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이다.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희뿌옇게 동이 트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높게 솟은 교회 십자가가 아직도 붉은빛을 띤다.
5층 높이의 대형교회는 화려하다.
대리석 벽에, 정면에는 양을 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형 성화가 자상하다.
저곳으로 들어간 적은 없지만 그 분은 참 좋은 집에 사는 것 같다.
지하철역 계단을 톡톡톡 내려간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니 열차 도착 시간까지 여유가 있다.
첫 출근길이다.
아는 지인의 소개로 광고 대행업체에 입사하게 되었다.
수술을 받은 뒤 1년 만이다.
코안에 생긴 종양이 이마까지 번졌다.
악성은 아닌데, 제거 수술을 하느라고 전신 마취를 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한달 뒤 급성 장염으로 입원했다.
치료를 마치자 다시 코 안의 종양이 재발했다.
아무래도 몸에 무리가 온 것 같아서 사직서를 냈다.
매일 야근이고, 끼니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잠시 쉬면서 몸을 추스르려고 했을 뿐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여행을 다니다 보니 통장에 잔고가 몇만원밖에 남지 않아다.
급히 주위에 SOS 신호를 보냈다.
아는 선배가 소개해 준 회사로 면접을 봤고, 다행히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승강장에는 드문드문 출근하는 행인이 박혀 있다.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에 심취한 청년,
벌써 안전선에 대기하는 중년 아저씨,
앞머리를 헤어롤로 잘 말아 올린 새침한 아가씨,
평범한 출근길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내일도 이런 아침이 찾아올까?
혹시 모레 아침도?
어쩌면 모두 그대로인데 나만 이 자리에서 사라지는 건 아닐까?
저 청년이, 중년 아저씨가, 새침한 아가씨가 그대로 존재할까?
불확실한 미래는 두렵다.
중학교 2학년이었다.
무슨 일인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늦게 교사에서 나왔다.
도서실에서 책을 정리하든가, 선생님과 상담했던가, 하여간 혼자 쓸쓸하게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등나무 아래에서 아는 얼굴이 보였다.
이름이 현호였나?
같은 반 친구인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같은 학년 학생들과 종교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중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무리 사이로 고개를 끼어 넣었다.
현호는 단단하고 굵은 기둥 같았다.
성경은 수천년 동안 베스트셀러라고.
아라랏산에서 노아의 방주 잔해가 발견되었다고.
반드시 세계의 종말은 올 거라고.
자기주장이 또렷했고, 어지간한 반발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 당당한 모습에 뭔가 대단한 진실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장 인상 깊은 건,
“오늘 저녁에 현관문 열고 벗은 운동화를 내일 다시 신을 수 있는 거라고 확신하냐?”
밤새 죽음의 신이 찾아올지도…….
지금 돌아보면 공포 영화에나 나올 수 있는 소재인데, 당시는 너무 어렸다.
두려웠다.
아마 처음으로 종교와 죽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곳은 뭔지 모르지만 삶의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후 교회로 가는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또래의 친구와 어울리면서 과연 어떤 곳인가 하는 호기심이었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생겨서.
형 동생과 어울리면서.
그러다가 신앙이 생기고 말았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절대자에 대한 인식.
바로 죽음을 넘어서는 존재.
그 개념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찌르르르릉~~~~!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장암, 장암행 열차입니다.”
승강장으로 열차가 들어오는 신호음이 들린다.
나는 가방을 추스르면서 중년 아저씨 뒤에 선다.
청년이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헤어롤 아가씨도 또각걸음을 딛으며 안전선으로 다가온다.
흐트러진 승강장에 나란히 줄이 만들어지면서 정리된다.
굉음을 지르면서 열차가 들어온다.
스크린도어 너머로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인다.
오늘도 출근하는 직장인의 고된 얼굴도 스쳐 지나간다.
다들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살고 있다.
코 속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서 침대에 누웠다.
수술실에서 간호사들이 넓은 천으로 내 몸을 단단하게 감싸면서 압박했다.
마취 도중에 무의식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수 간호사가 내 입에 호흡기를 붙이면서 물었다.
“어제부터 금식했어요?”
“네, 설명서에 적힌 대로 12시 이후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잘했어요. 마지막으로 뭐 먹었어요?”
“가볍게 빵이랑 우유로…….”
거기까지만 기억이 난다.
나는 정신을 놓았고, 다시 마취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왔을 때, 거대한 바위가 머리에 얹힌 기분이었다.
침대에 앉은 채 구토를 했고, 금식 덕분에 위액만 흘러나왔다.
나를 감쌌던 천을 간호사가 돌돌 말아서 바닥에 팽개쳤다.
침대에서 구토를 한 수치심도 나중이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인식할 수 없었다.
얼굴을 찡그릴 수 없을 정도로 코가 부풀어 오르고 뻑뻑했다.
정신이 없어서, 회복실로 이동하는 동안 간호사의 지시에 어린 사슴처럼 고분고분 반응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전혀 없었다.
몸이 아프고 불편할 뿐이었다.
죽음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나에게 죽음은 그런 의미이다.
흔히 전쟁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들.
총을 맞고 서서히 죽어가면서 고향의 가족과 지난 시절을 회상한다든지.
미처 만나지 못하는 연인의 이름을 부른다든지.
그런 경우는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고통 속에서, 고통만 있을 뿐이지 과거를 돌아볼 여유는 없다.
급박한 상황에서 공포는, 공포만 있을 뿐이지,
죽음까지 가늠할 정도로 넉넉하지 않다.
내가 태어난 순간을 기억할 수 없듯이, 죽음도 역시 그럴 것이다.
중요한 건 사는 것이다.
승강장에 열차가 멈춰 서고 스크린도어의 문이 열린다.
중년 아저씨부터 발을 넣으면서 들어간다.
내 뒤로 청년과 아가씨가 차근차근 따라온다.
돌아보니 다른 문에도 승객들이 차분하게 들어가고 있다.
오늘 나는 첫 출근이다.
내일도 이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당연하지만 내가 지나가는 모든 문이 죽음으로 들어서는 과정은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