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현실

미국 플로리다

by 시옹

미국 플로리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테마파크를 좋아한다면 디즈니 월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떠오르고, 휴양지로서는 에메랄드빛 해변의 마이애미(Miami)나 키웨스트(Key West)가 떠오르고, 미국 문화에 조금 익숙한 사람이라면 미국 은퇴자들이 꿈꾸는 천국으로서 플로리다가 떠오를 수 있겠다.


나에게 플로리다는 조금 달랐다.

물론 플로리다의 첫인상은 전세게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디즈니 월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모두 있는 테마파크의 성지였다. 하지만 그 후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를 보고 나서는 모든 것이 뒤집혔다. 관광객들은 롤러코스터와 끝내주는 해변을 즐기는 와중에, 정작 그곳 서민들은 극단적인 빈부격차 속에 마치 환상과 같은 거대 테마파크와 초호화 리조트를 희망고문 당하듯 보고 살아야 하는 곳. 그리고 미국 현지 친구가 겁을 주는 바람에 '악어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는 곳'으로 인식이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 '꿈과 환상', 그리고 운이 좋다면 '사람 잡아먹는 악어'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러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4월 초에 간 덕에 플로리다의 날씨로 유명한 찌는 듯한 더위를 피했다.




KakaoTalk_20190817_045523878_14.jpg 디즈니 월드 할리우드 스튜디오 (Disney World Hollywood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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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철학을 담은 것 같은 서두지만 나 또한 결국 관광객이다.

같은 시기 미국 교환학생을 온 친구와 함께한 플로리다에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역시 디즈니 월드였다.

다른 곳에 있는 디즈니 테마 파크는 모두 이름이 디즈니 랜드인데, 미국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디즈니 테마파크는 디즈니 "월드"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디즈니 랜드보다 압도적으로 크기가 크기 때문이다. 디즈니 월드 안에 주제가 다른 테마파크가 4가지나 있고, 또 디즈니 리조트나 나이트 워크 도로까지 있기 때문에 테마파크가 아닌 작은 마을 정도로 취급해도 이상하지 않은 규모다.

그래서 디즈니 월드를 온전히 즐기려면 여유롭게 4일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던 친구와 나는 열띤 토론 끝에 4가지 테마파크(매직 킹덤, 애프콧, 할리우드 스튜디오, 애니멀 킹덤) 중 할리우드 스튜디오(Hollywood Studios)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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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쇼와 토이스토리 랜드를 볼 수 있는 곳이 할리우드 스튜디오였기에, 필연적인 결정이었다.

디즈니 월드 내부는 정말이지 디즈니 애니메이션 안으로 잠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했다. 스타워즈 스톰트루퍼(Stormtrooper)들의 행진부터 정말 실제 같은 코스튬의 토이스토리 우디(Woody)와 버즈 라이트이어(Buzz Lightyear)까지, 잠시 잊고 있었던 동심으로 돌아가기에 충분했다. 정교하고 정확하게 만들어진 기념품들을 볼 때는 나이를 잊고 그 애니메이션들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업(Up)> (2009)을 보고 펑펑 울었던 그때로,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 (2004)을 보고 내가 갖고 싶은 초능력을 한참 상상했던 그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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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캐슬 인(Magic Castle 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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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지 성지순례'라고 들어보았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심취해 있던 나는 영화에서 가장 비중 있게 등장한 매직 캐슬 인(Magic Castle Inn)에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텔의 본 목적은 디즈니 월드에 놀러 온 관광객들을 위함이었지만, 플로리다 키씸미(Kissimmee)의 저소득층들이 아예 눌러사는 곳으로 변질되었다고 연출이 되는 곳이다.

정말 건물 전체가 연보랏빛이라서 보고 있어도 눈을 비비게 되는 모텔이었다. 영화 속 설정에선, 동화 속 마법의 성처럼 아름다운 연보랏빛 벽돌 속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 동심을 품을 여유도 없이 살아간다.

영화 씬과 비슷하게 사진을 찍어보았다. 확실히 영화 촬영 전에는 건물 꽃단장을 한번 했었나 보다. 보랏빛이 많이 흐려졌다.

주인공인 아이들 무니와 젠시가 티끌 없는 눈으로 쳐다보던 매직 캐슬 너머의 무지개. 볼품없이 가난한 삶 속에서 피어난 이 아이들의 끝도 없이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 자본주의에 찌든 나는 흐린 하늘에 무지개를 포토샵으로 넣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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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캐슬 외에도 영화에 등장했던 여러 곳에 직접 가보았다.

확실히 영화적 연출이 빠진 그곳들은 어딘가 허전했다. 하지만 덕후는 영화를 찍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을 이 촬영지에 직접 와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KakaoTalk_20190921_235626475_15.jpg 코코아 비치 (Cocoa B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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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까지 왔는데 바다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디즈니 월드가 있는 지역인 올랜도(Orlando) 근처에는 바다가 없다. 플로리다에서 가장 유명한 마이애미 해변은 플로리다 남쪽 끝이기 때문에, 만약 마이애미 해변을 가기로 결정하면 거의 서울에서 대구 당일치기를 KTX 없이 하는 꼴이었다. 그 대신 동쪽의 코코아 비치 (Cocoa Beach)라는 해변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거리는 약 100km로 서울에서 인천 정도의 거리였다.

코코아 비치는 한적한 매력이 있는 해변이었다. 관광지라기보다는 로컬들이 태닝을 하고 비치 발리볼을 치러 오는 곳이었다. 친구와 나는 바리바리 싸 온 맥주와 점심을 꺼냈다. 돗자리까지 생각하지 못한 우리는 그 대신 디즈니 월드에서 꽤 비싼 돈을 주고 산 우비를 깔았다.

4월의 적당한 플로리다의 날씨와 가성비 캘리포니아롤, 그리고 맥주가 곁들여지니 마이애미 해변을 못 간 것에 대한 아쉬움은 금방 잊혔다. 함께한 친구와는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한 가치관이 닮아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노을이 질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Universal Studios Orl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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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지밥 속옷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포션, Felix Felicis

플로리다 여행의 마지막은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장식했다.

물론 LA에서도 가봤지만, 이번엔 친구와 함께여서 그런지 더 신기하고 재밌었다.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Hogwarts) 학교와 9 3/4 승강장, 그리고 그린고트(Gringotts) 은행까지.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는 2011년에 개봉했었다. 이미 10년여 전에 끝났던 감동이 이곳만 오면 자꾸만 되살아났다.

심슨 파크와 스펀지밥 기념품 샵도 유쾌했다. 특히 스펀지밥 속옷은... 내가 남자였으면 무조건 샀을 텐데. 도저히 내가 선물했을 때 웃으며 내 유머를 이해해 줄 남사친이 떠오르질 않아 사지 못했다.


미국에 거주하면서 다녀와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다녀와서, 미국 친구들에게 플로리다에 대한 선입견에 대해 듣고 다녀와서 더욱 다채로웠던 여행이었다. 환상도, 현실도 모두 느끼고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없어서 플로리다의 명물(?) 실버타운에는 방문하지 못했지만.

꾸며진 모습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도 사랑스럽구나. 여행이란.




Florida, The United States_ Key words
- Disney World
- <Florida Project>
- Cocoa Beach
- Universal Studios Orl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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