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틀리지 않았다

by Quat


안녕. 오늘은 어제 본 흥미로운 영상에 대해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해.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시아계 남자가 복싱 경기장에 방문해 자신과 비슷한 나이처럼 보이는 흑인 남성과 반갑다는 듯 포옹을 해. 흑인 남성도 그를 알아보는 듯, 웃는 얼굴로 무어라 말을 하지. 곧이어 남성은 어떤 물건을 꺼내 그에게 전달하려는 듯 가까이 가져가며 상대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 통역을 통해 그 말을 알아들은 흑인 남성은 울컥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뒤 고개를 푹 숙이지. 그가 전달한 건 바로 '올림픽 금메달'이었어. 원래는 그가 아닌, 흑인 남성이 가졌어야 할 금메달.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아시아계 남자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라이트미들급 금메달리스트이자, 현재 제주도 서귀포시청 복싱팀 감독인 박시헌이고, 흑인 남성은 로이 존스 주니어. 미들급에서 헤비급까지 4 체급 세계챔피언을 한 전설적인 복싱 선수이자, 같은 해 서울 올림픽 라이트미들급 은메달리스트지. 둘은 결승전에서 맞붙었고 로이 존스 주니어가 경기에서 압도했음에도 편파판정으로 판정패를 당했다고 해.






이 결과는 두 선수의 삶에 정반대의 영향을 미치게 돼. 금메달을 딴 박시헌 선수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비난을 받았고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로 은퇴까지 하고, 은퇴 이후에도 대인 기피증을 앓았다고 해. 반면 로이 존스 주니어는 이 경기 이후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전향을 하게 되고 무려 34년을 활약하며 복싱계에서 전설적인 선수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어. 참 아이러니하지 않아? 승리한 선수는 되려 일찍 은퇴를 하고, 패배한 선수는 전보다 더 잘되게 되었다는 게 말이야.



만약 내가 박시헌 선수라면 어땠을까. 그저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고 어쩔 수 없이 금메달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욕을 먹고 있고, 게다가 상대는 점점 더 엄청난 선수가 되어가는 걸 보면 억울한 마음이 더 많았을 것 같아. 그런데도 그는 몇십 년 후에 상대를 찾아가 사과를 했던 거야. 수십 년 동안 자신에게는 미안함과 상처만 가득했던 금메달을 들고 말이지. 본인이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뭐가 그렇게 잘못이냐'며 되려 화를 내는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기도 해.






나도 살면서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때로는 그 사실이 부끄러워 그대로 넘어간 적도 있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그걸 실제로 하는 사람들은 드물지.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라며 모른 척하며 지나가거나, 누군가의 지적에 "그럼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거냐", "말이 쉽지, 너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냐"라며 버럭 화를 내곤 해. 결국 그 분노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지.



요즘 누군가의 행동을 보면 나를 되돌아보게 돼. 잘했다고 느껴지는 행동을 보면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비난받을 행동을 보면 '나는 저 상황에서 저렇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누군가 그런 말을 하더라.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에게 잔소리하는 게 필요하대. 어릴 때와 달리, 성인이 된 후부터는 내게 쓴소리 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지 않게 되잖아. 그러다 보니 점점 잘못된 길로 빠져들기가 쉬워진다는 거야. 결국 내가 나를 바로잡지 않으면 인생이 자꾸 꼬일 수밖에 없게 되는 거지.



자존감, 나를 사랑하는 법 등이 퍼지면서 가끔은 지나친 당당함이 서로에게 독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 본인이 잘못한 게 분명한데도 인정하지 않는 건, 당당한 게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에 가깝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 박수를 보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 분명한 건 자신이 하는 행동이 잘못임을 인정하지 않거나 아예 잘못인지조차 모르면, 당장은 아니어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생이 꼬이게 된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러니 오늘은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나는, 너는, 우리는 잘하고 있던 걸까. 그게 아니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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