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2002년을 돌아보며

by 은빛바다

20년 넘게 같이 산 마누라가 바로 비서실에 조화연이야.


진짜 죽어라 쫓아다녔지. 주위에서 용역이 정규직을 꼬신다고 비난해도 개의치 않았어. 진짜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좋은 걸 어떻게 해.


사실 인천본부로 근무지를 배정받고 처음 보자마자 고백했어. 그때부터 화연은 나를 불편하게 여기고 피했지.


김구영 대리와 결혼하고, 금방 이혼하고. 정말 힘들었어.


뭔가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더라고.


새벽에 집으로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무조건 질렀어.


당신이 이혼을 하건 말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이 남의 애를 낳고 설령 거지가 돼도 나는 받아줄 거라고.


나중에 들었지만 이혼 뒤 남자를 못 믿겠다고 외면하던 시기에 내가 한줄기 빛이었대.


결혼하면서 고민이 많았어. 여성 정규직과 남성 용역직이 맺어지는 게 흔한 일이 아니거든.


누구는 화연이 이혼녀라 하자가 많아서 용역 청경과 재혼한다는 말도 했어. 진짜 만나서 뺨따귀를 올려붙이고 싶었지.


허튼 소리 듣지 않으려고 청경 그만두고 배관업을 배우기 시작했고, 화연도 사직서를 냈어.


이혼녀라는 딱지가 은근히 인사 고과에 반영되더라.


더구나 김 대리가 지방으로 전출 갔지만 연고지가 인천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거든.


인사이동 때 아무리 다른 지점으로 돌린다고 해도 인천본부에 교육이 있으면 서로 만날 수밖에 없었지.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도 마주칠 수도 있잖아.


나중에 김 대리 그 자식은 부장까지 승진했어. 화연은 승진이 어렵고, 그 인간은 만나기 싫고. 지금 돌아보면 사직서를 낸 게 잘했어.


그게 나와 고생의 시작이었다고 해도 말이야. 고등학교 시절에 전교 5등 안에 들고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딸이 지금은 배관공이나 하고 있으니 친정에서는 기가 막히겠지.


어쨌거나 지금은 나랑 잘 살고 있잖아.


우준은 용우회 회장을 그만 뒀어.


나나치킨에서 부회장 성일과 총무 영진과 만나 솔직하게 털어놓았대. 어머니의 뜻을 따라 목사의 길을 가려고 한다.


내가 추측하건대 지쳤던 거야. 또한 용우회가 자기 의도대로 되지 않으니 실망했던 거지. 축구팀처럼, 용우회를 만들면 정규직과 용역의 갈등이 사라지리라고 여겼나 봐.


영진이 반발하면서 욕이란 욕은 다했다고 하더군. 이렇게까지 만들고 그만 둔다고? 우리가 네가 갖고 노는 장난감이냐? 변절자. 배신자. 사이코.


우준의 고민도 컸던 것 같아. 총무과에 퇴직 의사를 전달한 뒤에 혼자 안내 데스크에서 중얼거리더라.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또 도망치는 건 아닌가…….’ 이러고 말이야.


유학까지 다녀와서 한동안 서울 대형교회의 부목사로 일했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지방 도시로 내려가 청소년 선교를 하고 있대. 아무래도 연약한 자를 돌보려는 의지를 버릴 수 없던 거지.


그 지역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고 들었어. 아마 우준의 성격을 봐서 평범한 목사로 지낼 것 같지는 않아. 그게 정의 실현인지 뭔지 모르지만 말이야.


항상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어. 잘 하고 있을 거야. 그 동안 나이를 먹고 한강은행에서 지냈던 경험도 쌓았으니 전보다 더 나아졌겠지.


무슨 이유인지 주 과장은 노조위원장 선거에 나갔어. 애초부터 그게 목적이었는지 모르겠어.


축구팀 회장을 맡으면서 판단을 내린 거지. 자기 위치에서 확실한 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이야. 축구팀을 등에 업고 압도적으로 당선됐지.


재선 하려고 축구회원에게 치킨 사주면서 친목질이나 하던 신 노조위원장은 닭 쫓던 강아지 꼴이 되고 말았지.


지점마다 돌면서 선거 유세를 하는 동안 주 과장은 가발을 쓰고 다니더라. 훨씬 젊게 보이더라구.


여전히 용역직원에게도 친절하게 대했어. 인천본부 노조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정 여사가 인사하면 잘 받아주더래. 어떻게 활동을 했는지 재임 기간 동안 노조 활동도 나름대로 좋은 평을 얻었대.


노조위원장은 사모임에 가입하면 안 되거든. 주 과장이 축구팀을 탈퇴했지. 우준 같은 총무도 없지.


결국 축구팀은 해산됐어. 누가 그렇게까지 자기 희생을 하면서 팀을 이끌어가겠어.


다음 총무를 누가 맡느냐고 서로 떠밀다가 삼산동 지점 어느 대리가 이어받았어.


토요일 아침마다 보내는 모닝콜은 사라지고, 매주 보내던 소식지도 사라지고. 회원에게 연락도 잘 안 하고. 회비도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고. 다른 팀과 시합을 잡지 않고. 아예 출석하지 않는 날도 있고.


어이없게도 자기 회사 축구팀인데 용역 직원보다 관심이 없는 거야.


부서 상사들이 꺼림칙하다고 새로운 총무에게 압박을 넣었는지도 모르지. 서로 견제해야 하는 회사생활에서 그런 모임은 눈에 거슬렸겠지.


점점 나오는 축구팀 회원 숫자가 줄다가 마지막에 6명 나오는 것을 끝으로 접었다고 하더라.


용우회 회장은 영진이 됐어. 성일을 젖히고 지가 한다고 나서더래.


감투를 쓰니까 사람이 변하더라. 기사 주제에 지점에서 어깨를 으쓱거리고. 자기랑 다툼이 있었던 신입 직원에게 반말로 틱틱거리고. 심지어는 지점장 지시도 잘 안 들었대.


신진에서 제재를 가하니까 오히려 영진은 과격하게 나간 거야. 용우회 회원을 모으고 신진종합관리 앞에서 시위를 하자고 선동했어.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고작 20여 명이 임금 인상 피켓 들고 나갔다가 가위질을 당했지.


우준이라면 모를까 영진에게는 용우회를 응집시킬 능력이 없었어. 자연히 용우회도 해체의 수순을 밟았고.


손 상무는 그것까지 계산하고 용우회를 받아준 것이고. 결국 이득은 신진만 봤지.


우준이 떠나겠다고 선언한 그날 성일이 고백하더래. 자기는 용우회가 끝까지 잘 될 거라고 믿지 않았대. 절반 정도만 기대를 했다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더군.


열심히 도운 이유가 이런 모임이 있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대.


당시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용역직에 노조 비슷한 개념을 만들었으니까. 용역 직원도 뭔가 할 수 있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아무렇게나 취급을 당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 거지.


우준은 주위 사람을 도와준다는 입장에서 성실하게 노력한 것뿐이야.


인간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는 그를 존중하고 싶지만 조직이 그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잖아. 정말 옳은 일은 양심만 갖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야.


용우회가 정착이 되려면 다른 무언가가 더 뒷받침되어야 했어. 이념 같은 게 없었던 거지. 조직도 나눠서 구체화해야 했고. 그 모임이 끝까지 갈 수 없던 이유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우준은 사회복지사 같은 마인드로 희생하면서 그것으로 자기 결핍을 채우고 성취감을 얻었을 뿐이야. 하지만 성일의 말대로 실패가 아니었다고 봐.


고마운 건 있어. 나 같이 무식한 녀석이 어떤 표현을 할지 모르겠지만, 동기야 어떻든 간에 그 형이 순수하게 연약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애쓴 점은 죽을 때까지 잊지를 못할 거야.


우준이 신학생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렇게 노력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겠더라. 언젠가 당직실에서 언성을 높인 게 미안하더라.


그의 의도대로 축구공으로 모두의 마음이 모이는 곳을 만들려고 했지. 물론 그 안에도 차별이 없는 건 아니었지. 일단 정규직이든 용역이든 한자리에 모여 서로 인정해 주며 땀을 흘리고 밥을 먹었다는 거, 그게 중요한 거지.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모든 국민이 대~ 한~ 민~ 국! 짝짝짝! 짝짝! 외칠 때에도, 차별이 있었어. 훨씬 지독했지.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지고 있잖아.


그때 4강이 있기에 박지성이 나왔고 손흥민도 잘 뛰고 있잖아. 발전하고 있는 거야. 혼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 4강 이상은 안 될까? 그런 날은 오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으니까.


누군가의 노력으로, 우준과 같은 애정을 가진 자의 노력으로. 어디선가 그와 같이 한발을 내딛는 자의 노력으로.






완결.

감사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9화18-3. 어머니의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