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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찬 Jul 27. 2023

8. 물녘의 슴벅임

파도치는 호수. 오늘은 물녘이 나의 꿈자리다.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

우울 위에 피어난 비밀의 세계.
우울이 내게 가득 안겨주던 외로이 반짝이는 이야기들.

날짜 끝머리가 7일 될 적마다 찾아옵니다.


-8-
물녘의 슴벅임



뻐끔.


짙은 습기를 아득한 이불 삼아 그 아래로 숨어든다. 파도치는 호수. 오늘은 물녘이 나의 꿈자리다. 자장가는 사그라드는 포말, 단편적인 소멸의 반복. 손을 뻗으면 금세 닿는 거리에서 다가가지 못해 목도하기만 하는 초라한 마음을 품고, 물살 끝에서 막 태어난 포슬포슬한 포말의 부피를 시선으로 끌어안는다.


솨아-

몸을 조금만 더 밀어내면 눈을 감을 적마다 그리워하던 심연인데.


고독이 형성한 대기권의 높이는 유독 낮고 깊어서 습기가 단단히 고인다. 저 위를 향해 내뱉은 숨이 허공에 흩어지지 못해 눈가에 뚝 떨어진다. 얄팍한 호흡마저 짓누르는 버거운 중력 아래서 가볍게 부풀어 오르다가 사그라드는 포말을 환상 헤매듯 바라본다. 아, 여긴 이미 몽상인가. 시금쪽한 눈빛이 무심히 읊조린다. 수풀과 호수가 띄워올린 습기를 죄 머금은 몸뚱어리. 고독은 아담한 함이 되어 물 덩어리를 그대로 품는다.


-솨아

온몸에 안개가 차갑게 끓어오르면 깃털들이 영령히 휘날리다가 고독 아래 맺힌 이슬에 발목을 잡힌다.

사르륵 사르륵 반복되는 소멸의 속살거림은 나를 무덤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륵- 이따금의 엇박자는 여린 기류를 흩뜨려 놓으며 생애라는 생경한 감각으로 속으로 젖은 몸을 끌어당긴다. 마냥 죽은 척하던 온몸의 감각을 움찔거린다. 허리를 세우지 못해 허물어진 눈빛은 어디론가 가닿는 일조차 버겁다. 깊이 파묻힌 닻이 머리맡에 걸린 탓에 겨우 까닥이는 고개. 입안에 잔뜩 뭉개졌던 한숨이 매끄러운 구슬이 되어 톡 떨어져 굴러간다. 한 바퀴. 두 바퀴. 가느다란 실 자국. 행성 없이 궤도만 남은 세계가 덧대어진다.


고독을 공중 삼은 웅크린 몸에서 창백한 팔이 돋아난다. 헐겁게 펼쳐진 손의 끄트머리는 햐얀 선을 그리며 포닥이는 날갯짓을 좇아 휘적이고, 가슴께에선 투명하게 부풀어 오른 영혼이 동그랗게 굳어갔다. 공중의 가장자리부터 껍데기를 굳혀가던 고독의 세계는 곧 숨 쉬는 테라리움, 가장 축축한 생명을 자아낸다.


생명이 흐르니 존재를 부여해야지. 날갯짓의 주인이 나타나 곳곳에 맺히기 시작한다. 징표. 우린 꿈속에서라도 만나야 했지. 테라리움에 매달린 징표들은 물기 어린 꿈을 지어냈다. 새하얀 무덤. 윤곽선을 잃어버린 행성.


솨아-

하얀 무덤을 어루만져주는 건 파도뿐이었지.


illustration by s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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