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빛나게 하기로 약속했다

[프롤로그]

by 단슬강

누가 이름 없는 인생의 이야기를 사 보겠느냐고

나는 8년째 이름 없는 기간제 교사다.

매년 2월이면 내 책상의 주인이 바뀌지 않기를 기도하며 짐을 싸고, 3월이면 낯선 교무실의 빈자리를 찾아 조심스레 이름표를 붙인다. 누군가는 내 삶을 ‘미완성’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패배자의 안위’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한때 꿈꿨던 의사가 되지 못했고, 인생에서 가장 처절하게 공부했던 시험에서 1등을 하고도 문턱에서 미끄러졌으며,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려다 오히려 그녀의 이마와 등허리에 깊은 상처를 남긴 가해자가 되기도 했으니까.

객관적으로 보면 내 인생은 구멍 난 곳투성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인생의 도화지에 색칠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 그 여백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이토록 눈부시다. 아침마다 사물함에 사과 한 알을 넣어두던 열아홉 살의 순수함은, 핀 조명 아래 병실 바닥에서 문제집을 넘기던 서른의 성실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의 끝에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빛나는 이유는 완벽한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어둠을 기꺼이 비추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름도 없는 기간제 교사의 시시콜콜한 인생 이야기를 누가 사 보겠느냐고. 성공한 이들의 화려한 서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군가의 인생을 단번에 바꿔줄 대단한 비법이 담긴 것도 아닌 이 기록을 말이다. 이 질문 앞에 나는 매번 작아졌고, 때로는 비겁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의 이마를 가로지른 상처와 옷 속에 숨겨진 등허리의 깊은 흉터를 어루만질 때마다 나는 비로소 대답을 찾았다. 그 흉터들은 우리가 함께 통과해온 어둠의 기록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이었으니까. 교탁 너머로 저마다의 상처를 숨긴 채 앉아 있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나는 확신했다. 지금 필요한 건 완벽한 성공담이 아니라,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다시 집을 짓고 있는 누군가의 진솔한 고백이라는 것을.

이 책은 성공한 자의 훈장이 아니다. 길을 잃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풍경들에 대한 기록이자, 내 지혜가 아닌 보이지 않는 손길에 기대어 ‘한 스푼의 노력’을 보태며 살아온 한 남자의 고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생의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는 당신에게, 혹은 정해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해 자신을 자책하는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당신의 인생도,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미 충분히 눈부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 약속 위에 서 있다. 서로를 가장 빛나게 하겠다는, 그 잔잔하고도 무거운 약속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