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세이.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일에 관하여 [10월]
나의 보폭을 아는 일.
내겐 나대로 익숙한 보폭이 있었다. 어른이 된 후로 거의 6년이란 시간 동안 자리 잡은 보폭. 하루가 시작되면, 걸으면 그만이었다. 어떻게 발을 움직이며 걸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할 필요도 없었다.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 어떤 발자국이 또 남겨질지 예상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제와 닮은 것이 찍힐 테니까. 그때의 나는 잘 몰랐지만, 정말 아늑한 보폭이었다. 차곡차곡 같은 간격으로 같은 흔적이 찍힐 뿐이었다. 닮은 것이 모인 모습은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사랑스러웠다.
물론 남들보다 느린 건 아닌지, 현재에 안주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직접 살아가는 현실과 내면에 일어나는 고민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속으론 불안해해도, 관성에 의지해서라도 닮은 하루를 살아가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내게, 보폭마저 생소한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언젠가는 걸어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은 해왔지만, 직접 걷는 건 정말 다른 일이었다. 한 번도 다듬어지지 못해 수풀이 무성한 숲속. 첫걸음부터 어디에 두어야 하나 망설이는 시간이 길었다. 이 풀을 밟아도 되는지, 저 너머에 진흙 웅덩이가 있는 건 아닌지, 넘어지지는 않을지. 발걸음 하나에도 수많은 고민이 따라왔다.
그렇다고 마냥 멈춰 설 순 없기 때문에 눈 꼭 감고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보폭마저 낯선 발걸음이었다. 처음 밟아보는 땅이었다. 생소한 감각이었다. 벅찰 정도로 길게 뻗다가도, 두려움에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찔끔 옮기기도 했다. 불규칙하기 짝이 없었다. 발걸음마다 실리는 호흡의 정도마저 달랐다. 그렇게 31일 동안 31개의 다른 보폭을 걸었다. 어느 것이 맞는지 아직도 알 수 없는 채로 한 달이 지나갔다.
참으로 어리둥절한 한 달이었다. 일단 걷는 것조차 다급했던 한 달. 한 달 전이 마치 1년 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저 불안하기만 하고 의미 없는 31일을 산 건 아니었다. 그만큼 매일 새로운 나를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
이전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보폭을 내딛는 나를 처음 마주했다. 그 보폭을 내디딜 수 있는 나를 발견했고, 어떻게든 내디디려는 나를 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려는 마음을 놓지 않는 나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매일 다른 하루를 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매일 다른 감각과 관점 속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괴롭고 힘들었지만 이는 분명 확장이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확장. 성장. 발견. 그래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힘들어하다가도 감사하다고 읊조렸다. 성장하는 건 안일한 일이 아닌, 아프고 괴로운 일이라는 걸 오랜만에 깨달았다.
이제 나의 새로운 보폭을 찾아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니까. 그렇다면 지난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분명 11월도 10월과 닮은 모습으로 흘러갈 것이다. 처음 보는 땅을 밟고, 미지의 풀숲 사이에 발을 넣고,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나아갈 것이다. 어리숙해도 그런 모습으로라도 꾸준히 나아가자고 다짐해본다. 뒤돌아 섰을 때 내가 만든 길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싶다.
온실 속의 화초
어려움이나 고난을 겪지 않고 보호 속에서 곱게 자란 사람을 흔히 온실 속의 화초라 비유한다. 자칭 14살부터 집 나와 살았던 나를 스스로 온실 속의 화초라 여긴 적은 없었다. 혼자 남는 게 익숙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땐 내가 어려움에 처해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구나, 내가 힘들다고 토로해도 상대만 힘들 뿐 모든 게 그대로구나. 그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도움 청하기를 멈추었다.
그때의 난 이게 당연한 깨달음이라 생각했다. 어느 면에선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 스스로를 지나치게 내면에 가두고 말았다는 게 문제였다. 아직도 난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 어렵게 생각한다 -라는 고백을 당연하게 입에 담는다.
내면에 가두고 말았다. 이때부터 오히려 온실 속의 화초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새로운 일 앞에서도 그저 나대로 이해하고 해결하기를 반복했다. 울타리 안에서만 새로움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더 좋은 것을, 새로운 방법을 찾아볼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처음 보는 것들은 정말 많았다. 스스로도 새로움을 좇고 성장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은 온실 속에서만 이뤄졌다. 내 관점이라고 포장하면서 온실 유리창 너머로만 변화하는 순간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나는 내가 온실 밖의 세계를 나름대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온실 밖은 내가 보았던 것과는 다른, 전혀 다른 세계였다. 훅 끼쳐오는 온도와 바람에 생각보다 더 쉽게 시들어졌다. 그 순간이 반복되자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온실 속의 화초였다고.
한심한 사람이 된 기분. 거짓말쟁이가 된 기분. 하나도 기쁘지 않은 깨달음이었다. 한편으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 나란 사람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온실의 문턱에 걸쳐 앉은 기분은 그런 것이었는데, 다음 달에는 바깥세상의 나를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티
줄곧 이렇게 이야기해왔던 것 같다. 성장하고 싶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데 나는 느린 것 같다고. 느려도 나름 차근차근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그래 정말로 나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님 지금처럼 아늑하게 살고 싶은 나를 그렇게라도 달래고 싶던 거겠지. 불안해하는 건 괴로운 일이니까. 무엇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런 마음이 조금 들었다. 내가 성장한 걸 티 내고 싶다. 나 이만큼 나아왔다고. 남들에게 나를 증명해야 하는 탓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정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