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사랑은 서로를 빛나게 하는 일

by 단슬강

야간 자율학습 시간의 교실은 거대한 독서실 같았다. 누군가의 샤프심 부러지는 소리나 문제집 넘기는 소리만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천장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는 미지근한 바람을 뱉어냈고, 졸음은 예고 없이 눈꺼풀 위로 내려앉았다.

쉬는 시간은 20분. 나는 지갑을 챙겨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기숙사에 일찍 들어가겠다던 그녀가 마음에 걸렸다. 후문에 있는 매점까지는 거리가 꽤 됐다. 나는 숨이 차도록 달렸다. 냉동고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쿠앤크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봉지 입구가 손목에 감기도록 꽉 쥐고 기숙사 뒷편으로 뛰었다.

가로등 빛이 겨우 닿는 기숙사 담벼락 아래에서 그녀를 만났다. 몸살 기운이 있다던 그녀에게 어른의 나였다면 아마 따뜻한 죽이나 약을 챙겼을 것이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달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걸 가져다주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건네준 봉지 안에서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뜯는 바스락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한 입 베어 문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달려오느라 아직 숨이 찬 나를 보더니 말없이 살짝 안겼다. 그리고 툭 던지듯 말했다.

"진짜 사랑은 서로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거래."

잔소리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엔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그 문장은 샤프심처럼 내 마음에 콕 박혔다. 열아홉의 우리에게 사랑은 책임감에 가까웠다. 연애하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예언을 보란 듯이 빗나가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뺏는 존재가 아니라, 잠을 쫓고 다시 펜을 잡게 하는 이유가 되어야 했다.

그날 이후 책상 앞에 앉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졸음이 올 때마다 입안에 맴돌던 차갑고 달콤한 쿠앤크의 맛과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사랑이 사치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남들보다 한 시간을 더 버텼다. 영어 단어는 더 날카롭게 외워졌고, 수학 문제는 더 집요하게 풀렸다.

그런데 한 가지, 나는 '사랑해'라는 말만큼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 사이에는 내가 함부로 건너뛸 수 없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다. 이 감정이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그냥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깊은 마음인지 — 열아홉의 나는 그것을 진지하게 물었다. 고백은 확신이 생겼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꼈다. 입술 끝까지 말이 차오르는 순간마다 나는 대신 문제집을 넘겼다.

치열했던 밤들이 모여 성적표의 숫자를 바꿨다. 겨울이 가고 합격 통지서를 확인하던 날, 나는 가장 먼저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2월의 내 생일, 둘이 나란히 서 있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알았다. 1년 가까이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동안, 감정은 흔들리기는커녕 조용히 더 깊어져 있었다는 것을.

"사랑해."

처음으로 꺼낸 그 말은 충동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사과를 씻고, 밤마다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봐 달렸던 그 집요한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낸, 가장 정직한 확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제1장. 시작과 약속 : 사과 한 알에서 시작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