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몇 번 장을 보는것도 두어 달 넘어가니 제법 친해졌다. 조금씩 알아낸 정보도 모이니 좀 된다. 나이는 나보다 2살 어리고. 딸이 초등학교 4학년. 결혼을 늦게 했으며 집에 앵무새를 키우고 있고 일을 하고 있다. 퇴근은 4~5시 정도.
오늘은 들어오는 입구부터 하. 한숨바람이다. 입이 코보다 더 나와서는 나에게 닿을 듯 튀어나와 있다. 반쯤 벌린 입으로는 말이 나올랑 말랑이다. 가는 바늘로 구멍을 내어줘야 한다. 안 그럼 안에서 상한다, 속이. 속상한 사람 안 만들려고 살살 긁어주고 화도 좀 내게 해주어야지. 먹을거리를 가져온 그녀에게 말을 건다.
"오늘 저녁은 뭐예요?"
"하, 밥 차리기 싫어 미추어 버리겠어요"
"밥 뭐 먹을까 고민만 없어도 인생이 반은 쉬워지고 살림이 8할은 행복하겠는데 그렇죠?"
"재주도 없어서 음식도 잘 못하는데 매일 고민을 해야 되고 고민은 해봐도 시원한 답이 없고."
"왜 여자만 밥 담당인데? 왜 끝도 없는 숙제를 해야하는데!"
"그러니까요. 일은 같이 하는데 왜 적성에도 안 맞는 조리담당은 난지 몰라요."
"호호. 대충 외식하고 자주 밀키트 사 먹고 슈퍼 고깃집에 반조리 요리 사서 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돼박축산에서 이거 밀푀유나베 샀어요. 간단히 먹어야죠 뭐"
"안 먹고는 못 살까요? 안먹고 살면 딱 편한데. 먹는거 좋아하지도 않구만. 그 왜 양갱같은거 있잖아요. 설국열차에 나오는 그런거."
"아휴, 싫어요. 양갱. 양갱은 안 먹을래요."
"어? 양갱 싫으면 '음식 해야합니다' 하면요?"
"그래도 양갱은 안 먹을래요."
"아하하. 알겠습니다. 양갱 안먹게 장 많이 보시고. 편안한 저녁 되세요."
어릴때부터 먹기 귀찮으면 알약 하나 먹고 배부르는거 없을까 하며 장난을 친거 같은데. 수십년(?)이 지나도 그런건 없는거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초록창에 <밥 대신 알약>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밥을 대신하는 약은 언제나와요? 라는 질문이 있고 약사님의 대답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준하 약사입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필수로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의 경우
최소한의 부피가 있기 때문에, 모든 성분을 균형있게 1일 권장함량을 알약에 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알약으로 나오더라도 알약의 개수가 너무 많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만 식사 대용으로 나오는 음료 제품들은 있으니 식사하기 번거로우실 때는 가끔씩
이러한 제품을 활용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질문자는 중학생때부터 알약같은거 없을까 생각했는데 2023년이 되어도 그런거 없는거 같아서 질문을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먹는것에 '안 진심인 사람'은 참 많은갑다.
영양을 채우면서 알약을 먹으려면 '알약때문에 배부를 판' 이 말인데. 인간의 기술이 이 정도인건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중에 '입고 먹고 자는거'는 건드리는 거 아니라서 안 나오는건지는 모르겠다. 잠 안자고 알약으로 대체하는건 없는지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는데, 그런걸 원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캡슐형 침대에서 잠을 잔다. 집은 필요없다. 캡슐로 된 알약으로 밥을 대신한다. 옷은 일회용으로 대체한다.> 과연 이런게 미래다운 미래인건지는 모르겠다. 과학적으로 미래를 추측할 재주도 없음이고.
그냥 오늘 격하게 밥 하기 싫다. 밥 없는 날. 이런거 없을까. 갑자기 뜬금없지만, 그래서 엄마들은 여행이 좋다. 여행의 수많은 장점들을 나열하는 것 보다 밥 걱정, 끼니 걱정 안해도 되는게 여행의 가장 큰 행복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여행이 떠나고 싶은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