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엔마프 #27에 실린 글 중에서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자족적인 이 말은 외로움을 달관한 듯 보이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는 일종의 위로다. 그런데, 혼자 왔다 혼자 간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혼자 사는 것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면 그 결과는 다르다.
정부 1인 가구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2030년엔 전체 가구의 35.6%가 1인 가구이고,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합이 55.6%로 내다봤다. 다인가구 시대를 염두에 둔 사회정책과 일상생활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모두 바뀌어야 한다. 먼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 가족 소개부터 달라져야 할 판이다. 엄마 아빠 누나 동생으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이제 전체가구의 10%가 조금 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1인 가구 통계로 다시 돌아가면 한국의 1인 가구는 다인 가구에 비해 의식주에 사용하는 금액의 비율이 높고, 인간관계 만족도가 낮고, 사회적 관계망(도움 받을 사람 있음)이 취약했다. 지역적으로 본다면, 대전(38.5%)과 서울(38.2%)의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강원(37.2%)과 경북(37%)도 매우 높은 편이다. 수도권인 경기(30.2%)는 1인 가구의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다. 하지만 1인 가구의 가구수는 경기가 1,634 가구로 1,564 가구인 서울을 제치고 가장 많다(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전국 1인가구의 42.6%는 경기와 서울에 거주한다.
경기와 서울의 1인 가구 연령 비중은 30대 미만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40-50대 순이며, 60-70대도 50대 비율과 유사하다. 대도시의 1인 가구는 연령대에 따라 1인 가구로 살게 된 경로가 다양하겠지만, 이들의 현재의 삶의 내용은 다인 가구에 비해 취약해 보인다. 삶의 가장 중요한 대표적인 영역인 일과 여가의 면에서 1인가 구는 일에서도 종사상 지위별 취업자 임금근로자 중 임시, 일용 근로자가 22.6%로, 전체 임시일용근로자 비율인 21%보다 높았다. 일자리 만족도도 다인가구보다 낮았다. 1인 가구는 여가시간에 대부분 TV를 보고, 여가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다인가구보다 낮았다.
무엇하나 다인가구보다 좋은 것이 없는 1인가구는 ‘사회에 대한 신뢰’도 ‘믿을 수 없음’이 42.5%로 전체가구 41.9%보다 높았다. 삶의 객관적인 여건과 삶의 만족이 낮은 1인가구가 사회를 믿을 만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반적인 삶의 질과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관념도 낮은 사람들이 1인 가구, 그들의 시대다.
1인 가구는 모두 취약하지는 않지만 평균적으로 취약하고 더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취약한 사람들이 빈번히 속출하고 그들을 조기에 발굴해야 하는 행정당국과 지역사회 복지기관은 최근 사회적 고립과 그 극단적 결과인 고독사 예방, 공간에 자신을 가둔 은둔 청년 문제, 돌봄을 하느라 고립되는 가족 돌봄 청년, 온전한 관계망을 가지고 균형감 있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립준비 청년 등의 문제를 함께 마주하고 있다.
2023년 봄에 발표한 정부의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은 고립위험에 있는 사람들을 찾는 방안에 집중되어 있다. 빅 데이터로, 스마트 기기로, 이웃 관계망 즉 집주인 등 지역사람을 잘 아는 이웃들의 역할로 이들을 찾고 지원하는 방안에 집중하고 있다. 찾고 난 후 이들을 서비스로 연결하고 응급지원하기 위한 자원과 기금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사업의 구성은 중앙에서 운영하지만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다양한 사업방식으로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발표한 고독사 통계(2021년 전국 3,378건))에서 경기도(21.1%)와 서울(18.3%)이 가장 많은 발생비율을 보이는 것을 통해 수도권의 도시에서 발생하는 고독사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했다. 고독사하기 전에 이들을 찾는 접근을 할 때 이웃 관계망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기본계획에 포함시킨 이유는 고독사 통계에 근거한 것이다. 고독사의 최초발견자는 가족(22.4%) 아닌 지인, 임대인, 이웃 등(51.8%)이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가족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살아가는 1인 가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집주인과 이웃 지인이 이들을 접촉하고 찾아낼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하지만 이 일도 여의치 않다. 수도권의 1인 가구와 고독사 위험 가구들은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은 대학생, 임시거처라고 생각하고 계약했다가 고시원에 눌러앉은 중장년,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가족의 주민등록과 함께 있지만 실 거주지는 분리된 경우 등 행정망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공식 기록에서 조각나 살고 있는 분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필자는 고독사의 사회적 원인을 탐색하는 현장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연구는 고독사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는 지역주민의 정보와 공적 기록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살아있을 때 어떤 특성이 있었는지, 어떤 생활문제를 가졌는지 평소의 품성은 어땠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이웃들이었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의 고독사 현장 연구를 3년간 실시해 오면서 그들이 살던 집으로 찾아가 보는 것은 연구의 최초 접근이었다. 그들이 살던 집, 그 동네를 거닐며, 그의 흔적을 탐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문한 곳에서 만난 이웃들은 망자를 기억하고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런 사람이 사는지 몰랐다’,‘거기 사람이 살았냐’ 뭐 이런 정도의 대답을 듣게 된다. 일부 집주인은 그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평소의 모습을 들려줬다.
“그 사람은 몸이 아팠지만 자기 관리가 철저했어요. 해 먹지는 못해도, 시켜 먹는 것도 고급으로 시켜 먹고, 아마 좀 살았던 사람 인가 봐. 내가 더 자주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몸이 아파서 일을 완전히 안 하고 나서부터 술 담배를 너무 많이 했어요. 아픈 사람이.. 어디 다녀와서 보니까 사망해 있었어요. 나한테 편지를 써놓았더라고. 보증금을 내게 준다고. 난 나라에서 지원받는 사람이라는 소리 듣고 보증금 나라에서 가져가라고 했어요.”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분이었어요. 서울과 부산에서도 일하고 코로나 끝나고 다시 돌아왔더라고요. 사업은 다 접고 대리운전을 했어요. 항상 현금으로 월세를 주니까 얼굴을 확인했죠. 삐쩍 말라서 얼굴이 까맣고 많이 안 좋아 보였는데... 항상 월세 내러 오던 사람이 안 오니까 내가 문을 땄죠. 확인하고 신고했어요. 장례에도 갔었죠. 아들과 인사도 하고. 무연고 장례를 했더라고요.”
집주인이 이런 말을 들려주는 사례들은 그나마 좋은 사례들이다. 드러나는 모습을 중심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로 내면과 삶의 여러 면들을 파악하긴 어렵지만, 망자의 특성을 파악하는 퍼즐의 중요한 조각이 된다. 두 번째로 도움을 얻는 자료를 사회복지 정보다. 행정복지센터와 사회복지기관 등 망자에 대한 정보를 관리하고 있는 분들의 협조를 얻어 평소의 기록에 대해 정보를 얻는 방식이다. 복지기록이 있는 사망자의 경우는 인구사회적 특성, 질병, 소득 등의 기초정보들이 확보된다.
앞에 진술 중 두 번째 진술의 대상인 사망자는 기초수급자가 아니었으므로 이런 경우는 행정기록도 부족했기 때문에, 사망 시 기록과 집주인의 진술이 가장 주요했다. 망자의 사망 시까지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유는 이들의 사망에 사회적 원인을 찾기 위해서다. 이들의 삶에 어떤 순간에 제도적 지원이 마련되어 있었다면,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있었다면, 도움을 주고 현명한 판단을 지원할 관계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서 사회적 차원의 대안을 찾는다.
중장년 50-60대의 고독사 비율이 58.6%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사망할 연령이 아닌데 왜 이렇게 사망하는 것일까? 비정상적인 죽음에 대해 사회적 원인을 탐색하기 위한 접근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이들의 죽음은 모두 자살이 아니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 자체가 미지수로 남아있다. 필자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중장년 50-60대는 거의 대부분 사망 직전이나 1년 전까지 생계를 위해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일해야 할 나이이고 일하지 않으면 당장 하루도 먹고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도 일이지만, 이들의 인식엔 이런 가정이 담겨 있다. 아직 도움을 요청할 시기와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고 받을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나, 도움을 받아도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하거나, 될 대로 되라고 자신의 삶을 내팽개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있다면 얼굴색이 안 좋으니 병원에 가보라던가, 그런 상황이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해보면 긴급복지를 지원받을 수 있다거나, 고용센터에 가서 실업급여, 내일 배움 카드, 근로자 전직지원 등의 기존 제도에 대해서 정보를 얻고 대응하도록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텐데... 어떤 누구도 이들에게 관심을 주지 못했고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할 만한 일임을 알려주지 않았다. 혹은 알아서 신청하고 상담했더라도 탈락하거나 신청하는 절차에서 포기하기도 한다. 이들은 지연된 정책대상자 들이다.
‘나의 아저씨(2018, TVN, 고 이선균, 이지은 주연)’라는 드라마가 있다. 인생 드라마로 꼽는 사람들이 많은 드라마로 알려져 있다. 드라마의 다양한 장면이 기억에 남겠지만, 청각장애와 지체 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는 할머니를 혼자서 돌보는 이지은(극 중 이지안)에게 고 이선균(극 중 박동훈)이 이렇게 말한다. “손녀는 부양의무자 아니다. 할머니와 주민등록 분리하고 할머니 기초수급 신청하고 장기요양등급 받게 하면 요양시설에 입소할 수 있다”라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믿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은 바로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처럼 개인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일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결국 이지안은 할머니 수급 신청과 요양시설 입소까지 해낸다. 힘겹게 분투하던 삶이 한결 가벼워진 순간이었다. 욕구는 있으나 정책의 대상이 되지 못한 사람들, 즉 지연된 정책 대상자들을 사회적 안전망으로 안내하는 일, 이런 일을 정교하게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독사 연구를 통해 확인한 공적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던 사망자들은 어쩌면 이미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지연된 정책 대상자일 수 있다. 이들을 정책 대상으로 연결하는 데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의 아저씨’ 같은 이웃은 쉽사리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선량한 또 다른 박동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네와 직장 등 우리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갖는 관심과 애정이 적당한 도움의 선을 찾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낮아진 사회, 게다가 1인 가구와 고독사가 자주 발생하는 수도권 대도시에서 공동체, 이웃 간의 관심 이런 것을 다시 회복한다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일인 것일까?
사회적 자본을 두 가지 유형으로 설명하곤 한다. 동향, 동창 등의 구체적인 경험과 결속을 가지고 있는 결속형 사회적 자본과 비슷한 관심, 인종차별 금지 모임, 동물 구조 자원봉사 모임 등 연계형 사회적 자본도 있다. 경제사회학자인 마크 그래노비터는 정치적 후원자를 찾을 때는 강한 유대보다 실제로 약한 유대가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약한 유대를 연계형 사회적 자본이라고 설명했고, 연계형 사회적 자본은 우리를 더 넓게 만들지만, 결속형 사회적 자본은 우리는 더 좁게 만든다고 지적했다(존 퍼트남, 나 혼자 볼링 p26). 연계형의 느슨한 연결로 관계를 넓히는 것이 적대감을 줄이고 사회적 신뢰를 더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중독환자가 이용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운영하는 카페 보스턴센터(에릭클리낸 버그, 사람을 위한 장소, p196)에서처럼 자격을 전제로 한 결속 또는 지원이라는 폐쇄성이 낙인감이 되지 않도록 하는 접근도 필요하다.
느슨한 연계, 이런 활동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1호점으로 시작한 이문수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청년문간밥상은 2017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청년과 중장년 등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김치찌개를 단돈 3천 원에 제공하고 대화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어느덧 5호점까지 늘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에 1호점으로 시작한 박보아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해피인은 2019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대학동의 고시 낭인이나 지역의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청중장년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일자리 정보와 따뜻한 소통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 2호점을 개설했다.
전주시의 복지관 6개소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전주 행복라면은 2023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운영 중이며 누구든지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보글보글 라면과 함께 필요한 생활정보도 나누고 상담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세 곳 모두 밥을 매개했고 문턱을 낮춰 접수 등록 없이 이용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거추장스러운 장치들을 없앴고 비용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무료로 했다. 고립된 사람들이 낙인 없이 접근하도록 한 공동체 공간이다. 이들의 생활 욕구를 간파한 아이템으로 식사를 매개한 것이다.
이들은 식사가 연계되어 찾았고 자주 오는 분들은 안부를 물을 수도 있게 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욕구를 조금씩 드러내 상담을 하거나, 프로그램에 신청하거나, 사례관리 대상이 되는 등, 다양한 지원에 연결이 되기도 했다. 오래 걸렸지만,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면서 가능해졌다. 이들이 개점한 곳도 모두 지역사회 주민과 아주 가까운 곳의 동네 식당이나 이미 알려진 복지관의 공간이었다.
이제는 느슨한 연결의 공동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옆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살았다.’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살았던 공동체로의 복귀는 어렵다. 우리가 사는 현재는 더 느슨하게 더 경계 없이 더 유연하게 연결되고 그런 연결의 감각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때 만들어지는 막다른 것 같은 거친 삶에 찾아온 ‘연결감’ 정도의 공동체가 좋을 것 같다. 조각난 삶에서 어떤 연결감을 찾아야 사회적 돌봄이나 제도적 지원에 까지도 닿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