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에서 유학 중이던 신학생 시절, 신부님이 사목 실습을 한 남프랑스 '성 줄리엔 성당'에서의 가슴 아픈 추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본당에 한국 신학생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 청년 10여 명이 찾아왔다. 입양이라는 사실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서로가 처음으로 연락해서 만났다고 했다. 그들은 신부님을 '자살바위'라는 곳으로 안내했다. 입양이라는 자신의 근본적 처지에 대한 비관과 현실에 대한 반항심으로 한국 입양 아들이 이 다리에서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울적한 사연을 전해 들었다.
며칠 후, 프랑스 부모님들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본당 신부님과의 만남을 거부한 채 말기암의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 입양아 소식을 들었다. 최선을 다해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쏟았지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고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그 아이는 프랑스 부모에게 사랑한다, 미안했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열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짧은 기간 동안 이 두 사건을 겪고 심한 혼란과 고통에 빠져 며칠을 심하게 앓았다.
꽃은 필 때도 아프지만 질 때도 아프다고 했던가요? 아마도 다시 피기 위하여 거쳐야 할 아픔이란 걸 알았다면 필 때도 질 때도 모두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삶의 현상들이 왜 일어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절대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음을 다시 고백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순간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동행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시작했고 함께 걸어갔던 여정,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의 그 자리ᆢ.
첫 부임지인 한국 시골성당에서 사목생활을 시작하신다.
당신들 집에서 전기장판으로 버티고 아껴 모은 돈으로 교무금, 주일 헌금을 내시는데 그분들이 추위와 더위 속에서 기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사제관 보일러는 줄이고 성당 안은 겨울에는 항상 따뜻하게 여름에는 항상 시원하게 해야 한다는 신부님의 원칙.
여섯 시 새벽미사를 위하여 네 시에 일어나 기도드리고 성당 안팎 전등을 밝히고 온풍기를 켜 놓고 봉사자들을 위해 커피를 내려놓고 다섯 시에 봉고차를 운전하여 다섯 개 마을을 차례로 돌며 지팡이를 짚고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서 앉아 계시는 할머니들을 모셔 오시는 신부님. 15인승 봉고차에 가득 찬 할머니들과 성가를 부르며 매일 새벽 성당으로 향하시는 신부님.
젊었을 때부터 이렇듯 성당을 지켜 오신 분들이니 이제 사목자가 그분들 곁을 지켜 드려야 한다며 친구, 아들, 심부름꾼 역할을 도맡아 목욕탕, 시골장, 농협 등으로 모셔다 드리고 기차표도 예매해 주시는 신부님.
그 모든 길에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신비에 감사 기도드리는 신부님.
장날과 주일이 겹쳐 성당에 올 수 없는 상인 신자들을 위해 새벽 장터마다 찾아다니며 새벽 일찍 직접 싼 김밥과 따뜻한 두유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장터에서 조용히 그분들 곁에 두고 오시는 신부님.
부르트고 투박하고 까칠한 두 손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성당 유지를 위해 교무금과 주일 헌금을 내고 수도 없이 십자성호를 그으며 신앙생활을 해 오신 하느님의 소중한 사람들을 귀하게 섬기시는 신부님.
마음은 있으나 올 수 없는 상황인 그분들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이제 사제인 당신을 움직여 찾아가게 하신다고 고백하시는 분.
사목은 '일'이 아니라 '모든 인간 구원의 봉사'이기에 영혼 없는 관료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다짐하시는 분.
그래서 교만함과 완고함으로 닫혀 있던 마음을 버리고 스스로 성당 청소를 시작하신 분.
축일날 할머니 신자로부터 감기약과 빨간 고무장갑 세 켤례를 선물 받으신 분.
홀로 남겨진 제대 앞에서 기도드리신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성당 청소지기로 불러 주셔서 감사하고 맑은 영혼의 건강함을 되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임지로의 부임을 위해 떠나야 하는 날, 부임하던 첫날 환영 나온 신자들이 단 10명에 불과했는데 떠나는 날에는 200명이 넘게 오셔서 모두가 침묵 중에 울고 있는 날, 다시는 이런 인연으로 만날 수 없음을 전제로 한 이별은 참 힘들었다고 고백하시는 날. 긴 침묵 끝에 준비된 말은 한마디도 못 하고 그저 가볍게 마지막 인사 말씀만을 남기시는 장면.
"그동안 여러분의 본당 신부여서 행복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부족한 점은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분들에게 큰 절을 올리고 성당을 빠져나와 내내 마음속으로 울며 또다시 가야 할 곳으로 떠나오신 신부님.
시골이 아닌 아파트에 둘러싸인 새 부임지, 가건물 성당에서 또 다른 감동적인 사목의 장을 열어 가신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작은 마음의 휴식처를 마련하기 위해 성당 주위 공터에 꽤 넓은 텃밭을 가꾸고 작은 과수원을 만들어 놓으시려는 신부님.
모든 이가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새벽 일찍 성당 문을 열어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밑그림에 참여하시는 분.
하루의 일과를 끝낸 후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본당 신자의 절반이 신부님의 권유에 따라 매일 복음서와 어록 필사를 하는 성당. 어두운 성당 뒷자리에서 전등 하나 밝히고 묵묵히 필사하고 계시는 신부님.
신자들이 고마워서 매일 아침 아무도 없는 사제관 뒤 한쪽에서 재단하고 붙이고 조이고 매끄러운지 섬세하게 살피며 감사와 고마움을 덧칠하여 기도의자 장궤틀 252개를 만들어 '하느님과 당신이 만나는 자리'라는 글귀를 새겨 넣으셨다.
고뇌와 번민에서 생기는 인생의 물음표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이해될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을 만날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 만남은 우리를 힘겹게 하고 때론 잠 못 들게 했던 인간의 '말'이 아니라 '말씀'을 품을 때 가능한 것이고 홀로 기도 의자에 앉을 때 가능합니다. 제가 해야 할 몫은 그저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고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 의자에서의 각자의 묵상과 체험은 그들의 몫입니다.
신부님의 기도의자 제작 후기이다.
매일 새벽, 제대에 촛불 밝히고 기도드리신다.
ㅡ 오늘 하루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인생의 마지막 한 페이지임을 기억하게 하시어 어제의 감정, 남루한 미움과 열등의식, 실패했던 기억의 옷을 벗어 버리게 하소서.
너무 기뻐서 교만에 빠지지 않게, 너무 슬퍼 절망에까지 이르지 않게 해 주시고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임을 알고 붙잡지 않을 용기도 주소서.
그 용기로 소유한 것들의 척도를 가늠하여 모든 것들이 잠시 그들 손을 거쳐 가는 것일 뿐임을 알게 하소서.
부질없고 가벼운 인연에 머물러 당신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길을 걷는 그들을 일으켜 세워 줄 수 있는 당신의 천사들도 만나게 해 주소서.
주님,
이 사람들이 당신께서 그들을 이 세상에 내어 놓으신 이유를 찾아 삶의 경건함을 마음속에 품고 하느님을 경외하며 늘 조심스럽게 인생의 발걸음을 옮기도록 이끌어 주소서.
고요함과 평화가 내내 함께하기를 청하며 오늘도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당신께 맡깁니다.
200페이지로 끝나는 마지막 장까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천상낙원의 벅찬 감동을 읽는 이에게 선물로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