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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엄마아빠 집에 들어오려면, 앞으로 월세 내"
농담처럼 던지신 말이었다.
전날 밤, 내가 말레이시아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을 해서 어머니는 잠을 설치신 것 같았다. 고맙게도 말레이시아에 놀러 와주신 부모님과 즐겁게 주말을 보내려고 화장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 한마디가 뺨따귀를 시원하게 내리쳐서 갑자기 없던 잠도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앞뒤 상황의 맥락은 잘 기억나질 않는다.
부모님과의 돈 얘기는 늘 나를 딱딱하게 굳게 만들었다.
아주아주 오래 누적되었지만 그 누구도 치우지 못한 빨랫감 같다. 하나 둘 쌓였지만 그 누구도 치우지 않아 먼지와 함께 굳어버린 빨랫감.
언제부터였을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원비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집에 빚이 있다 하셨다. 그런 와중에 무슨 엄청난 벼슬을 달겠다고, 이런저런 학원을 다니는 내가 너무 죄스러웠다. 그럼에도 나의 최선은 그 학원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지 학원을 그만두는 게 아니었다. 그걸 원하신 게 아니었으니까. 고등학생 때 그 학원비를 다 계산해 본 적이 있었는데, 1억이 넘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이미 미성년자일 때 부모님께 1억 이상을 빚진 셈이다.
남동생이 성인이 되니 눈에 보이는 차별도 속상했다.
내가 헬스장 PT를 끊어달라 하니 비싸다 하셨으면서, 동생은 끊어주시더라.
남자라서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님 동생이 나보다 더 졸랐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이유는 사실 그리 궁금하지 않다.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른바 "엄카(엄마카드)" 사건이었다. 동생에게 부모님의 신용카드를 주신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급할 때 쓰라고 주신 신용카드. 내가 속상해서 아버지게 말씀드리니 되려 아버지가 화를 내셨다. 언제 차별했냐며. 그러면서 나에게도 신용카드를 주셨다.
나는 그 신용카드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부모님의 재산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모른다.
어쩔 땐 끔찍이도 아끼시고, 어쩔 땐 호탕하게 골프를 치신다.
그런 역설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다.
당장 아끼지 않으면 집안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을 주시면서도 그와는 대비되는 씀씀이에서 나오는 역설이.
가족 사이에 니돈내돈이 어디 있냐는 말과, 그와 상반되는 행동에서 나오는 역설이.
그래서 나는 어서 이 죄책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더 이상 손을 벌리지 않아서, 더 이상 부모님과 돈 얘기를 안 해도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직장을 관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난 당연히 집이 없다.
돌아갈 곳은 부모님 댁인데, 그럼 다시 죄책감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은 당연히 내가 함께 살게 되면 생활비가 모자라서 월세를 내라는 말을 하신 게 아니실 것이다.
서른인데 번듯한 직장 없이, 미래를 약속한 애인 없이 엄마집에 다시 살게 되는 백수 딸의 미래가 걱정되는 마음일 것이다.
근데, 분명히 나는 내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확신이 더 강했었다. 더 이상 남의 꿈이 아닌 내 꿈을 좇을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의 언중유골을 들으니 오히려 나도 불안해진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도 나를 믿지 않는데, 나 정말 잘할 수 있는 걸까? 내 꿈을 좇으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다시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게 되면 당연히 생활비는 보탤 생각이었는데.
되려 먼저 말씀을 하시니 오히려 내가 내려고 했던 생활비가 어머니께서 생각하신 월세보다 적을까 봐 걱정된다.
그렇게 나는 다시 우울의 동굴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