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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소리 Sep 07. 2024

트위스터스

빌런을 기들이는 자는 영웅일까? 빌런일까?





1. 숨겨진 시각적 서사의 달인


<미나리>에서 보여준 정이삭 감독의 영화적 서사 능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개인적으로 재난영화를 선호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이야기 전개방식이다. 플롯에 어떤 변화를 주는게 어려운 장르가 재난영화이기도 해서 반전이라는 것이 너무 뻔하다. 보통의 재난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매순간 관객의 위기감 고조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어서 카메라가 재난의 위태로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시점이 중구난방일 경우가 많다. 재난의 피해를 입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을 마구잡이로 갈아탄다. 그래서 다큐 느낌을 주려고 하는 건지 무슨 재난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주려는 건지 오리무중인 경우가 많다. 시점이 불안정적이니 이야기를 끌고 가는 진득한 중심이 없는게 재난영화의 단점이다.












그런데 정이삭 감독은 영화 속 재난에 대한 확실한 시점을 부여함으로 이야기의 진행이 매끄웠다. 카메라와 사건의 개연성은 철저하게 여주인공의 시점에 맞추어져 끌어간다. 인물의 내적갈등과 사건의 기승이 일치한다. 정이삭 감독은 전작 <미나리>에서도 아들인 데이비드의 눈높이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미성숙한 소년의 시점을 통해 이민자의 적응에 대한 어려움과 혼돈스러움과 불안 그러나 그로인해 나타나는 인간 본성적 생존력이 공감을 이끈 면이 컸다. 정이삭 감독은 기대한대로 시각적 서사 달인, 이야기꾼이 확실하다.





2. 빅스케일에 예리한 스필버그의 눈


전작<미나리>와 <트위스터스>의 장르와 프로덕션 모드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왜 할리우드는 정이삭에게 메가폰을 맡겼나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의 왕좌를 차지해온 스필버그는 총괄 프로듀서로 <트위스터스>에 참여하여 자신의 지원을 정이삭 감독에게 몰빵하였다. 그 이유는 앞서서 언급한 그의 영화적 서사 능력이 가장 우선적 이유이고 <미나리>에서 비록 작지만 간헐적으로 드러낸 빅스케일을 다루는 블럭버스터 본색이또 다른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정이삭 감독은 독립영화라는 제한성 안에서 빅스케일의 효과를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스필버그는 이 두 가지를 정이삭에게서 기대했을 것이고 그의 기대는 배신 당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에서 <미나리>는 저평가 받은 면이 있다. 마치 노련하고 관록이 높은 윤여정 배우님에게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국뽕은 차오르게 하지만 왜 좋은 영화인지 인식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독립영화 한 편으로 보여진 정이삭 감독의 역량은 상당하였다. 지난 번 필자의 <미나리> 리뷰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결코 윤여정 배우님의 역할과 연기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 언론의 관심과 보도, 그로인해 관객의 작품성 평가에 대한 혼선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이다.





3. 옥쇄의 계승자?


헐리우드의 주제와 스케일의 상징으로 백인 남성 배우인 톰크루즈를 꼽는다해도 이견은 없을 것이다. 36년만에 후속작으로 제작된 <탑건:매브릭>은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의 정통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의 쐐기를 박았다고 볼 수 있다. 부유함, 패권국가 국민의 자긍심, 마초, 잘생긴 외모 등등 미국적 가치라는 전통적인 의식이 담대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물론 세계의 변화와 흐름에서 이런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이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주 부정할 수도 없는 사실이기에 다양한 관객들의 선망을 무리없이 끌어내었다고 평한다.




그럼에도 아이러니 한 것은 2023년 개봉한 <미션임파서블 7-1>이다. <탑건:매브릭>에서 보여진 톰크루즈는 변치 않은 강함과 섹시함으로 포장이 잘 된 반면에 액션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기가 딸리는 듯한 모습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젊은 배우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이어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들게하면서 혹시 이제는 탐크루즈의 맥을 이을 백인 남성의 우월성이라는 상징의 바통을 계승할 백인이 부재한 것이 현실이지 않을까... 오죽하면 노장이 아직도... 라는 의구심이 들게 하였다. 헐리우드는 옥쇄계승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여졌다.




그런데 <트위스터스>의 정이삭 감독,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식 블럭버스터 재난영화를 전형적인 헐리우드 플롯을 따라 미국적 주제와 바이브를 놓치지 않고 만들어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진부하다 여겨 한물간 재난영화 장르에 새로운 맛을 가미한 것, 새로우면서도 헐리우드의 정통성이 훼손되지 않은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한마디로 돌풍이라 여길만한 현상이다. 헐리우드 왕좌에 앉은 스필버그는 이제 그의 옥쇄를 누구에게 넘겨야 할지 결정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트위스터스>는 이렇게 백인으로 맥을 이어 온 미국의 일상과 문화와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묵시적 메타포를 담고 있다.





4. 빌런 위에 빌런은 영웅?, 길들이는 자


너무 작품 외적인 것만 언급한 것 같다. 그만큼 현상적으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품 그 자체로도 재난영화라는 진부함을 어느정도 벗어난 수작이다. 재난의 주제라는 서사주제는 작가를 통한 의도적인 은유이거나 괜객을 통한 의도적이지 않게 해석되는 은유이기도 하다.




토네이도는 기압충돌의 결과이다. 자연현상이지만 그것이 충돌의 결과라는 것에 두려움과 걱정을 끼치는 괴물과 같은 존재이다. 날씨의 빌런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토네이도를 의인화하는 대사들을 보면 의미심장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미국 공화당을 통해 출몰한 트럼프도 만만치 않은 빌런이지만 세계 곳곳에는 전통적 가치체계의 선을 넘는 빌런들의 잦은 출몰은 세상을 흔들고 있다. 푸틴도 그렇지만 정의와 자유수호의 가면을 쓴 것일지도 모르는 젤린스키 역시 만만치 않은 빌런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토네이도의 파괴력은 우리 사회에도 끊임없이 출몰하고 있다.




광복절 8.15 0시에 KBS는 기미가요가 나오는 나비부인 오페라를 방영하였다. 독립기념관에 임명된 관장은 일제강점기 우리는 일본국적이었다는 발언을 하였다.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는 광복 직 후 친일세력이 자신의 과오로부터 국민의 시선을 호도하기 위한 전략적 반공주의와 갈라치기를 그대로 답습하다 싶은 내용으로 가득 채워졌다. 지하철 역사 내에 설치된 독도 조형물도 철거되어 버렸다. 문화적으로 스며들어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는 전략이 과거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닮았다.








영화 <트위스터스>의 여자 주인공은 토네이도의 피해를 막으려는 연구를 한 과학자이다. 그녀는 토네이도를 "길들인다" 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거친 야생의 말을 길들일 때 목장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이다. 남자주인공은 토네이도를 따라다니며 그 화려하고 위압적인 광경을 영상에 싣는 유튜브를 제작하는 "토네이도 랭거" 라는 별칭의 유튜버이다. 그는 한 때 카우보이들의 로데오 경기 선수였다. 황소가 두렵지 않느냐는 말에 황소가 두렵지만 피하지 않고 황소가 아닌 두려움을 올라탄다라는 표현을 한다.




날씨의 빌런 토네이도를 길들이는 두 사람은 아이러니 하게도 토네이도를 좋아한다. 그래서 연구하고 그래서 토네이도의 중심으로 두려움을 올탄채 돌진한다. 두 사람은 날씨의 빌런 만큼의 돌풍적인 성품과 열정을 가졌다. 사회 공동체의 전통적 가치를 흔드는 빌런을 길들일 수 있는, 빌런을 상대할 정도의 유연성과 가열찬 공격력을 가진 카우보이들의 출현도 기대된다.




트럼프 vs. 바이든, 미국의 대선 구도가 해리스 부통령으로 민주당 후보가 바뀌면서 흥미를 돋우고 있다. 더군다나 러닝메이트로 나선 팀웰즈의 출현은 재미와 기대를 더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민주당이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여 표심을 자극하기 보다도 미국의 보수적 가치를 되 돌려야 한다는 늬앙스가 캠페인에 묻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내 눈에는 팀웰즈의 출신과 경력과 지나 온 삶, 그리고 연설시 화법은 민주당 형의 트럼프로 비춘다. 제대로 트럼프의 상대가 나타난 것은 아닌지, 트럼프 길들이는 카우보이의 이미지가 팀웰즈에서 투영된다.








대한민국은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가치와 정체성의 충돌이 잦은 오늘날 급격한 토네이도는 예상을 불허하며 일어난다. 현재는 그 토네이도의 출몰은 잦고 가열차며 파괴성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다양한 가치 충돌의 이상 기후 현상에 있는 미국에는 "빌런 길들이기"를 은유하는 서사가 필요했다면 우리는 너무 오래 묵어 해결이 안 된 가치 충돌이라는 조금은 다른 양상에서 "박멸"을 은유하는 서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아무튼 대한독립은 피로 쓰여져 입으로 가릴 수 없는 사실이라는 말에 정신을 바로 세운다. 고희를 진작에 넘긴 대한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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