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어머니의 소원

by 은빛바다

생활보호 대상자를 위한 복지 연립주택에서 어머니는 20년 넘게 살고 있다.


부양받을 당시 생활이 힘든 주민에게 대여해 주는 집이라는 정보를 동사무소에서 들었다.


미망인이고 아들이 둘 키우는 어머니가 혹시나 하고 신청서를 냈는데 덜컥 걸리고 만다.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다.


우현이 서울대학교 장학생으로 입학한 날, 어머니는 수화기를 들고 소식이 끊겼던 친구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친구는 오랜만에 받은 전화가 돈이라도 꾸려고 하는 건 아닌지 꺼림칙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우현이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는 소식을 알리는 순간 저쪽에서는 기죽은 목소리로 축하를 보내고 어머니는 이제까지 자신을 과부라고 비하했던 서러움을 통쾌하게 날려버린다.


결혼한 우현이 같이 살자고 해도 어머니는 이 집에서 죽을 거라며 고집을 부린다. 오붓하게 살아가는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는 싫은 것이다. 이 집은 어머니가 죽으면 자동으로 국가에 반납된다.


두 형제를 키우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은 녹록지 않았다. 힘이 들수록 어머니는 신앙에 의지한다. 교회는 그런 어머니를 음으로 양으로 잘 돌봐준다.


음식점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일자리를 잃자 장로님이 학교 식당을 소개한다. 우준이 어린 시절에 알 수 없는 고열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을 때 밤늦게 병실까지 태워다 준 이가 집사님이다.


우현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것도 이제까지 가족이 큰 사고 없이 잘 지내온 것도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전부 하나님의 은혜다.


우준의 방은 그대로다. 양팔을 뻗으면 손끝이 벽에 닿는 좁은 곳에서 우현과 둘이 생활했다. 우현이 분가하고, 우준이 시온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계속 빈방으로 둔 채 지냈다.


안방으로 들어서자 우현과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우준은 짐작한다.


“이 에미는 목사 안수를 받는 네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다. 그건 알지? 이제까지 등록금을 대준 교회와 약속도 했잖아.”


우준이 앉자마자 어머니가 손으로 바닥을 밀면서 바싹 다가온다. 어머니는 신학교에 입학한 우준이 자랑스럽다. 용우회를 만들어 비천한 자를 인도하는 것도 전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이라 여기고 있다.


“그 정도면 됐어. 너도 형처럼 장가가야지. 언제까지 거기에서 나오지 않을래?”


미리 우현과 이런 식으로 대화를 유도하기로 한 모양이다. 우준이 속한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결혼은 필수다.


“아직 그렇게…….”


“우준아.”


어머니가 말허리를 자르면서 우준의 손을 꽉 잡는다.


“네가 누구보다 착하고 정직한 거 다 알아. 너는 어릴 때부터 이 에미의 속을 전혀 썩이지 않은 아이였으니까. 철이 일찍 든 거지. 아버지가 없어서 그런가 자책도 많이 했어. 그만큼 네가 뭘 하고자 하면 무조건 믿었다. 시온의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도 말리지 않았어.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생활할 수는 없어. 너는 할 만큼 베푼 거야.”


마주 앉은 우현이 진중한 얼굴로 끄덕거린다.


군대 전역 후 우준은 인사과장으로 발령받은 우현에게 간다.


이대로는 복학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믿으니까 무엇으로든 증명하고 싶다. 그건 과거의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악 같은 것이기도 했다.


우현이 무엇을 해보겠냐고 묻자, 우준은 인천본부로 들어올 때 로비에서 만난 청경을 떠올린다.


만일 청경 빈자리가 생기면 자신을 채용해 달라고 부탁한다.


거기에서 자기가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다. 인사과장으로 용역회사에 요구하면 어려움은 없다. 자기 아는 동생이니 채용하라고 하면 그만이다.


다만 이력서에는 학벌을 고졸로 기재해야 한다.


자꾸 결혼을 요구하는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우준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안방에서 어머니와 우현이 나누는 대화가 길어진다. 간혹 어머니의 가늘게 울먹이는 음성도 애를 태운다.


우현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준의 방에 들린다.


“내가 엊그제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어. 너한테 전화를 건 날이야. 심한 건 아닌데 간이 안 좋으시대. 낯빛이 검게 변하셨잖아. 예전에 우리 키우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셨고. 어머니도 칠십이야. 너도 어머니 아들이잖아. 이제 생각을 좀 해봐라.”


거짓말이라 짐작한다. 어릴 때 우현은 그런 식으로 우준을 긴장시킨 적이 많다. 흘려들을 수만 없기에 우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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