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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손이 많이 가는 아이

손쓰는 걸 좋아하는 아이로 컸습니다

by 노사임당

온겨울달(섣달) 서른날 한날 (12/30 월요일)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부모와 살았다. 사실 그것만도 못 먹고 못살던 시대 사람이었던 부모님은 최선을 다한 것이니 감사하다 매일 말씀드려도 모자란다. 굶기가 다반사인 채 사는 사람도 많았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비교하여' 말하기 시작하면 행복은 가까울 수 없는 신루가 된다. 최선을 다한 부모님 덕에 인간 생존에 필요한 것들은 부족함 없이 살았다. 늘어난 입 역할이었던 내 탓도 있으니 죄송하다. 고생시킨 당사자라 불평할 입장은 아니다. 빈부격차가 커지는 세상에 살면서 더 가진 사람과 비교하여 가난한 삶이었지 굶은 적도 없고 야외 취침을 한 적도, 헐벗고 다닌 적도 없다.


소고기 먹고 싶은 욕구는 없었다. 비싼 옷을 입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좋은 집... 은 쥐 좀 안 나오는 집에 살고는 싶었네.. 쩝. 겨울에 코가 안 시린 집에 살고 싶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한이 맺힐만한 슬픔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갖지 못한 것에 마음이 쓰여 슬퍼하며 살았다. 가난이 불편해 원망도 했지만 가난에 대한 것보단 받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인 막내딸은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며 혼자 조용히 아프고 슬퍼했다. 돈이 필요하면 필요하다 말하는 언니가 부러우면서도 '부모님께 저러면 되나,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필요한 걸 필요하다고 말하다니'미웠다. 사랑받는 게 당연하다는 듯 구는 언니가 부러우면서도 미웠다. 나는 돈 필요 없는데. 나는 예쁜 옷도 필요 없는데. 그냥 상냥한 눈웃음 한 번이면 족한데. 머리 한번 쓰다듬어주면 온 세상을 가진 듯 행복할 텐데. 생각만으로 가슴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받고 싶은 마음, 그게 충족되지 못한 공허였고 욕구불만 상태였다.



부모님이 날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구멍 난 항아리 같은 아이였다. 조금 전에 준 사랑마저 금방 몸을 빠져나가 버리는, 나는 건조한, 사랑 굶은 아이였다. 비쩍 마른 아이, 사랑에 굶은 아이였다. 어제 준 사랑의 크기가 아무리 커도 오늘 사랑이 또 필요한 아이였다. 귀찮게 안아주고 볼을 비벼줄 사람이 필요했다. 넘치도록 퍼주어 내 어디쯤 구멍이 있다는 것도 잊을 만큼 관심이 필요한 아이였다. 따뜻한 눈길,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사랑받길 원했다. 하지만 바쁜 부모님은 그런 걸 줄 여력이 없었다. 밀려드는 구멍가게 손님, 채워 넣을 물건은 시장에 직접 사러 가야 했고, 그걸 직접 가져와야 했으며 아이들을 그것도 네다섯이나(한 아이는 어린 나이에 죽었다) 되는 아이를 키워야 했으며 빨리 돈을 벌고 싶었던 어머니는 멀리 있는 시내에 있는 백화점 스낵코너, 그곳에 식당까지 했으니 몸이 딱 열 개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날이었을 테다.


나는 그렇게 밥을 굶기지 않는 부모보다는 같이 두 끼만 먹어도, 손 맞잡고 함께 추울 수 있는 부모를 원했지만 아마 두 끼는 한 끼가 되고 손은 얼었으리라. 그렇게 유지되는 사회는 아니었을 거다. 바쁜 부모님은 알아서 공부도 뭐도 잘하는 위에 아이들과 달리 모자란 나를 귀찮아하셨다. 너무 바쁜데 곁을 맴도는 아이가 귀찮았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를 자주 내쳤다. 그런 거부당한 기억들은 점점 가난한 마음을 만들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얇은 잠바 하나 걸치고 걷는 기분이었다. 거추장스러웠다. 추웠다.


나는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다. 굳이 변호해 주자면 거부 받은 기억과 제거될뻔했던(태어나지 못할 뻔한) 과거는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와 안정적인 감정 생성에 방해가 되었을 테고 그러한 이유로 살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다 -부차적인- 공부에 사용할 집중력이 모자랐겠고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을 테니 하지 않았을 테고 그러다 보니 공부 못하는 뇌 구조가 고착되었을 거다. 공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선천적 아이큐보다 후천적 뇌 기능 후퇴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구차하게 구실을 만들어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이유가 될 수 없는 것. 구실로 쓸모가 없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잘 봐주고 싶겠지만 현실에 보이는 게, 살아온 걸음이 보여주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다.


태어난 것, 자의가 아니었지만 태어나게 해 주었던 어머니마저 날 태어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울 여력이 되지 않는다며 지우려 했었다. 태어난 것이 내 의지가 아닌 게 아니라 태어나지 않았어도 되었고 그게 모두에게 더 나은 방법이었겠지만 태어났다. 살고 싶지 않은 시간도 겪었지만 그렇다고 죽으려 한 적은 없다. 잉태되던 순간부터 존재를 부정 받은 나는 사랑받는다는, 까다롭고 어려운 감정에 목을 매었다.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에 휩싸일 때면 나를 다독이고 진정시키기 바쁘다. 잠깐 방심한 사이 무슨 짓이든 하는 나를 보게 된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닌 거 같은 나는 사랑받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내 글은 평범하다. 김혼비식 통찰도 김미옥식 경험도 없다. 조정래 박경리 정지아식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거대한 인간사도 못 쓴다. 조엘 H. 코언같이 웃기지도 박상영식 새로운 장르 개척도 못 한다. 불 꺼진 상태에서마저 불 냄새가 나는 아궁이처럼 가벼운 얘기에도 지식이 묻어 나와 신변잡기식 저잣거리 글이 아니게 되는 재주도 없다. 그냥 좋게 보자면 나밖에 못 쓰는 글밖에 못 쓴다. 안타깝게도 그 글은 넓게 읽힐 가능성이 없다. 나만 읽는 일기라고 썼는데 선생님이 키득거리며 읽을 때나 읽는 이가 있는 글이다.


내 감정 쓰레기통을 만들고자 시작한 글이지만 소통의 맛을 알았다. 쓰고 누군가 읽어주고 댓글도 달아주고 좋다고까지 해 주는 그런 대화로써의 글 말이다. 신세계다. 친구가 생긴 거다. 상대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에게 말할 대상은 그저 친구다.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라도 친구에게 하듯 수다를 떨고 불평을 털어놓고 슬픔을 나누고 싶어 떼를 쓰며 안긴다. 그렇게 소통의 창구 기능으로써의 글을 더 쓰기 위해 누구든 읽을 글을 써야 했다.


사소한 것들을 모아도 그게 모이면 작품이 될 수도 꽤 쓸만한 게 나올 수도 있다. 깨진 그릇 조각은 날카로움에 시선이 가 닿지만, 어떻게 버릴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 닿지만, 가우디의 건축물로 탄생한다면 그것들은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부품이 된다. 아름다움의 조각이 되는 거다. 내 글도 그렇게 모았다, 글과 그림을. 별거 아닌 글과 별거 아닌 그림을 모으면 영 아니지는 않을 거 같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글도 자꾸 끼적이고 그림도 포기하지 않았다. 쓰는 인간 그리는 인간으로 남아 책으로 친구를 만들고 싶은 나란 인간의 노력, 희망의 부산물이다. 고만고만한 것들도 모아놓으면 귀여워 보일 때가 있다. 고만고만한 것들을 꽂아놓았는데 속은 모르겠고, 겉보기에 분류 잘 된 서가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려본다. 오늘의 그림을. 오늘의 글을. 특별하진 않지만 내가 가진 난든집으로 해본다. 오늘도 친구에게 말을 걸기 위해 손을 놀린다. 오늘의 글을 쓴다. 오늘의 그림을 그린다.


(글이 어둡습니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안 쓰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어 보여 연재는 이어갑니다.

나눌 수도, 줄일 수도 없는 슬픔을 겪고 계신 분들께 조의를 표합니다)



토박이말

난든집

손에 익어서 생긴 재주



마음에 슬픔이 넘쳐 대한민국이 울음 속입니다

제주항공 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분들의 슬픔을 어찌 상상이나 할까요

인재에 화가 나지만 그것을 말하기 전에 슬픔이 너무 큽니다


참사의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기를 먼저 바랍니다

유가족분들의 마음에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합시다

그것만이 남은 이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진상 조사에 슬픔을 묻지 않도록 합시다

아픔을 슬픔을 미루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모자랍니다

먼저 가신 분들의 평안을 빕니다

감히 나눌 수는 없지만

함께 하겠습니다

그 말씀밖에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 선 작업입니다.

수채화지를 샀는데 내지 보호종이가 너무 아까운 거예요. (못 버리는 사람 특징이랄까..) 안 버리고 뭘 그려봤는데요. 얇아요. 색연필 그림으로 마무리해야겠어요. 물감 바르면 종이 찢어질 거 같아요. 진주에서 좋아하는 동네 중 하나인 옥봉동. 언덕도 산도 보이지 않게 집이 정상을 차지한 동네입니다. 며칠 전에 찍은 사진 그려봤습니다. 풍성하던 나무가 졸가리만 남은 상태입니다. 좀 풍성하게 색칠은 해 주려고요. 탄핵도 마무리되어 미친 대통령도 없고 어제의 안타까운 죽음이 억울하지 않게 규명된 후 여름을 맞을 내년 여름 어느 날을 상상하면서요. 얇으니 펜선은 잘 살아서 그리기 편했습니다.

역사가 있는 옥봉동입니다. 동네를 걸으면 이야기가 참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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