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좀 봅니다.

아니, 인상요.

by 노사임당

"과일을 좀 사볼까. 아, 참 샀지? 복숭아도 사가야 되나? "

물건을 올려놓은 손님이 계산대에 붙어 서서는 고민 중이다.

물건 앞도 아니고. 내 반응을 원하기에 내 앞에서 독백 중인 걸까? 본인 좀 말려달라는 의사를 넌지시 주는 건가.

둘 중 하나려면 요거다.



"돈 많으세요?"

"예? 아냐, 돈 없어."

"아닌데, 돈 많다고 친구분들이 그러던데.."

"아휴. 예쁜 이모는 맨날 나보고 돈 많대"

"돈이 없어요?"

"어~돈 없어!"

단호하게 나오시겠다?


"집은 몇 채 있으세요?"

이쯤 되면 포기다. 손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농담을 받아줘야 한다. 매일 이 소리하는데 이젠 달라는대로 주자싶을거다.

"집? 어,12채."

"얼마 없네. 그럼 물건 더 사지 마세요."

"그럴까. 오늘은 여기까지 살까요?"

이렇게나 반가워할 줄 몰랐다 사실.

"네. 돈 아끼세요"

쐐기를 박아준다.

(사장님이 들을까 무서운 이 대화는 사장님보다 손님 편인, 계산원과 손님의 대화입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 혼자 들고 있기 힘들 때가 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어떤 결정이 최선일지 생각을 해 봐도 시원한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코카콜라 맛있다'로 10살짜리가 하듯 마지막 단어에 걸린 결정을 최종 확정 지어버리고 싶다.


가끔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심각하지 않은 일에도 공감을 얻고자 하는 것 같다. 실은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은 일에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효율을 따지며 자신을 채근하는 듯 보인다.


물론 복숭아를 사는 일은 혹시나 속으로 포도를 먹고 싶었던 큰 아들이 태클을 걸 수도 있는 문제이고. '돈 벌어다 주는 가족 구성원'의 상징성을 가진 남편이 '과일을 뭐 맨날 사노?' 하며 과일 사치에 기분이 언짢을 수는 있다.


하지만, 과일을 산다고 매번 가정 경제가 휘청하거나. 안 먹던 과자 한 봉지 사 보았다고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것만은 하지 않으리'하며 후회할 사건은 다행히 아닐 거라고 단언하듯 추측한다. 장을 보러 와놓고. 이번 계절에 들어 1년간 과일을 못 먹는 판결을 셀프로 내린 것도 아니면서. 이럴까 저럴까 가끔 보면 무척이나 안타까우리만치 고민을 한다.


그래서 판결할게요.

1시부터 5시까지 제가 아파서 쉬는 게 아니라면 고민 있으신 장보기 담당자분께 단언해 드릴게요.

"이 과일은 사세요"

"저 신상 주스는 다음에 사세요"

"건전지 리모컨에 넣으실거면 최~고급 안 넣으셔도 돼요. 오래가요."

제 기분 따라 얘기하는 거 같다고요? 제가 좀 제 멋대로 구는 듯도 보이니 부인은 못 하겠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관상은 못 봐도요. 인상은 보거든요. 그날 장 볼 돈을 얼마나 가져왔는지 인상에 그려져 있어요. 손님인 당신의 얼굴에요. 그러니 저를 믿고 사라고 하면 사 보세요. 잘 모르겠다 싶을 때 있죠. 얼굴이 중립일 경우는 당신의 기분도 신경 써서 감안해 드립니다.


예. 그럼요. 그럼요. 어서 오세요. 여기는 기분 따라 지갑 따라 장 볼 물건이 변하는 우리 슈퍼니까요.




공사가 끝나지 않은 동네 캘리포니아 길입니다. 잠시 차를 새워 사진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