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준은 대대 기독교 군종병으로 보직을 받는다. 신학생이라는 이유다. 중대장 면담 때 일반 사병으로 근무하기를 원했지만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다.
선임자에게 이끌려 군복 이름표 위에 십자가가 그려진 ‘군종’ 명찰을 오바로크 친다.
근무 시간이 되면 우준은 교회로 간다. 그럴 때마다 내무반 선임은 저 자식 꿀 빨려 간다며 비아냥거린다. 군종병은 일반 사병에 비해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부대 언저리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교회는 아담하다. 승리교회.
항상 상담실 문은 열려 있지만, 평일에 교회를 찾는 사병은 없다. 하루 종일 비어 있는 이 건물이 아깝다는 탄식이 일어날 정도다.
예배 전에 찬송가를 인도하고 빵과 우유를 나눠주거나 사진기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는 게 업무의 전부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행사에만 바쁠 뿐이다. 대부분 텅 빈 교회의 장의자에 누워 있다가 돌아온다.
군종장교는 우준이 자는 모습을 봐도 개의치 않는다.
“언제 인사장교가 점검할지 모르니 안 보이는 곳에서 자라. 예배당 청소는 깨끗하게 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잖냐.”
항상 우준을 배려해주고 있다.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는 우준에게 격려하는 차원에게 몇마디 더 얹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군대는 잘 변하지 않아. 사고 없이 안 다치고 전역하는 게 우선이야. 그렇다고 주말에 햄버거나 나눠주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겠지.”
“제가 여기에서 뭘 하면 되겠습니까?”
“만일 너의 행동으로 인해 이곳에 약간의 변화라도 일어나면, 그것으로 기뻐할 수 있겠지.”
시온의 집으로 들어간 이유가 그런 변화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장애 아이들이 조금 더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까.
“군종장교님은 제가 그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믿으십니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뭔가 방법이 있지 않겠어? 하나님은 노력하는 자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시니까.”
군종장교는 항상 웃으면서 우준을 격려한다. 그 모습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지 않은 이 목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첫 휴가를 나오자 집에 상운의 연락처가 놓여 있다. 우준에게 자신이 지내는 곳을 알려준 것이다. 대성실업.
우준은 공장으로 찾아간다. 정문에서 상운의 이름을 대자 수위 아저씨가 어딘가 전화하더니 점심시간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상운은 군데군데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을 입고 나온다. 우준과 악수를 나누지만 그리 반갑지만 않다.
“점심시간이 짧아.”
가까운 분식집으로 향한다. 앉자마자 상운은 라면과 김밥을 주문하더니 손바닥으로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는다. 쿨럭쿨럭. 잔기침을 뱉고 찬물을 들이켠다. 공장 안의 공기가 안 좋은 것 같다.
“저기 뭐 하는 회사니?”
우준이 창밖으로 공장 건물을 바라본다. 딱딱한 사각의 형태가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거대한 맹수처럼 보인다. 당장 일어나 상운을 덮칠 것처럼 위험하다.
“이것저것 만들어. 나 선반 작업 배워. 이래 봬도 기술자야. 따로 숙소가 있어서 잠도 재워 줘. 이 목사님이 지인을 통해 취직시켜 준 거야. 너희 집 전화 걸었더니 군대 갔다고 하더라. 그렇게 말도 없이 떠나는 거 어딨어? 목사님은 연락해 봤어?”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 분을 만나니.”
“목사님은 너한테 아무 원망도 없어. 그리고 시온의 집, 없어졌어.”
우준은 숨이 턱 막힌다.
“마을에서 하도 반대하니까 목사님도 어쩔 수 없었지. 주민들이 데모까지 했어. 자식 교육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대. 경운기 몰던 밀짚모자 아저씨랑 몸빼 바지를 입은 슈퍼 아주머니가 피켓 들고 물러가라! 물러가라! 하는데 정말 가관이더라. 우리 떠난 다음에 동네에서 잔치를 벌일 정도로 좋아했다고 하더라.”
“애들은?”
“연고가 있는 얘는 부모님께 갔고, 부모님과 연락이 끊긴 애들은 다른 보호시설로 갔지. 사모님이 목이 터질 정도로 울었어.”
식탁에 김밥이 놓이지만 우준은 젓가락을 들지 않는다.
상운은 얼른 들어가서 할 일이 많다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연신 쿨럭거리며 손등으로 콧물을 홈친다. 기관지가 많이 상한 것 같다.
“혹시 경모는 어떻게 됐어?”
힘들게 꺼낸 질문이다.
“아직도 경모 부모님은 찾고 있대. 나중에 들어 보니까 오래 전부터 경모 부모님이 이 목사님과 잘 아는 사이였대. 믿고 맡겼는데 그 지경을 당했으니 더 원망스러운 거지.”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송곳이 되어 우준의 가슴을 후빈다.
“우준아, 너를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뭔데?”
“죄책감 갖지 말라고…….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야. 재수가 없었을 뿐이지. 정신지체아 돌보는 게 좀 힘들어? 네가 얼마 동안 시온의 집에 있었냐? 나야 갈 곳이 없어서 거기에서 살았지만 아무나 그렇게 못 해. 너는 할 만큼 한 거야. 군대 전역하면 다 잊어버리고 네 인생을 살아.”
부대로 복귀한 우준은 교회에서 낮잠을 잘 수 없다. 예배당 뒷좌석에 앉아 멍하게 십자가만 바라본다. 마치 하나님에게 뭔가 묻는 것 같다. 상운과 마지막 만남은 이 세상에 거대한 빚을 진 기분이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돌아보니 처음 보는 사병이 거수경례를 붙이고 있다.
“충성! 이병 박기영. 승리교회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이런 시간에 사병이 오는 경우는 처음이다.
“무슨 일이야?”
계급을 확인하자 우준은 말을 놓는다. 아무리 종교인이라고 해도 이곳은 군대니까.
“군종 장교님께 부탁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부탁?”
“저희 어머니가 위암입니다. 혹시 도와 주실 수는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일단 박이병을 상담실로 안내한다.
우준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사무실로 간다. 군종장교는 상담 사병이 왔다는 보고를 받자 얼른 옷매무새를 점검한다.
군종장교가 상담실로 들어가자 곧장 박이병이 일어서서 거수 경계를 한다. 왠지 그 목소리에 절박함이 있다. 우준은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 온다.
수송부에서 근무하는 박이병은 잠깐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온 것이다.
“엊그제 주임상사의 심부름을 나가면서 집에 전화했는데 여동생이 울면서 어머니가 위암이라고 했습니다. 선임과 상의했는데 자대 배치를 받은 지 두달도 안 되는 신병이라 긍정적인 반응이 없었습니다. 군종장교님께서 휴가를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더불어 이제부터 일요일마다 열심히 교회에 나오겠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휴가는 군종 장교의 권한이 아니다.
“일단 복귀하도록 해. 중대장님에게 건의를 해볼게.”
군종장교는 소속과 이름을 메모한 뒤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한다. 진정성이 넘치는 위로로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거린다.
교회 정문까지 배웅을 해준다. 다시 사병은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올리고 돌아간다. 그만큼 절박하다.
“설마 휴가 가려고 머리 쓰는 건 아니겠지. 군종장교라고 해서 물렁하게 보는 경우가 많아. 군대에 들어오자마자 어머니가 위암 판정을 받는 것도 이상하고. 안 그래?”
군종 장교가 의혹을 제시한다. 그러면서도 메모지를 군복 상의에 잘 넣어 둔다.
“어떻게 할 겁니까?”
우준이 근무지로 복귀하는 박이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묻는다.
“중대장님 면담을 주선해 봐야지. 나한테 휴가증을 발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건 아니니까. 아마 내무반 선임이 자기 일 아니라고 관심을 안 주는 것 같아. 하여간 군대도 변해야 하는데 말이야.”
“더 상담을 해보면 정말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상관없어. 어쨌거나 얼마나 군생활이 힘들면 생전 안 다니던 교회를 찾아왔겠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받아주라고 이 시간에 여기에서 기다리는 거야. 설령 거짓말이라고 해도 말이야.”
울컥, 우준의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게 솟아오른다. 교회 꼭대기에 걸린 십자가가 어떤 해답을 주는 것 같다.
“이번 건은 일지에 잘 적어둬. 나중에 인사장교 오면 상담 내역으로 보여 줘야지. 우리도 부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말이야.”
군종장교가 농담조로 피식거리더니 돌아선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준이 사무실로 향하려는 군종장교의 팔을 단호하게 낚아챈다. 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격하게 호흡을 가다듬는다.
“어떻게 이곳에서 그렇게 담담할 수 있습니까? 상처를 받거나 좌절하지도 않으면서요.”
팔이 잡힌 군종장교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가 풀어진다. 심각하게 우준을 바라보다가 뭔가 이해하는 듯 결국 웃는다.
“나도 상처나 좌절이 없었겠어? 평생 자신을 시험대에 올리면서 사는 거지. 마냥 주저앉으면 나 스스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