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PT 또 계약직

by 은빛바다

상업 고등학교 졸업하고, 요즘은 정보산업 고등학교라고 하나? 하여간 한강은행에 고졸 정직원으로 입사하려면 전교 5등 안에는 들어야 해.


승진은 고졸 딱지 때문에 한참 느리지. 지점에서 경력을 쌓다가 눈에 띌 정도로 업무능력을 인정받으면 인천본부로 발령을 받는 거야.


진짜 옆에서 바라봐도 이 악물고 악착같이 버틴다는 느낌이 들 정도야.


반면 PT는 추천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허드렛일이나 하니까 대충 채용하는 거지.


그런 거 있잖아. 집에서 노는 딸 취직시켜 달라고 청탁하는 거 말이야. 한강은행 임원을 통해 그런 쪽으로 입사하는 거지.


아직도 그런 식으로 채용하는지 모르지만, 가능하면 인천본부 PT는 권하지 싶지 않아.


개념 있는 PT는 퇴근 후 학원에서 공부하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데, 대부분 자기끼리 어울려서 놀기에 바빠. 그렇게 다니다가 업무가 조금이라도 힘들어지면 그만두는 거야.


정규직 보장을 해주지도 않으니 승진이 되지도 않고 월급도 항상 그대로이고.


월급이라고 해봐야 당시 100만 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알고 있어.


잔심부름 좀 해주고, 커피 타주고, 탕비실이나 정리하면서 그 정도 받으면 쉽게 돈 버는 거지. 점심은 식당에서 공짜로 먹고.


더구나 PT는 일반 직원보다 퇴근 시간이 빨랐어. 근무 시간에 자기 책상에서 공부해도 업무만 지장 없으면 허용을 해줬지. 충분히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었다구.


가장 큰 폐해는 인천본부에서 근무하면서 눈만 높아진 거지.


그렇지 않아도 자기가 이쁜 것만 아는 나이잖아. 매일 대하는 사람이 번듯한 화이트 칼라에 과장 부장급이고 그들이 몰고 다니는 승용차도 대부분 중형 이상이니까, 자기 또래의 남자가 우습게 보이는 거지.


나 같은 용역 청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신용사업부에 PT로 5개월 정도 근무한 직원이 있었어. 얼굴은 예쁘장했는데 싸가지가 없기로 소문난 아이였지.


아예 퇴근 시간을 휴대폰 알람을 맞추고 일부러 자기 책상에 올려 놔. 가장 큰 볼륨으로. PT는 퇴근 시간이 빠르다고 했잖아. 다른 직원 일하는 중에 휴대폰이 울리는 거야.


- 저 퇴근합니다.


잔업이 있든 없든 부장이 자기를 쳐다보든 말든 내뱉고 곧장 나가버려.


근무 시간에도 거의 자리에 없어. 어디를 갔는지 찾아보면 탈의실에서 비슷한 성향의 여직원과 어울려 수다나 떨고 있고.


그 PT가 1층 화장실에서 큰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사정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 기다려 달라니까요. 다음 달에 50만 원 갚을 수 있다니까요.


카드가 연체되어 추심원과 통화하는 것 같았어.


작년까지 고등학생이라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고 지내다가 갑자기 통장에 수십만 원이 입금되니 씀씀이가 커지는 거야. 사고 싶은 거 카드로 지르고 보는 거지. 나중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 PT가 그만 둔 다음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어. 노래방 도우미로 봤대.


어느 과장이 시흥에 사는 동창을 만나 노래방에 갔는데 거기에 있었대. 동창 파트너로 앉았는데 처음에는 조명이 어둑해서 몰라 봤었지.


나중에 눈에 익으면서 혹시 한강은행 인천본부에서 근무하지 않았냐고 자꾸 물으니까 어쩔 수 맞다고 하더래.


자기는 이 직업이 편하고 좋대. 돈도 잘 벌고. 은행 생활이 너무 짜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고 하더라. 평소에 행실이 좋지 않아서 그런 악소문이 퍼졌는지도 몰라. 하여간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는 아이였어.


중앙지점의 경우에는 PT 대신에 계약직을 많이 뒀지.


그들을 입출금 창구에 몰아넣고 고정시키는 거야. 거기는 매일 결산할 때마다 금액이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거든. 계약직 월급이 뻔한데도 자기 돈으로 메워야 하는 거야.


생돈이 나가니 속이 쓰리지. 그에 대한 보상은 없지.


너희가 우리 지점의 특공대다. 너희가 있어야 우리 지점이 돌아간다. 너희와 우리는 하나다.


중앙지점 지점장은 회식 때마다 ‘우리’라는 단어를 쓰며 계약직에게 입 바른 소리만 했대. 다른 어감이 드는 ‘우리’였지.


정규직 전환은 기약이 없지. 차별은 여전하고. 결국 한동안 이용 당하고 버려지는 거야. 대부분 오래 근무하지 않고 그만뒀어.


반면 계약직 중에서도 불여우가 없지 않았어. 정규직을 꼬셔서 팔자를 고치려고 그랬지.


가관이었어. 진짜 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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