무 때나 툭 하니 끄집어내어 진다.


계산대가 빈다. 평소 같으면 빨간 포장마차 간이 의자에 앉아 다리 쉼을 할 텐데.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마음처럼 몸도 앉지 못하고 부유한다.


아리따운 손님이 우유와 포도주스 그리고 두부를 더 사서 계산대에 올린다. 가신 게 아닌 모양이다.

"7,600원입니다."

"잊어버려요. 이거 마시고 기분 푸세요. 알았죠?"

계산한 포도주스를 내 손에 쥐어주며 홀연히 사라진다. 겨우 다독인 마음이 요동친다. 어쩔 수 없다. 눈물이 나 버렸다.


아무도 없다면 견딜 수 있다. 어차피 혼자서 견디며 살았는데 오히려 혼자라면 나를 잊기가 편하다. 누군가 나를 비추지 않는다면 내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음을 풀어보려 상대를 바라보니 그만 내가 보여버렸다. 흔들리고 코끝이 빨간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이.


울고 있는 나를 보게 되면 눈물은 쉬이 그치지 않는다. 이상하게 울고 있다는 인지가 되면 더 울게 된다. 드라마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주인공을 보면 감정이입이 되어 같이 그러는 것처럼. 내가 우는 모습에 내가 울컥해져서 더 서러워진다.


네까짓 갑질인간에게 지지 않겠다. 그 지독한 층간소음도 호흡곤란도 이겨낸 나다. 넌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 아마 앞으로 네가 내 눈앞에 있더라도 난 너를 보지 못할 거다. 그저 돈으로만 보아주리라.


그런 기능이 나에겐 많다. 감정 차단. 40년간 갈고닦은 내 전공 기술이다. 별 볼 일 없는 내 대학 전공이 아니다. 실전으로 익히고 닦은 기술이다. 앞으로 보여주마. 내가 얼마나 너에게 무심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러니 오늘 너 때문에 흘린 내 2방울의 눈물도 앞으로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생각할 수많은 눈물은 있다. 나를 위해주던 포도주스의 보랏빛과 번거로이 나를 위해주던 손길. 다독여 주며 내 편이 되어주던 사람 사람들.


이제 알겠다.


항상 외롭다 생각했는데. 내가 그들에게 곁을 보이지 않아서였던 거 같다. 엉덩이를 약간은 기울여 의자를 손바닥으로 살짝 치며 내어주는 그 옆. 그 곁을 조금 더 자주 내어봐야겠다. 이젠 혼자서도 더 잘 할수 있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사람이 필요한 존재 같으니 말이다.


갑질하러 왔습니다. 뒷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