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불륜

by 은빛바다

중앙지점에서 정 여사가 청소 도구를 들고 나온다. 여전히 명랑하다. 어깨까지 올린 손을 반짝거리며 안내 데스크의 우준에게 인사한다.


“안녕. 오늘은 별 일 없어?”

정 여사는 산악회에서 탈퇴했다.


이상하게 지점장실 휴지통이 자꾸 떠오르는 거야. 나중에 치워도 충분했는데 뒷말이 나올까 봐 신경이 쓰인 거지. 그거 비우고 나오면서 그 인간들을 딱 마주쳤잖아. 너무 쪽 팔려서 더 이상 산악회는 못 나가겠더라고 툴툴거렸다.


청소부면 뭐 어떨까.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내가 자신 있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용우회 회장인 우준은 그런 정 여사의 태도에 반감이 없는 건 아니다.


정 여사도 용우회 회원이다. 우준이 설득했다.


원래 신진종합관리 직원이라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지는 않았다. 다만 용우회 회원이라는 점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 정 여사도 가입 후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며 뿌듯하게 여긴다.


무조건 좋은 것만 아니다. 용우회 회원이 불미스러운 사건을 만들면 우준이 책임을 진다. 곧장 달려가서 사건을 파악하고 용우회 차원에서 처리하거나 정규직 혹은 신진과 잘 중재해서 마무리를 짓는다. 손 상무는 이런 점을 고려하고 용우회를 받아준 것이다.


우준은 용우회 회원이 자부심 갖기를 바란다. 더불어 그에 맞는 행동을 원한다. 아무리 경비를 서고 쓰레기를 치운다 해도 그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내가 성실하게 일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를 지키는 그 자체에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마인드는 너무 순진하다는 지적을 당하지만, 우준은 그것이 내 주위를 바꾸는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조화연, 김구영, 결국 이혼한대.”


정 여사가 방금 나온 중앙지점을 가리키며 소곤거린다.


‘본부장님, 내려가십니다.’ 하고 인터폰을 주던 화연은 이제 비서실에 없다. 중앙지점의 카드계의 김구영 대리와 결혼했다.


중재는 본부장이다. 식사 시간에 김 대리를 눈여겨 보던 본부장이 남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비서실 화연에게 슬쩍 운을 뗀다. 화연도 싫지 않은 기색이다.


둘이 사귀어 보라는 제안하고,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해 주는 등 본부장은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 결혼하면 가전제품은 전부 자기가 마련을 해준다고 약속한다.


지점장이 모인 월례 회의에서 아예 둘이 연인이라고 공표를 해버린다. 한강은행 베스트 커플,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다. 본부장은 인천에서 재임하는 동안 자기가 한 부부의 인연을 맺어줬다고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혼 발표까지 이르는데 순식간이다. 화연은 보험 업무로 자리를 옮긴다.


주례는 당연히 본부장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김 대리 부부는 본부장 사택으로 인사하러 간다. 김 대리 입장에는 든든한 연줄이 생긴 것이다.


여기까지는 훈훈한 이야기다. 결혼 발표가 나자 술이 깨지 않은 환구가 반나절 동안 기사대기실에서 나오지 않은 걸 제외하고는 말이다.


신혼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도 곧장 김 대리의 불륜이 터진다. 상대는 중앙지점에서 근무하는 계약직 차소은이다. 김 대리가 직원 대출을 받아 소은의 오피스텔 전세 보증금을 내 줄 정도다.


예전부터 남 모르게 그렇고 그런 관계를 키워왔는데 중간에 본부장이 끼어든 것이다.


불륜이 발각된 곳은 비디오방이다. 오피스텔에서 만나면 걸리지 않았을 텐데, 김 대리의 결혼이 소은에게는 큰 질투였다. 소은이 바깥에서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떼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비디오방으로 간 것이다.


한강은행 직원은 인천 어디에나 있다. 더구나 김 대리는 본부장의 중재로 결혼식을 올린 나름 유명인이다.


비디오방에서 나온 둘은 건너편 갈빗집에서 회식 중인 용현동 지점 직원에게 걸린다.


용현동 어느 과장이 삼겹살 쌈을 입에 넣는데 김 대리와 소은이 손을 잡은 채 비디오방 간판이 붙은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창문을 두드리며 “어이~~. 김구영 대리.” 불렀는데 갑자기 후다닥 소은이 골목으로 뛰어 도망쳤다.


곧장 여직원의 휴대폰을 통해 화연에게 연락이 간다. 화연은 집으로 돌아온 김 대리를 집요하게 추궁한다. 큰외삼촌이 편찮으셔서 병문안을 가야 한다는 거짓말로 알리바이를 만들었던 김 대리는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불러온다.


화연은 짐 싸서 친정으로 가고, 소문은 다 퍼졌으며, 중앙지점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난다. 그 소식을 들은 환구는 중앙지점을 태워버릴 기세로 노려본다.


중앙지점 지점장이 김 대리와 면담한다. 인사 담당인 우현도 동석한다.


변명은 가관이다. 소은이 먼저 유혹했다. 본부장님 때문에 화연과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소은과 관계를 끊고 착실한 남편으로 살아가겠다.


더 가관은 소은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오피스텔 전세 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사정하다가, 소은이 없다고 하자, 절반만이라도 달라며 골목에서 욕하며 싸웠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 대리는 사표를 내지 않는다. 대신 우현에게 지방으로 전출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면담을 마친 지점장이 한숨만 푹푹 몰아쉰다. 일부러 같이 앉은 우현이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너는 인천본부 청경보다도 못 한 놈이야.”


괜히 우현의 어깨가 우쭐해진다.


김 대리와 화연의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결국 결혼을 주선한 본부장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다.


정 여사는 한 가정이 파탄났는데 무척 고소하게 여긴다. 하긴 평소에 인사도 받지 않던 정규직이니 동정심이 일어날 리가 없다.


“바보같은 자식, 놀려면 옛날에 나처럼 아무도 모르게 놀아야지. 사방팔방으로 소문을 내고 다니면 그게 불륜이냐? 불화지. 가정불화.”


기분이 좋은지 정 여사가 빠이빠이 하더니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계단을 걸어 지하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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