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무좀은 흔한 질환이지만, 겪어본 사람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보기 흉한 외관은 물론이고, 발톱이 두꺼워지고 갈라지면서 신발을 신을 때마다 불편함이 따른다. 나의 경우는 특히 길었다. 20년 넘게 발톱 무좀으로 고생하면서, 여름마다 슬리퍼 신기를 꺼렸고, 가족들 앞에서도 양말을 벗기 부끄러웠다.
수많은 약과 민간요법을 시도했지만, 잠시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악화되기를 반복했다. 결국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결심 끝에 전문 치료를 시작했고, 그 선택지가 바로 강남 서초 르샤인 발톱 무좀 전문 병원이었다.
처음 병원 문을 열었을 때는 솔직히 불안했다. “20년 된 발톱이 과연 나아질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상담을 맡아준 의료진은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발톱은 손톱보다 성장 속도가 느리기에 완치까지 최소 1년 이상 걸린다.
꾸준히 레이저 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 건강한 발톱이 다시 자라난다.
생활 습관 관리(신발 위생, 양말 교체, 발톱 관리)가 치료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랜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이번에는 끝까지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첫 3개월은 솔직히 인내의 시간이었다. 레이저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았지만,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의료진은 “발톱은 자라는 속도가 느려 눈에 띄는 변화는 2~3개월 후부터 나타난다”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발톱 뿌리 부분에서 맑고 투명한 새 발톱이 조금씩 자라나는 게 보였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20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건강한 발톱 색깔’이었다. 그 순간, “정말 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발톱의 절반가량이 새로운 발톱으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두꺼웠던 발톱이 점점 얇아지고, 노랗게 변색됐던 부분이 줄어들었다.
의료진은 매번 진료 시 사진을 찍어 비교해 주었는데, 첫 진료 사진과 나란히 보니 변화가 확연했다. 이전에는 두꺼워서 신발이 꽉 끼는 느낌이었는데, 점점 정상적인 발톱 모양으로 회복되면서 걷는 것도 편해졌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가족 앞에서 양말을 벗는 게 부끄럽지 않았고, 여름이 와도 슬리퍼를 신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물론 과정이 항상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발톱 무좀은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하면 다시 번질 수 있다. 실제로 8개월쯤 되던 시기에 한두 군데 발톱이 다시 두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원인을 짚어주었다. “신발 소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재감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후로는 신발을 자외선 살균기에 넣어 관리하고, 매일 양말을 교체하며 위생에 더욱 신경을 썼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큰 문제없이 회복세를 있어갈 수 있었다.
1년이 가까워질 무렵, 발톱은 눈으로 보기에 거의 정상처럼 보였다. 두께는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고, 색도 투명하게 변했다. 아직 끝까지 자라지 않은 발톱 일부가 남아 있었지만, 의료진은 “지금처럼만 관리하면 곧 완전히 건강한 발톱으로 교체될 것”이라고 했다.
이 시기에는 단순히 외형적 변화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마음의 짐이 가벼워진 것을 크게 느꼈다. 오래된 콤플렉스가 사라지면서, 오랜만에 샌들을 신고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르샤인의 치료가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한 시술이 아니라 꾸준한 관리와 환자 중심의 접근이었다.
매 진료마다 사진 기록으로 변화를 확인시켜 주었고,
작은 개선에도 격려해 주어 꾸준히 치료할 힘을 주었다.
생활 습관까지 꼼꼼히 지도해 재발을 막을 수 있었다.
치료의 절반은 환자의 의지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의료진의 세심한 동행이라는 걸 이번에 실감했다.
발톱 무좀은 흔하다고 쉽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나는 20년 동안 그 굴레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1년간의 꾸준한 치료 끝에, 지금은 눈으로 보이는 변화를 얻었고 완치를 향해 가고 있다.
가장 큰 후회는 단 하나,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을까”라는 점이다.
발톱 무좀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꾸준히 관리하면 누구나 완치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르샤인에서의 지난 1년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내 삶에 자신감을 돌려준 시간이었다.
완치를 향한 여정. 그 길 위에서 나는 지금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