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시작과 약속 : 사과 한 알에서 시작된 것들

01화. 매일 아침 그녀의 사물함에는 씻은 사과 한 알이 놓여 있었다

by 단슬강

아침 7시의 교실에는 밤새 누군가 흘리고 간 정적 같은 게 고여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창문을 열었다. 텁텁한 공기를 내보내고 새벽의 찬 기운을 들이는 일. 수험생이 매일 아침 치르는 나만의 환기 루틴이었다. 덜컹거리는 창문 사이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면, 어제의 피로가 조금은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과 한 알을 챙기기 위해 매일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났다. 6시 20분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주방 바구니에서 가장 단단하고 붉은 놈을 골라 씻는 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껍질째 먹어야 영양가가 있다"는 엄마의 고지식한 말은 어느덧 내 사랑의 방식이 되어 있었다. 찬물에 사과를 문지르다 보면 손끝에 뽀득뽀득 소리가 전해졌다. 그 소리가 좋았다. 물기를 닦아 가방 깊숙이 넣고 집을 나설 때의 새벽 공기는 유난히 시고도 달콤했다.
빈 교실에 앉아 성경을 읽고 짧은 편지를 썼다. 점심 메뉴가 맛있었다는 이야기나, 오늘 하루도 같이 잘 버텨보자는 투박한 응원 같은 것들. 보고 싶다는 말은 꾹꾹 눌러 적고, 접은 편지지를 사물함 안에 넣었다. 자석이 착 하고 붙는 소리와 함께 사과를 그 위에 올려두면 나의 하루도 시작됐다. 좋아한다는 말 대신,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인사였다.
당시 우리는 비밀 연애 중이었다. 어른들은 수험생의 연애를 성적을 갉아먹는 독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편견이 지독하게 싫었다. 의료 선교사를 꿈꾸며 신학과를 목표로 했던 내게 그녀는 방해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선명한 이유였다. 우리의 사랑이 서로를 망치는 유희가 아니라 앞날을 빛나게 하는 동력임을, 성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 오기가 나를 매일 새벽에 깨웠고, 남들이 졸음과 싸울 때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게 했다. 사물함 속 사과가 아무도 모르게 붉게 익어가는 동안, 우리의 약속도 그 어둠 속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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