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본부 로비에서 용우회 회장이 근무를 서는 게 든든하다는 말이 나온다.
우준이 1호차 뒷문을 열어주면 본부장이 탄다. 그 모습이 마치 한강은행에서 고용한 용역 전체가 본부장을 잘 보필하는 것 같다고 한다. 우준에게는 일을 잘한다는 칭찬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그것도 탐탁지 않다.
갑과 을의 관계는 어쩔 수 없지만 용역 전체가 본부장의 머슴처럼 인식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우준의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성일이다. 또 무슨 일이 터진 건가 싶다.
“청천동 지점 영진이가 정규직을 때렸단다.”
“뭐? 하여간 용우회 총무라는 자식이 사고만 치고 다니냐? 왜 그랬대?”
“이번에 입사한 직원이랑 홍보물 대량 발송으로 우체국에 같이 가는데 지점장처럼 뒷좌석에 앉더래. 우체국에 도착했는데 곧장 안 내리더래. 왜 문을 안 열어주느냐는 식으로 영진이를 바라보더래. 또 은근하게 반말을 하더래.”
“용역을 지 따까리로 아나? 싸가지가 없고 개념도 밥 말아먹었네.”
신입이 인천본부에 들렸을 때 본부장이 어떻게 1호차를 타는지 봤을 거 아닌가. 자기도 정규직이니 그런 대우를 받으리라 여기고 있는 거 아닌가.
“문제는 영진이가 쥐어박은 거야. 어린 게 버릇없다고.”
여기에서 사건의 포인트가 달라진다. 빵빵한 그의 덩치에 주먹을 휘두르면 흉기에 가깝다.
“어떻게 때렸는데?”
“동생 같으니까 다음부터는 조수석에 앉으라고 주먹으로 이마를 툭툭 친 거지. 신입직원이 그걸 과장한테 일러바치고. 영진이는 아차 싶어서 나한테 연락을 한 거지. 손 상무가 너한테 전화를 걸지도 몰라.”
“알았어. 내가 가 볼게.”
먼저 영진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의 경위를 파악한다. 세게 때린 것도 아니고 욕하고 싸운 것도 아니고 손등으로 이마를 노크하듯이 두어번 두드렸다고 한다. 아무리 사소하지만 무력을 사용했다.
이게 정규직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손 상무에게 전화가 온다. 용우회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쓴소리부터 늘어놓는다. 회장으로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용우회 회원은 우준을 만날 때마다 불만 사항을 건의한다. 가장 큰 사안은 역시 월급이다. 용우회가 단체로 피켓을 들고 신진종합관리로 찾아가서 항의를 하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역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용역회사와 싸우지 않을 거면 용우회를 왜 만들었느냐고 탈퇴하는 회원도 있다. 용역 직원을 모으면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았는데 자꾸 문제만 터진다.
다음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신진의 배만 부르게 해주는 꼴이 되지 않았나 우준은 머리가 지근거린다.
축구팀에 참석하는 정규직이 줄어든다. 용우회 회원이 되면 축구팀 가입을 권유하기 때문에 자연히 용역의 비중이 늘어난다. 정규직의 출전 횟수가 적어지자 아예 나오지 않는다. 마치 축구팀을 용역에게 뺏긴 모양이 되고 만다.
뒷말도 많이 나온다. 청경이 축구하다가 종아리 근육이 당겨서 객장에서 절뚝거리기라도 하면 ‘저 자식 한강은행 축구팀이라는 거 티 내려고 저런다.’ 곧장 매도한다.
용역이 정규직과 어울리니 간이 커져서 건방지게 제대로 인사도 안 한다.
우준이 계약직을 노리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온갖 시비를 들을 때마다 우준은 일일이 해명을 할 수 없고 미칠 노릇이다. 그 동안 축구팀 총무로 좋은 이미지가 망가지고 있었다.
퇴근시간을 당겨 우준은 청전동 지점으로 간다. 총무과의 허락을 받고, 업무 뒤처리를 환구에게 맡긴다. 박 기사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음료수도 사야 한다. 운영비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신입사원과 영진의 사이를 중재해서 화해를 시킨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에도 용역을 자른다고 으름장을 놨을 것이다. 이제 함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한강은행 용역이 절반이나 차지하는 용우회 덕분이다.
“나나치킨에서 한잔할래?”
우준의 제안에 영진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며 먼저 버스를 탄다. 하긴 어린 녀석이 뒷좌석에 앉아 반말로 거드름을 피웠으니 귀싸대기를 날리고 싶었을 것이다.
자취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우준은 서서히 우울해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남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시온의 집 이 목사는 자식을 낳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될 때까지 그 일을 했을까.
우준은 스스로 일어난 반감에 깜짝 놀란다.
혹시 내가 이 일에 지친 건가?
자취방에서 혼자 캔맥주나 마실까 편의점 앞을 서성이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우현이다.
“어디냐?”
우현은 대뜸 위치부터 묻는다.
“청천동. 일이 터져서 왔어.”
”용우회 때문이냐? 바쁘네. 이번 주말에 어머니한테 들려라. 나도 갈 테니까.”
“어디 편찮으셔?”
“일단 오라면 좀 와.”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알았어.”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우현이 덧붙인다.
“용우회인가 뭔가 그만 손 놓을 때가 되지 않았냐? 시온의 집에서도 충분히 했잖아.”
우준은 씁쓸하게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본다. 경모를 찾기 위해 공원을 헤매고 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너도 평생 그렇게 매달릴 수는 없어. 결혼도 해야 하고, 어머니도 돌아봐야 할 나이야.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