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까지만 일할게요.

다른 일 구해서요. 죄송해요.

by 노사임당

"그만두려고요"만 할까?

"팀장님이나 사장님께 너무 모자란 능력의 제가 민폐 같으니 그만둘게요." 할까?


아니면,

학교에 방과 후 선생으로 취직이 되었어요. (면접이라도 보려고요 ㅋㅋ) 그동안 감사했어요.


어느 버전으로 할까??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퇴근했습니다. 캘리포니아처럼 뻗은 왕복 4차로, 지평선이 보이는 멋진 길을 달려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거든요.



물론 계산원이라는 일은 처음입니다. 점심을 굶지 않기 위해 대학 다니며 아르바이트했고 아이를 보육하는 어린이집 선생도 조금, 콩으로 건물을 만드는 대기업에 아이를 낳기 전까지 계약직으로도, 가장 최근에는 초등학교 특수반에 자원봉사도 해보고. 그 외 여러 일을 해 보았지요.


그런데 서비스업에 계산원 경험은 없습니다.

슈퍼 마트 편의점에서 일해본 적도 없고요. 생각해 보니 귀금속 아르바이트할 때 백화점 행사한다고 매대를 차지한 경험은 잠깐 있었네요. 백화점 근무도 잠깐이라 무척 재미있긴 했어요. 다리가 너무 아픈 직업이라는 기억은 남았습니다만.


예. 이 일이 처음입니다. 캐셔 일이라고 하는데 계산에 젬병이라 걱정을 하긴 했어요.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 크게 어려울 일은 없으리라 혼자 위로도 해주었지만요. 적응하고 배우고 스며들면 안 되겠나. 사실 그렇잖아요.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 초보도 가능하다고 했고 취직도 시켜줬으니 되리라 봤습니다.


남편은 일본 유학시절 외국인은 시켜주지 않는 관행의 마트에서 유능하게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이 있어 무척 호감정을 가지고 있더군요. 마트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직원 하길 바리기까지 했다며. "마트라, 나라면 참 재미있게 일한 텐데" 하면서요. 그렇게 분위기를 띄워주니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믿는 구석도 있잖아요. 어릴 때 '구멍가게 사장님의 막내 공주님을 한 경험도 있으니'요.


그럼에도 벌벌 떨면서 시작한 일입니다. 남의 돈을 만지는 직업이니 긴장이 많이 되더라고요. 도둑 안되려고요. 오해 사지 않으려, 돈 실수하지 않으려 촉각을 곤두세우며 일했습니다.


일하면서 "당신을 좋아한다"며 고백하시는 여러 여자 손님들도 계셔서 '사귀어야 되나?' 고민도 했고요. 일부러 먹을 걸 사 오시는 분들도, 슈퍼에서 마실 걸 사 주시는 분도, 다른 가게에서 산 걸 덜어 주시는 어머님들까지 계시는, 마음이 후끈후끈해지는 환상적인 곳이기는 해요.

오늘 손님 두 분이 구애의 물건으로 주신 빵과 배ㅎㅎㅎ

그것과 관계없이 사장님은 잊을까 봐 사놓은 제 물건을. 영수증에 뻔히 적힌 직원이름을 봤으면서 배달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고 굳이 이게 뭐냐 묻고요. 채소 언니가 계산을 해놓고 나중에 퇴근할 때 바로 가져가려고 저울 옆에 놔둔 걸 봐뒀다가 다른 날 일부러 불러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며 도둑 취급을 해댑니다.


손님이 없을 때 앉아서 쉬는 간이 의자를 교대하러 온 팀장은 발로 차거나 손으로 던지며 무례를 아무렇지 않게 행사합니다. 앉아있는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장 다음가는 분의 표현이 아닐까 해요. 25살의 나이이니 직급이 아니라 나이로 이해를 해주어야 하는 건가 생각해 보지만 관계없음을 압니다. 제가 헛갈려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슈퍼에 들어왔을 때는 그냥 이름으로 부르던 아이를 팀장이라 부르니 대접은 안 해놓고 팀장이 팀장다운 행동하길 바란 이율배반적인 저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얼마나 바쁜지는 알겠지만 즐거운 퇴근시간 마감을 제시간에 하지 않는 팀장이 딱 마음에 들지 않는 참이었습니다. 뭘 묻기만 하면 "뭐가요?" 하며 사춘기 딸보다 더 심하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짜증 담아 말하는데. 조곤조곤 부침개 한 판 해야 하나. 말하길 싫어하니 좋아하는 빨간 의자 발로 차기를 해줘야 하나. 혼자 상상하며 피식했네요.


동분서주 바쁜 키 작은 채소직원은 무슨 일만 있으면 자리에 없는 사람 탓을. 일단 무조건 본인은 일을 너무 잘하고 최고이지만 남들은 한숨만 난다는 걸 쉬지 않고 어필합니다. 팀장이랑 둘이 사무실에 앉아서든, 밥먹으면서. 결론은 항상 계산대에 붙어있는 제가 이 될 것 같네요.ㅎㅎㅎ


팀장님아 나 브런치 해야 해. 글 써야 한다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올리는 슈퍼 생활말이야. 그래서 일하는 거야. 조금만 평범하자. 딱 1년만. 응? 안 되겠니???


대답 없는 너에게 말은 못 하겠고 사장님에게 그만둔다고 얘기를 해야 할지 오늘은 갈팡질팡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댓글은 무척 '무적이 되는 빠워'를 받을수 있는 크립토나이트이니 살짝 기대해 보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진 씨 그림 빌려 씁니다. 감사합니다. 2000만 원에 팔아서 보답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