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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놀이

가장 엄마답게 사세요

by 서무아

날이 밝으면 먼저 눈길 가는 곳이 앞 베란다의 화분들이다. 한동안 무심히 초록 속으로 빠져든다. 가끔은 쳐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즉흥적으로 화분 손질에 들어가기도 한다. 분갈이 작업이다. 화분 크기에 맞게 그 새 쑤욱 자란 식물을 옮겨 심고 묻은 흙들을 씻어내고 적재적소를 찾아 내 맘에 드는 자리로 위치를 정한다. 모아 두었던 달걀 껍데기를 잘게 빻아 흙 위에 깔아 주고 말려 놓았던 바나나 껍질을 흙 밑에 묻어 준다.

유튜브로 듣는 단편 소설이 그 시간 나의 다정한 친구다. 많은 사람들의 절절한 삶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내 삶을 비추어 본다. 구태여 슬퍼할 것도 힘들어할 것도 없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들이 많다. 내 그릇으로 어찌 여기까지 왔을까? 은총이라는 생각을 한다.


핸드폰 벨이 울렸다.

2024년 1월 2일 오전 8시 11분.

"베로니카 씨 뭐 해요?"

작은 꽃집을 운영하는 S다.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십 년은 젊어 보이는 영원한 소녀 로맨티시스트다.

"어디예요?"

"이번 주말에 졸업식이 있어서 아침 일찍 꽃시장에 나왔는데 오늘까지 도매 시장이 휴일이래요. 깜깜해요."

"우리 집으로 오세요."

"그럼, 커피 한 잔 할까요?"

"네, 어서 오세요."

꽃시장이 우리 집에서 지척이다. 몇십 년 익혀온 S의 운전 솜씨는 베스트 드라이브 수준이다. 지난 8월 남편의 생일에는 강화 봉안당까지 차량 봉사를 자청해 왔다.


전화를 끊고 나자 갑자기 바빠졌다. 후다닥 떡국을 끓일 참이다.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손님 한 명을 대접할 만한 먹거리들이 된다. 곧이어 도착한 S의 반가운 얼굴. 선한 표정에 영원히 소녀 같은 수줍은 미소를 띤 맑은 얼굴이다. 20여 년 서로가 겪어 온 삶의 희로애락을 조금은 잘 알고 있다. 오래전 목동을 떠나올 때 들통 하나 가득 뜨끈뜨끈 맛난 육개장을 끓여다 이삿짐 트럭 위에 올려 주었다. 아직도 잘 쓰고 있는 고급진 접시 세트와 국그릇 세트도 S의 선물이다. 오늘 떡국이 담긴 그릇이 바로 그 국그릇이다.

"이것, 자기가 선물 준 거야."

"그래? 기억이 안 나는데 ᆢ. 근데 똑같은 그릇이 우리 집에도 있긴 있어."

"하하하ᆢ."

잘 익은 김장김치로 설날 떡국을 먹고 캡슐 커피를 내렸다. 봉안당에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신청하라는 말을 남기고 S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뜻하게 기억될 오전 한나절이 지나갔다.


나흘 전 연말에는 수녀님이 다녀가셨다. 성서백주간 봉사자 연수에서 인연 맺은 M수녀님. 근무지 인천에서 하루 휴가를 사용해 멀리까지 오셨다. 내가 잘 지내나 눈으로 보고 싶으시다면서.

남편이 투병 중이던 지난 여름에는 긴 소매, 두터운 수녀복 아래 발갛게 더위에 달아오른 얼굴로 무거운 과일 꾸러미를 들고 오셨다. 망고, 버찌, 샤인머스캣, 방울토마토 ᆢ.

어려울 때 찾아주는 사람들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더라고 하시면서 아파트 안 어린이 놀이터에서 과일 꾸러미를 건네주고 선 채로 바로 돌아가셨다. 수녀님이 무슨 돈이 있으시다고ᆢ.


고추장만 있으면 된다는 수녀님의 간곡한 청으로 마음 먹었던 외식 대접을 접고 소박한 집밥 점심을 준비했다. 백주간 통독 과정 프로그램을 워낙 아끼시는 분이라 만나면 쏟아지는 성서 이야기가 주님 사랑의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다. 말씀을 정말 사랑하신다. 당신이 맡아서 이끌어 가고 있는 백주간 팀 구성원들의 따뜻한 이야기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훈훈해졌다.


오늘은 1월 10일 수요일.

친구 H가 왔다. 전철로 환승을 해가며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먼 길을 무거운 짐을 들고 왔다. 나에게 떡국을 끓여 주겠다며 조목조목 챙겨 온 먹거리들이다. 떡국떡, 육수용 팩, 고명용 한우 쇠고기, 노랑 하양으로 구분해 얇게 구워 모양내어 자른 달걀지단, 밥 지을 때 넣으라는 톳 다시마 분말, 가을에 시골에서 수확한 대추, 비상식량 봉지 누룽지, 제주도에서 택배 주문했다는 보라색 콜라비 한 개까지 꼭꼭 눌러 담아 들고 왔다. 많이 묵직하다. 이걸 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내과 진료까지 다녀왔다니 만 70세를 넘은 친구에게는 너무 무리다.


나는 이미 냉동 갈비탕을 녹여 떡국을 끓여 놓았다.

"내가 와서 끓여 주려고 이리 챙겨 들고 왔는데ᆢ."

"이리 무거운 건 왜 들고 다녀?"

서로를 향한 걱정과 지청구도 잠시, 감사한 마음만 주고받는다.


소꿉놀이 같은 점심 떡국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너는 엄마, 나는 아빠. 뒤뜰의 호박꽃 따서 초롱불 밝혀 놓고 붉은 벽돌 조각 주워 고춧가루 만들던 시절. 그 시절 소꿉장 놀이의 아늑함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얕은 걱정, 깊은 슬픔 모두 묻어 두고 이 순간은 그냥 웃는다. 이어지는 다양한 화제에 가끔 눈시울 붉히기도 하지만 곧바로 미소를 회복한다.

동작역까지 반 시간 정도 소요되는 산책로를 걸어 친구를 배웅한 뒤 다시 그 길을 되돌아 집으로 향했다. 주위가 어둑해졌다.


뒷설거지를 마치자 전화벨이 울린다. 6시 40분. 친구 J다. 남편이 투병 중이다.

"입원 항암치료 끝내고 집으로 왔는데 오늘은 딸이 아빠를 보살피겠대. 나 집에서 나와 맥도널드에 앉아 있어."

"그래 J야, 우리 집으로 와. 와서 오늘 하루 자고 가. 좀 쉬어."

한 시간 후, 집 앞 횡단보도에서 만난 J의 얼굴이 반쪽이다. 피로에 절어 있다. 두 달 전 봤을 때보다 체중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덕분에 무릎 통증은 좋아졌다며 말을 돌린다.

식탁 앞에 앉은 J는 밥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다고 했다. 건네준 새 칫솔로 양치를 하고 J는 바로 작은방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9시.


이튿날, 가벼운 집밥 아침 식사 후 한강변으로 나갔다. 날씨는 포근했고 밤새 원기를 회복한 J와 나는 한 시간 반을 씩씩하게 걸었다. 베이커리에 들러 싱싱한 참치 샐러드와 치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J는 집으로 돌아갔다.

밤에 톡이 왔다.

"덕분에 우리 집도 평화를 되찾은 듯해. 고마우이. 힐링 덕분인지 오늘은 집에 와서도 일을 많이 했는데 별로 피곤하지 않아."

지난 2년 6개월, 남편의 항암 투병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었던 친구들, E와 J, H를 떠올렸다.


큰애가 말한다.

"엄마, 이제 주어진 시간은 가장 엄마답게 사세요."

내게는 지금 이런 시간들이 가장 나답게 사는 시간이다. 나를 이끄시는 그분의 숨결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시간, 소중한 인연 맺었던 귀한 이들에게 감사 전하는 고마운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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