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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후 Nov 15. 2024

Floki













<바이킹스>의 플로키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이 글에서는 그에 대한 분석을 해보려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jpuhRWAbXqI&list=TLPQMDYxMDIwMjQJMkoG2KMIlA&index=1


 플로키는 북유럽 신앙에 아주 깊게 몰두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친구 라그나 로드브로크를 사랑한다. 와중에 신앙에 대한 광열은 그로 하여금 사랑과 관련된 감수성을 극대화한다. 그가 쉽게 흥분하고 자연적 현상(천둥이나 폭풍우)에 환장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삶의 열정을 바탕으로 플로키는 자신의 친구 라그나와 연인 헬가를 아플 정도로 사랑한다. 동시에 바보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비웃음을 받아서 그런지 자신의 취약한 부분은 열심히 숨기려 든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눈먼 사랑꾼이다.

 사랑은 대상을 통합한다. 사랑은 에로스와 합일의 욕망이 합쳐진 무엇이기 때문이다. 먼저 에로스는 나의 자아를 죽이고 타자의 부정성으로 나아가는 감정이다(<에로스의 종말>-한병철 참고). 그것은 '사랑의 죽음'이다. 그렇게 죽음을 통과해 타자 속으로 들어가면 그곳에서 나는 자신으로의 귀환을 겪는다. 그것은 '타자의 선물'이다. 다만 욕망은 합일에 대한 근원적인 욕구다. 다만 욕구와 욕망은 구별되는데, 전자는 그저 대상에 대한 '기호'라면 후자는 채울 수 없는 욕구의 상태를 일컫는다. 따라서 사랑은 에로스의 아름다운 축복과 함께 자칫 광기로 이어질 욕망을 둘 다 지니고 있다.

 에로스 덕분에 사랑은 타자와의 화해로 이어질 수 있지만 욕망의 진한 색으로 인해 사랑은 역으로 배타성을 지닐 수 있다. 플로키는 신에 대한 사랑, 친구의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다만 종교가 제공하는 원형적 감정과 열광은 그로 하여금 사랑의 배타성을 갖도록 한다. 그래서 플로키는 라그나가 기독교 친구 애설스텐과 같이 지내자 그 둘의 관계를 증오하고 참을 수 없는 질투에 휩싸인다.

 라그나와 애설스텐의 우정은 플로키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애설스텐의 기독교적 정체성은 플로키로 하여금 적대성을 지니도록 한다. 왜냐하면 우선 라그나를 빼앗아 갔다는 점에서 그로 하여금 사랑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애설스텐의 기독교는 플로키의 근원적 가치관이자 그의 정체성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플로키는 자기 신들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기독교의 신을 증오한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에 대한 증명이라도 하듯이 자기 신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파리를 공격한다. 그러나 되려 그는 패배하고 낙오한다. 이에 혼란이 온 플로키는 더더욱 신들에게 집착한다. 그리고 신들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명분으로 질투심과 증오와 혐오에 휩싸여 애설스텐을 살해한다.



 여러 해가 지나고 플로키는 라그나의 죽음과 그의 아내 헬가의 죽음으로 삶의 방향을 잃고 서쪽으로 멀리 떠난다. 그리고 그가 당도한 곳은 아이슬란드였는데 그는 그곳이 아스가르드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정착하기 시작한다. 신들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서.

https://www.youtube.com/watch?v=wMdwOVva7k8


 그러나 사람들 간 내분으로 계획이 다 망가지고 이에 낙담한 플로키는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어느 활화산의 동굴 안에서 소리가 들려 그 속으로 들어간다. 난쟁이들이 일하는 소리일까? 그러나 그가 발견한 것은 그보다 먼저 이곳에 당도한 아일랜드 선교사들의 십자가였다.

 플로키는 아이슬란드가 아스가르드인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그렇게 증오하던 기독교의 십자가였던 것이다. '신들이 나를 버린 건가?', '나의 신이 틀린 건가?', '기독교 신만이 존재하는 것인가?', '애설스텐이 옳았던 것인가?', '그동안의 모험과 노력은 무엇인지?' 그의 머릿속은 붕괴된다. 그간 자신의 정체성이라 알아왔던 것이 전복된다. 그는 유령이었던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u8fmm4i7jg&list=TLPQMDYxMDIwMjQJMkoG2KMIlA&index=2

 그리고 그는 화산의 분화로 그 안에 침식한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살아남아 배를 찾고 더 서쪽으로 간다. 그리고 북아메리카에 당도한다. 그 과정은 드라마가 자세히 보여주진 않지만 과정에서 그는 분명 어떠한 깨달음에 도달한 것 같다. 풍요로운 인디언들의 땅에서 그는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살아간다.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https://www.youtube.com/watch?v=cwcAvfeKTI4 

 깨달은 자는 침묵한다. 그래서 우리는 플로키가 아이슬란드 사건 이후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그가 신들에 대한 집착과 질투, 사랑에 더 이상 눈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무언가 다른 것이 되었다. 동시에 플로키 스스로의 잔재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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