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쏟아지는 밴드 물건 속에서 정말 보석 같은 걸 골라내기도, 가끔은 어렵다. 사진으로 봤을 땐 수박만 하던 멜론이 직접 보니 큰 배만 하다든지. 이쁘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화면과 달리 물건 질에 편차가 너무 크다든지 할 때 말이다.
오늘 배만 해도 그랬다. 정작 사러 오신 손님들은 예전에 했던 물건보다 크고 무거워 좋아했지만. 그걸 봉지에 싼 나는 얼마나 싸게 사 왔으면 물건이 상품부터 하품까지 다 들어있냐 싶어 한숨이 나오고 있었다.
배 한 상자에 2단으로 물건이 들어있으니. 아래위에 같은 상품이 있어야 하지만, 밑에는 하품이 위에는 상품이 들어있다. 과일 공판장에서 살 때부터 밴드물건이라 점찍은 거 같다. 좋은 물건 사진으로 올리고 나쁜 물건을 적당히 넣어 한 봉지를 만든 후 싸게,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려는 수작. 이걸 수작이라고 해야 할지 상술이라 해야 할지 뭐라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나는 안 산다, 이 물건. 상품 두 개 중품 두 개 하품 한 개를 넣어 만든 5개들이 만원 하는 한 봉지를.
가끔 내가 그린 그림이 너무 근사해 "와! 나 이제 작가라고 불러도 되겠는데?"싶어 혼자 흥분한다. 어느 날은 노래가 너무 잘 되어 "노래 못하는 가수보다 내 실력이 나은데?" 싶어 녹음을 해가며 감성 충만 버스킹을 해댄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가 익숙한지 본 척도 하지 않는다.
행복하게 잠든 다음날 자신감 충만하여 다시 그림을 그리면 '어라? 이게 무슨 유치원생 그림이냐? 발로 그렸나?' 싶은 것들이 그려진다. 피, 땀, 눈물을 흘리며 연습은 하지 않았으면서 어제는 천재성에 눈물을 글썽였는데 오늘은 그냥 나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해주는 정직한 나.
유난히 귀에 꽂히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예뻤어~ 더 바랄 게 없는듯한 느낌"노래를 부르는데 또 잘 부르는 거 같다. 그런데 다음 여자가수의 노래가 나오면 삑사리가 나고 고음불가 이수근이 되어있다.
평소에 노래를 정말 잘 부른다고 생각하지 않은 가수가 있다. '아니 저런 사람도 가수를 하나? 나도 연습하면 가수 하겠네' 하며 건방을 떨지만 진심이다. 내 노래가 좋다는 것에 진심이 아니라 그 가수의 노래가 별 볼일 없다는 것이. 그러다 우연히 울림도 없고 음향시설도 부실한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보게 된다. 그런데 저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래를 잘 부르지 않다고 생각한 가수가 여전히 노래를 잘 부르진 않는다. 그런데 나처럼 삑사리도 없고 기분이 안 내킨다고 감정 삭제하고 부르지도 않고 어제 그 무대처럼 평정심을 가진 채 노래를 한다. 최고의 무대에서든 최악의 무대에서든 딱 그 정도, 본인을 가수로 만든 '상'급의 본래 실력을 보여준다.
나는 노래방 에코가 잔뜩 들고 빨간불도 켜져서 감정을 억지로 넣어주는 곳에서나 노래가 조금 되는 것과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인생 좀 짧게 살았을 때는 그 '노래 잘 부르지 못하는 가수'를 참 많이도 비난했고. 내 눈에 화려하고 근사해 보이지 않는 작가에게는 내가 깎아 만든 자를 들이대고는 '실력이 짧네, 기네' 했다. 파라핀으로 만들어놓은 자로.
그런데 오늘 <우리 슈퍼> 호객용 물건 '밴드 상품'을 보다가 스르르 '그들의 속사정같은 배 상자'를 보니 그게 아니구나 싶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상품들만 모아놓은 비싼 것'들은 그것들만을 모으기 위해 수많은 하품을 버리거나 덤핑으로 처리를 했기에 고른 품질을 유지하는 것일테니. 같은 노력과 투자금을 넣은 물건이 하품으로 나오는 바람에 버리게 된 것까지 보자면 몇 개의 상품은 그 값어치를 받아야 하고, '중'품이라 버리기 아깝지만 상자에 넣지 않을 결단까지 필요하다는 걸. 내 물건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많은 수의 '희생 배'들이 있음을.
"가수라는 이름표가 조금 과한 거 아냐?"라고 생각한 가수라도 어느 무대에서든 그 정도의 목 상태, 감정상태를 유지하며 노래를 한다는 건 흉내도 못낼 만큼의 인고의 시간과 노력으로 일구어낸 '피, 땀, 눈물의 결과물'이었음을. '한 달에 세 번 가수 빰치게 노래가 되는 나'라는 일반인으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수준의 노래 전문가이기에 가능한 실력이었다는 걸 말이다.
그래 앞으로
저 가수는 나보다 실력이..비교 불가 좋다.
이 과일은 왜 이렇게 비싸..ㄹ만 하지. 로 말을 해야하는거다.
그리고 앞으로는 뭘 집어도 상품이라는 범주에 들어있는 제품을 비싸게 사면서 불평은 아주, 아주 조금만 할거다.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우리 슈퍼 사장님 전화가 왔는데. 일 처리가 마무리 안된 것이 있어 질문을 한다는 형식을 빌어 비난이든 질책이든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 통화를 하고 보니 글쓰기가 즐겁고 매끄럽게 되지 않았습니다. 생각대로 술술 풀리지 않았지요. 그 전화가 없었으면 엄청 잘 써졌을 글일 텐데 그죠?ㅋㅋㅋㅋ혼자서 '나 혼자 작가다'생각하며 행복했는데 이 정도 외부 자극에도 별 볼일 없을 일기 같은 글도 술술 써지지 않는 걸 보며 역시 전문가, 혹은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내 피, 땀, 노력은 정직하다. 분발해야겠습니다. 그럼에도 사장님의 목소리가 귀에서 사라지면 근사하게 퇴고해놓겠습니다.기대하시길.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