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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Feb 13. 2024

쓰기와 만들기

   이해, 인정, 의미 부여

 2회 차 고인에게 편지 쓰기, 3회 차 미술 치유, 사별자 치유 과정이 이어졌다. 지금 이 순간 사별로 인한 나의 상실을 인정하기 위해 먼저 슬픔을 표현하고 고인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간이다.

미술 치유 시간, 교리실 중앙 테이블 위에는 조그마한 나무 의자와 배터리로 작동하는 낮은 플라스틱 촛불, 유치원 미술 수업 시간에나 볼 수 있을 법한 많은 장식 소품들이 펼쳐져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 고인을 위한 의자를 마련해 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모두들 각자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며 그 작업에 집중했다. 선생님은 작업 과정을 빙 둘러보며 각자의 고인과의 추억에 대해 질문하며 대답하는 대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는 한편 선생님과 다른 사람의 대화를 경청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남편을 위한 의자를 마련하면서 남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외면과 내면, 행동과 성격,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을 떠올렸다.

 먼저 플라스틱 네모 공간에 밖으로 창을 내었다. 육면체의 플라스틱 상자에 창을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 그것도 자연의 바람을 퍽이나 좋아했던 남편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임종을 며칠 앞두지 않은 어느 날, 머리맡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반기며

 "이런 바람을 맞으며 운동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말하던 간절한 표정이 떠오른다. 맞바람이 통하도록 육면체의 대각선 방향으로 창을 두 개 내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창문을 내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조그만 나무 의자는 아무것도 장식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무언가 붙이고 꾸미는 장식을 무척 부담스러워했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최대한 자연과 가깝게 들꽃과 나무를 배치하고 비를 좋아하니 창문 밖으로는 빗줄기를 표현했다.


 남편의 성향을 하나 둘 떠올리며 차분하게 그를 기억하고 존중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기. 나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또 많이 다른 남편의 성향에 대해 남편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편지를 쓰는 시간에는 내 마음에 집중하여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표현했다.

 빛과 어둠이 같은 것임을 알았더라면, 섬세함과 까칠함이 예민함의 다른 두 얼굴임을 알고 이해했더라면, 그리하여 남편을 좀 더 인정해 줄 수 있었더라면, 불평불만보다는 감사와 칭찬을 좀 더 표현했더라면, 내 욕구와 느낌을 불만스럽고 차가운 표정이나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 차근차근 솔직하게 다정한 말로 표현할 수 있었더라면 ᆢ.


 수많은 아쉬움이 너무 늦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마음들을 담아 편지를 썼다.


 ㅡ내 무의식은 당신은 충분히 이해받고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에 사랑했고 좋아했지요. 그러나 또 한편 예민한 까칠함이나 불안으로 인한 부당한 통제, 칼 같은 엄격함, 절제, 근검의 강요는 많이 힘들었어요.

 나의 사랑과 나의 힘듦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말로 표현하지 않고 사랑과 감사는 구태여 표현하지 않아도 당신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고 나의 힘듦은 둘이 협조하여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당신이 변해야만 한다고 밀어붙였던 저희 미숙함을 용서해 주세요.

 많은 결핍을 품고 있는 미성숙한 자아로 잔뜩 무장한 두 인격이 끊임없이 부딪히다 한 자아가 사라져 버린 지금, 저에게는 당신에 대한 어떤 불평이나 불만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제대로 된 성숙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아쉬울 뿐입니다.

 50년 우리 인연, 특히 풋풋했던 연애 시절 3년 간 내게 퍼부어 주었던 당신의 섬세하고 다정하고 낭만적이었던 사랑은 제 인생 전체에 있어서 가장 귀한 보석입니다. 그 보석을 많이도 안겨 주었던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당신이나 나나 각자의 원가정에서 가장 모범생이었기에 둘 다 인정받고 지원받은 만큼 지고 있는 짐도 무거웠습니다. 소위 개천에서 용 난 처지에서 도덕적 관습과 학습된 양심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짊어진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현실적인 결혼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우리들의 결핍과 트라우마, 열악했던 정서적 물질적 환경, 그것을 잘 극복하지 못했던 우리들의 연약함조차 이제는 다 소중한 것으로 예쁘게 보려 합니다. 있는 힘 다해 끊임없이 이타적인 삶을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니까요.

 

 많이 자랑스러웠고 많이 힘들었던 사람, 많이 사랑했고 많이 공격했던 사람. 그래도 일생 서로가 지킨 신의와 헌신은 우리가 만들어 낸 최고의 보석입니다.

 당신이 남겨 놓고 간 세 권의 일기장에 여러 번 등장하문장들.

 "아내가 있어 안심이다."

 "아내가 있어서 걱정이 없다."

 그 말에서 많은 위로를 얻습니다.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나에게 얽매이지 마세요. 이 땅에서 이미 준 것만으로 차고 넘칩니다. 나는 잘 지낼 거예요.

 편안한 곳에서 연약한 인간에게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었던 완전한 사랑, 따뜻한 보살핌 듬뿍 받으며 자유롭게 밝은 빛 속에 머무르세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2023년 10월 12


 

 질경이를 보며

                      허정인


 나 바삐 사느라

 널 밟고 지나는 줄 몰랐다

 나 바삐 사느라

 널 바라보지도 못했다


 밟히면서도

 살아내다니

 네 주인은 분명

 하나님이셨구나


 질경이

 너를 통해 나를 보다니

 지나온 길

 나로 아파한 이들도 많았으리


 그때는 몰라서

 내 상처만 아프더라

 스스로 착했다는

 그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조용히 천천히

 이제부터라도

 먼 곳이 아닌 가까운

 내 주변을 보아야겠다


 남겨진 시간만큼

 돌아보며 사랑해야지

 사랑 속에는 진정

 용서와 회개가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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