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와 다시 서니

내 마음의 보석 상자

by 서무아

영도.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스무세 살이었던 내가 첫 발령을 받았던 근무지가 있는 곳, 어설픈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곳, 첫째가 태어난 곳.

영도, 영도, 부산ᆢ. 소리 내어 발음해 본다. 눈앞이 흐려지며 마음이 싸아해 온다.

풋내기 어린 청춘들로 아무것도 모르고 삶에 부대끼며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달려왔던 시간들. 돌아보며 혼자가 되어 이리 그리워할 줄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공간들.


부산 내려갈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아릿해 왔다. 점점 차오르는 슬픔의 수위.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그리움과 미안함. 20대의 어린 우리가 짊어지기에는 많이 버거웠던 삶의 무게에 대한 애잔함.


3박 4일의 부산행 일정을 출발하면서 거실의 십자고상과 안방의 남편 영정사진, 두 곳에 눈길을 맞추었다.

"아버지 하느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여보, 잘 다녀올게요."

이 시간 그는 어디에서 어떤 존재로 나와 함께하고 있을까? 나는 아무도 없는 빈 집, 여기 이곳에서 이렇게 말 걸고 있는데, 애써 웃는 얼굴로ᆢ.

돌아서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던 듯 왈칵 쏟아지는 눈물, 마구 밀려오는 감정의 홍수.


사흘 간의 일정을 끝낸 일요일 저녁, 부산역. 언제 또 이렇게 부산역에 혼자 있을 수 있을까? 45년 전 떠나온 곳. 귀한 시간이라 쉽게 돌아설 수가 없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차가운 바다 바람은 조금씩 거세지고ᆢ.

광장 한복판 넓은 계단참에서 길 건너 빌딩들의 화려한 불빛들을 바라본다. 저 어디쯤이 행운다방일까? 눈썰미 좋은 남편과 함께 왔더라면 금세 찾아낼 텐데 ᆢ. 하긴 50년 전 일이다.

상전벽해가 되어 버린 부산의 변화, 부산역의 환골탈태. 세련되고 웅장한 건물들로 뒤덮인 한낮의 거대한 도시가 밤이 되자 하나,, 화려한 빛의 향연장으로 변한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남편의 학교가 있었던 영도와 우리 집이 있었던 가야의 중간 지점, 부산역 앞.

여기가 우리들 데이트의 시발점이었지.

부산역 길 건너편 건물, 지하 1층, 행운다방.

때로는 내가 때로는 그가 먼저 와서 입구 쪽 동향에 바짝 신경 곤두세우며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를 기다리던 곳. 기다리던 이가 들어서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활짝 상대를 향해 함박웃음 피우던 곳 ᆢ. 이제는 뜨거운 눈물과 친구 되어 혼자 눈길을 던져 본다.

여기일까? 저기일까?

휘황찬란하게 명멸하는 불빛들을 뿜어낼 뿐 차갑게 침묵을 지키는 고층 빌딩들.

세월은 많이도 우리를 앞질러 갔다.

지나간 시간들은 무상하고 지나온 시간들은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