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6 [7/21-7/27]
새집으로 이사한 지 딱 일주일이 된 날. 아직 집에 의자가 하나도 없다. 중개업자 M과 계속 얘기는 하는데, 브로큰 잉글리시와 팔로업 부족 등이 모두 합쳐서 집 완성이 느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힘쓴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한국에서도 내 뜻대로 안 풀리는데 해외는 오죽할까. 또한 번 욕심부린 나 자신을 반성한다.
그 대신 집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갔다. 그건 나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니까. 그 후 회사 동료 Ray님을 집으로 불러서 딱딱한(?) 계란볶음밥을 해 먹었다. 물론 원래도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만... 이건 Russel Taylers 밥솥이 잘못한 거야... 현지 압력 밥솥으로 지었더니 물이 부족했는지 쌀이 지나치게 꼬들했다.
고민이 많은 날이었다.
나는 꽂힌 여행지가 있으면 가야 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최근에 꽂힌 여행지가 이탈리아 남부인 것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이탈리아 로마 왕복 항공권으로 예를 들면, 인천-로마 왕복 항공권과 가격, 운항 시간 등이 별 차이가 없다. 즉, 이탈리아 여행에 있어서는 한국 대신 말레이시아에 사는 것에 대한 이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9월 초에 꽤 긴 휴가가 있는데, 그때가 또 하필이면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기 딱 좋은 시즌이다. 밤새 고민을 하다가 결국 포기하기로 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여행을 포기한 이유
1. 아직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서 어수선하다.
2. 새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지금으로서는 저축이 우선이다.
3. 말레이시아에 사는 이점을 활용하지 못한다.
4. 휴가가 한 달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계획을 짤 시간이 부족하다.
5. 이탈리아는 한국의 3배 정도 되는 크기의 나라. 9일 정도의 휴가로는 시간에 쫓기는 여행이 된다. 그건 이탈리아 남부 여행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끝까지 갈등한 이유
1. 하루라도 어릴 때 멀리 여행하고 싶다.
2. 9월 초라는 시기가 이탈리아 남부 여행 시기로 딱 좋다.
3. 말레이시아에 사는 것 때문에 제약을 가지고 싶지 않다. (만약 한국발이면 갔다? 지금 상황 용납 안됨.)
그래서 스스로와 타협을 봤다.
- 휴가로는 가까운 나라를 간다.
- 이탈리아는 내년, 내후년 9월에 간다. (이탈리아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 그 대신 여행 외 다른 지출을 최소화한다.
이렇게 머릿속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은 새벽 2시. 아무래도 오늘 북유럽 페로제도 마을 '젝프' 숏츠를 만들어서 더욱 내가 지향하는 환경으로 떠나고픈 마음에 들떴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쿠알라룸푸르는 내가 원하는 터전의 정확히 반대다. 자동차 매연과 도시 소음, 길바닥의 쓰레기들, 눈에 보이는 가난, 365일 더운 동남아 계절 등등. 그래서 집을 내 취향으로 가꾸는 것에 더 매달리는 걸 수도 있겠다.
압력밥솥으로 카레를 해보았는가?
카레를 하려고 재료를 사서 집에 갔는데, 생각해 보니 냄비가 없었다. 냄비를 사기 전에 재료가 썩을 것 같아서 급한 대로 압력밥솥에 모든 재료를 때려 넣고 '수프 모드'로 돌렸더니 진짜 카레수프가 되었다. 닭가슴살은 푹 고아져서 실이 되었고, 당근은 누르면 뭉개지는 상태. 먹어보니 남은 못주겠지만 나는 먹을만해서 내일 점심으로 싸 갈려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나는 여행 크리에이터 호소인이다. 8년 동안 여행 블로그를 쓰고, 7년 동안 여행 유튜브를 올리고 있다. 수익은커녕 조회수도 노력에 따라오지 못한다. 수년동안 꾸준함은 보답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콘텐츠를 올리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으니 무력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여행 콘텐츠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토록 부러울 수가 없다.
뭐가 부족한 걸까? 성공한 사람들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머릿속만 복잡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엔 내 안의 보수성과 진보성의 갈등이 크리에이터로서의 발전을 막고 있는 것 같다. 안정적인 직장과 월급을 가져야 할 것 같은 마음과, 그런 한국사회의 틀에서 벗어나 진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의 갈등. 갈등만 하다가 20대가 수확 없이 끝날 것 같아 막연히 두렵다.
집에 드디어 의자가 생겼다.
이사 2주 만에 배송이 온 것인데, 이제 마침내 앉아서 화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말레이시아 친구를 만나러 퇴근하고 KLCC(Kuala Lumpur City Center)를 지나치는 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엄청난 실수였다. 교통체증이 심각함을 넘어서 위험할 정도였다.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버스는 결국 20분 동안 한 정거장도 가지 못했고, 약속시간에 늦은 나는 부리나케 내렸다. 2km 좀 넘는 거리를 빠른 속도로 걸어서 약속 장소 Bottega KL이라는 이탈리안 와인바에 도착했다. 와인 한잔과 파스타를 먹고 80링깃 (약 26000원) 정도 나왔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거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역시 종교인데, 말차(말레이시아 차이니즈)는 대부분 무슬림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수월하게 가까워질 수 있다. 오늘 만난 친구도 말차여서 이런저런 재밌는 얘기들을 나눴다.
특히 말레이시안 잉글리시 (맹글리쉬) 얘기가 웃겼다. 툭하면 "Can Can" 거리는 것과 모든 문장에 "ya", "ra", "ba"를 붙이는 습관, 그리고 너무나 드센 억양 등등... 나도 영어를 못하는 편이 아닌데 (토플 113 오픽 AL 토익 990), 말레이시아 영어는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더라.
6월 중순에 입사해서 한 달 반 만에 첫 월급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현지 계좌가 없어서 아예 월급을 못 받았었다. 물론 이 작고 소중한 월급도 순식간에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숨이 좀 트이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또 퇴근길에 버스가 고장 나서 도중에 서버렸다. 버스가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엔진이 엉망인가 보다. 어메이징 말레이시아. 앞으로는 버스보다는 MRT(지하철 개념)에 더 의존하리라 다짐한다.
새로 사귀게 된 한국인 친구들과 창캇 부킷빈탕 쪽 'Tono Izakaya Changkat KL'이라는 이자카야에 갔는데, 음식이 모두 맛있었다. 이따금씩 이자카야에서 야키토리나 덮밥을 먹고 싶다면 가면 좋을 것 같다. 쿠알라룸푸르에는 필리핀 세부와는 다르게 사무직에 종사하는 한국인 또래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세부는 보통 한국인 종사업이 여행사 아니면 카지노였고, 그것도 또래는 거의 찾을 수 없었었다.
나는 인테리어에 진심인지라 말레이시아 집에 펜던트 램프를 설치했다. 물론 몇 년 살겠냐만은, 한국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이사했었는걸? 그렇게 생각하면 2년이라 해도 긴 시간이다.
MyTown에 마지막으로 가서 꽃병과 바구니 등 자잘한 인테리어 소품들을 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살림 장만 첫 번째는 이케아, 두 번째는 일본 다이소, 세 번째는 Shopee, 그 외로는 MyTown 입점샵들! 이케아가 어느 곳보다 가격이 싸면서 쓸만한 제품들을 많이 팔고, 다이소에서는 반찬통이나 쓰레기통 등 작은 살림살이들을 사면 좋다. 쇼피는 빨래걸이나 세탁기 위 선반, 배수구 덮개 등 자잘하지만 필요한 것들을 사기에 좋다. 그 외 아이쇼핑을 하면서 집 꾸미기에 돌입했다면 Mytown 2층을 돌아보면서 SSF HOME이나 U.JU, 그리고 다른 오프라인 샵들을 보면서 관광하는 것도 좋다.
처음으로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아참, 장 보러 혹춘마트는 갔었구나.
운동하고, 밥 해 먹고, 브런치 쓰고, 영상편집을 했다. 영상편집은 거의 4시간을 연달아했다. 그만큼 영상편집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시간도 참 빨리 간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는 인터넷에 단축키를 검색해 가면서 편집을 해야겠다. 시대가 바뀌면서 AI 자동컷편집, AI 자막 등의 기능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
요즘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이대로 말레이시아에서 금전적, 물리적, 정신적 손해만 본 채 일만 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 먼 나라로 떠나와서 일을 하는 만큼 말레이시아에 사는 이점을 슬기롭게 잘 활용해나가고 싶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외노자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