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한 번째 겨울 2

떠남의 준비

by 그런 날

어머니는 올해 아흔한 번째 겨울을 지내는 중이다.

어머니는 매일매일 집안의 물건을 정리한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정리가 안 된 곳이 생각난다고 한다.

하루는 옷장을 정리하고 하루는 창고를 정리하고 또 하루는 그릇을 정리하고...

말하자면 죽음을 준비하는 중이다. 죽은 후 정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자 하루 중의 일부를 죽음을 맞기 위한 시간에 쓰고 있다.


여든이 넘으면서부터 언제든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자각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겸허함과 한편으론 몸의 고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적극적 해결을 도모하는 모순된 사고의 충돌이 제법 자주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는 부쩍 옛날 얘기를 많이 하신다.

구십년이 넘게 살아온 그의 역사는 딱히 파란만장하지는 않지만 추억하기에 적당히 애틋하고 때론 아프기도 하다.


지난 봄 어느날 어머니와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지하암반수라고 강조하는 사우나에서 물기를 흠뻑 머금고 나오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제법 말갛고 투명해보였다.

길가엔 개나리가 만발하고 건넌산에 알록달록한 진달래와 철쭉과 싸리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느이 아버지가 청혼하러 직접 우리 부모를 찾아 왔더라 "


목욕 후의 홍조가 남아있는 얼굴로 이 말을 할 때 어머니의 표정은 순한 갓새댁 같았다.

70년 전의 일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말하며 어머니는 봄꽃처럼 웃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머니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 기록의 물꼬로부터 내 안의 갈망까지 닿고 싶었다.


매일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어머니는 사실 연세에 비해 건강한 편이다.

자식들의 방문이 예고되면 버스를 타고 장에 가서 생닭도 사고 갈비도 사고 두릅도 사고 새치도 사서 그 큰 장꾸러미를 손수 들고 와서 20인분이나 되는 밥상을 차린다.

아흔 살이 넘어도 만두 속과 밀가루 반죽을 직접 해서 천 개의 만두를 빚고

텃밭에 심은 알타리 무를 뽑아 알타리무 김치를 열 통씩 만든다.


생각해보면 열여섯에 집을 떠난 나는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편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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