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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찬 Dec 04. 2021

친절함의 의무, 뻐끔뻐끔

월간 에세이.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일에 관하여 [11월]


친절함의 의무

“다정함의 의무”라는 말을 쓰다 모조리 지웠다. 의무가 되는 것은 다정함이 아니라 친절함일 테니까. 친절함은 의지로 티 낼 수 있지만, 다정함은 티라기보다는 사람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지 않을까. 그렇담 나는 다정하지 못해 애써 친절함을 베풀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이는 울타리 밖에 선 나에 관한 얘기다. 울타리 안에서의 나는, 그 안에 같이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친절함의 의무는 나를 정 없는 사람이라 정의 내리는 일련의 과정을 원활하게 진행시켰다. 나는 그걸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나를 어째선지 무자비하다 느꼈고, 실제로 어느 타인들에겐 그리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에 대해 종종 죄의식을 느끼곤 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숨 쉬는 것조차 비참하게 느껴지는 시간을 살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아서. 이 모든 것들이 지난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 또한 맞다.


이 고민을 부쩍 많이 했던 한 달이었다. 다짐 혹은 체념 그 뭣도 아닌 모호한 마음으로 고민을 갈무리 지었다. 더 친절해져 보자,라는 다짐이 어색하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밖으로 나갈수록 바깥과 자꾸만 거리를 두게 된다.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마음만을 가지고 좀 더 시간에 나를 맡겨보기로 했다. 



부록) 약간의 술이 들어가서 타자를 치는 속도의 1/2 정도의 느릿함으로 다리를 떨고 있다. 글이 너무 제멋대로가 되지 않을까 고민하지만 본래 나는 제멋대로였고, 이번 달은 그런 제멋대로의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도 부풀어 오른 채로 살았다. 다 토해낼 것이다. 술을 경유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듯하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여유 시간이 생겨서 이 답도 없는 글들을 멀쩡한 내가 한 번쯤은 다듬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쓴 글은 여전히 많은 보살핌이 필요해서. 



뻐끔뻐끔

뻐끔. 손가락도 이따금 이런 소리를 낸다. 보이지 않을 뿐이지. 아무렴. 그러니까 다음 자음을 기다리며 깜빡이는 커서가 내는 소리는 뻐끔뻐끔일지도 모른다. 입에 머금다 내뱉은 담배 연기처럼, 물속을 입술로 훑는 물고기의 몸짓처럼, 손가락도 뻐끔하고 들리지 않는 소리로 미완성의 활자로 찍어낸다. 


이번 달엔 무슨 얘기를 할까, 하던 나는 어제가 11월 1일 같다고 떠올렸다. 그렇담 11월을 아직 이틀 밖에 살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제부턴 선택해야 한다. 종이 두 장만큼만 쌓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두께에 관해 논할 것인가, 기억되기를 거부하고 모조리 사라진 시간의 잔여물을 겨우 더듬어 볼 것인가. 때로 지난 시간을 회고하는 과정은 완전한 현실의 기록이 되려 발버둥 칠수록 더욱더 신뢰할 수 없는 말들의 꼬리 잡기가 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꼈던 감정을 기록한다. 적어도 감정 그 자체는 솔직하니까.


그 누구도 사실 여부를 알 수 없음이 오히려 기록을 가장 진실된 글로 이끌어가곤 한다. 이는 내가 불확실성에서 얻는 기묘한 아늑함과 같은 논리를 공유한다. 


몇몇 사람들이(직접 알리지 않았을 뿐 나는 분명 많은 사람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 꿈에 천착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 꿈은 인간이 몸 담근 곳의 보이지 않는 여지가 얼마나 광활하게 남았는지 증명한다. 


여기서 꿈은 어떤 바람이나 잠을 잘 때 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라보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로 모든 사람은 꿈을 꾼다. 꿀 수밖에 없고, 잡히지 않는 삶의 존재는 그렇게 새겨진다. 현실이 꿈에 기대는 방식과 꿈이 현실에서 비롯된다는 과정은 아마 그렇게 맺혀지고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얘기를 늘여 놓느냐 묻는다면, 그저 이 기록의 행위에 그리 이름 붙여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생각 때문이라 하겠다. 뻐끔뻐끔. 발견하지 못한 것에는 여전히 기록되지 못한 시간이 남아있음을 증명하는 소음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나는 이걸 꿈의 소리라고 명명하고 싶다는 마음을 구태여 늘어놓는다. 



2021 11 27

되게 할 말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뭐라 쓰려니 커서만 뻐끔거린다. 이 상황 자체에 죄책감을 느낀다. 적어도 나로서 글을 쓸 땐 그런 기분을 안 느끼기를 바라면서도 그럴 수가 없다. 잘 모르겠다.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가 나란 사람이 아무런 소재가 없는 노잼인간이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가 스스로 채워지기보다는 소진된 상태란 걸 의미하는 것일지도. 나는 ‘모르겠다’라는 동사로 두 문장을 완성해 버렸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다. 잠시 아직도 못난 상태인 표현력과 어휘력을 아쉬워해 본다. 


빈속에 마신 플랫 화이트는 맛있었다.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잤는데, 와중에 새벽에 자다 말고 빈속에 약을 먹어서 속이 쓰리다는 걸 깨달았던 아침마저 잊을 정도로 맛있었다. 술, 약, 카페인 연속 섭취라니. 역시 내 몸은 답이 없다는 누군가들 사이에서 던졌던 농담 및 진담을 되뇌었다. 그저 속이 쓰린 감각에 무던해진 거려나. 별로 중요한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별 시답잖은 고민이나 할 정도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계속 쓸데없는 고민이나 하며 흘려들어오는 노래를 듣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각형 프레임 따라 마름모꼴로 기울어진 햇빛의 모양은 여전히 좋다고 생각했다. 문득 에드워드 호퍼를 떠올렸다. 이 순간이 그의 그림이 되려면 사람이 더 적었어야 했다.


거의 3주 만인가. 프란츠 카프카의 꿈에 관한 기록을 모조리 모은 책을 다시 펼쳤다. 이렇게나 꿈을 자세히 기억하고, 심지어는 일기로 기록했다는 것을 누군가는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소설가이니 그런 별난 기록을 하겠거니 하며 뭉뚱그려 생각할 수도 있고, 꿈과 잠을 구분하고 그 경계에 대한 것을 묘사한 그의 문장들이 미련 넘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런 생각 않고 그의 기록들을 읽었다. 나는 그의 모든 기록에 공감했다. 더 정확히는 그 기록과 그 기록을 남긴 그에게 공감했다. 문득 몇 년 전 꿈을 꾸며 떠올렸던 심상을 그대로 그려냈던 그림을 떠올렸다. 언젠가의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꿈은 내가 피하고 싶어 하는 사실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하곤 했다. 꿈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꿈을 만드는 주체는 누군 걸까. 꿈을 꾸는 주체인 나는 그 꿈을 원하지 않는데, 꿈을 만드는 주체인 나는 계속 그 꿈을 반복한다. 그렇게 꿈은 현실 속을 살아가는 한 개인이 그것만으론 얼마나 빈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곤 했다. 


11월 기록에 남길 만한 것들을 메모한 종이를 들고 바bar로 향했다. 언제 시간 나면 꼭 다시 가고 싶었는데, 그래서 갔다.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핸드릭스 진토닉을 주문했다. 사실 목적은 하나 더 있었는데, 이곳의 파스타를 먹고 싶었다. 저번에 너무 맛있게 먹은 탓에. 기름에 푹 잠겨 향긋해진 버섯, 고사리, 마늘을 나는 기름과 함께 퍼먹었다. 두 숟갈쯤에서 나는 내가 기름진 걸 먹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기름진 걸 먹고 싶어 한 게 거의 처음이라 생각했고, 기름진 게 먹고 싶어지는 원인이 뭐였더라 하며 언젠가 보았던 정보를 떠올리려 노력하다, 그저 기껍게 버섯, 고사리, 마늘 그리고 기름을 숟가락으로 퍼서 입안에 담아냈다. 입술이 반질반질해진 기분이었다.


욱- 하고 속이 느끼해지는 순간 그릇은 깨끗이 비워졌다. 완벽한 1인분.


아, 그냥 한 문단만 쓰고 올리려고 했는데 벌써 5문단을 썼다. 내 글은 아직 중간이란 걸 모르는 것 같다. 이걸 11월 기록으로 보내야 하나, 잘게 쪼개서 가볍게 공유해야 하나, 둘 다 보내야 하나. 그 결과는 지금 이 문장을 읽은 타인에 의해 판명 날 것이다.


술, 약, 카페인, 술 이제 다음은 약을 먹으면 되려나. 아직도 귀가 욱신거리긴 했다. 생각해 보니 새벽에 꺼내 먹은 약이 마지막이었다. 약국에 들르는 건 귀찮으니, 상상만 해도 속이 쓰린 섭취 규칙은 여기서 갈무리하기로 한다. 속 쓰리고 여유로운 시간. 꽤 마음에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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