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May 02. 2024

프로의 아름다움

  아크로바틱, 브레이커, 댄서

 "엄마, 이 공연에서 또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가 무대 위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댄서들이래요."

 둘째가 말했다. 그리고 낯선 낱말도 들려주었다. 아크로바틱. 나중에 찾아보니 힘, 속도, 추진력을 필요로 하는 역동적이고 곡예적인 동작, 파워 무브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과연 그러했다. 정말 대단했다. 어떻게 저런 몸놀림들이 가능할까?


 고딕 성당의 낙숫물받이 돌의 머리 장식이라는 가고일 석상 앞, 아슬아슬 높고 좁은 공간 위에서 과감하게 팔다리를 쭉쭉 내뻗는 댄서들. 청동으로 제작된 거대한 종의 한 귀퉁이에 올라타거나 매달려서 빠른 속도로 오고 가며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모습. 도르래가 달린 커다란 문짝 같은 소품을 초고속으로 이리저리 어지럽게 밀고 다니면서 간발의 차이로 서로 부딪히지 않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긴장감과 속도감. 바람처럼 그 위를 넘나들며 쉬지 않고 펼치는 고난도의 개인 동작들. 땅에 머리를 닿지 않고 휙 한 바퀴 두 바퀴 도는 공중제비를 밥 먹듯 능숙하게 해내는 그들의 숙련된 내공.



 그 앞에서 주인공 가수들이 뛰어난 연기력과 절절한 열창으로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지만 순간순간 빈틈을 두지 않고 무대를 꽉 채우는 댄서들의 몸을 던지는 연기 또한 머릿속이 꽉 조여 오는 듯한 높은 밀도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주요 등장 배우들의 인터뷰 글에 그들에 대한 찬사와 감사가 있었다.

 *초반에는 싱어와 댄서/아크로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연습을 진행하다가 중간에 전체 연습을 시작하는 그때부터가 진짜 <노트르담 드 파리>라고 생각한다.

*싱어와 댄서들이 만난 첫 연습은 정말 최고였다. 이번 프로덕션의 케스트는 정말 놀라웠다.

*댄서분들의 엄청난 에너지가 작품의 정체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할 때마다 느끼지만 댄서, 아크로바틱, 브레이크들의 시너지에 언제나 힘을 받는다.


 '이번 시즌 함께하는 배우들에게 하는 한마디'에서는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ㅡ끝나는 날까지 다치지 않고 무사히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ㅡ

 내 마음도 똑같았다.

 '저러다가 다치지나 않을까?'


 오래전 박민규의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읽은 한 구절이 떠올랐다.

ㅡ 1982년, 프로야구 경기가 첫발을 내딛고 이 사회에 '프로'라는 단어가 입에 오르내리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이 삶이 숨 가빠지고 피폐해졌다.ㅡ

 자본주의 경쟁 이데올로기 속에서 도태되고 밀려난 주인공은 치열한 삶, 필요 이상 바쁘거나 필요 이상 소진되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가치관을 세우고 지는 쪽이 승리한다는 역발상으로 그들만의 야구 경기를 펼친다. 경쟁과 긴장을 내려놓고 여유를 되찾게 되자 사회에서 밀려나 잉여인간이 되어 버린 듯한 자괴감을 벗어나 건전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이혼으로 깨어진 가정도 재결합으로 치유한다는 신선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보면서 프로들의 치열한 도전과 극기의 훈련이 예술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얼마나 크게 공헌하는가를 온몸으로 느꼈다.

 2003년 읽은 경쟁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역발상적 사고도 신선했지만 2024년 감상한 프로세계의 치열함이 이뤄낸 성취도 감동적이었다.


 공연 시작 전, 한가하게 인적이 끊겼던 화보 판매 매대 앞이 공연 후 몰려든 인파로 꽤나 붐볐다. 2만 원짜리 두툼한 화보집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꽤 긴 줄을 섰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훌륭한 공연이었다는 증명이 아닐까?

 시작 전 미리 사둔 화보의 두툼하고 고급진 질감을 즐기며 그 안에 담긴 내용과 화보들이 기대되었다. 아이들과 헤어져 혼자 귀가한 집안,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식탁 앞에 자리 잡았다. 두툼한 화보 한 장 한 장에 담긴 글과 사진을 읽고 보는 것도 큰 기쁨이다. 이리 예쁜 사람들이 이리 뛰어난 연기를 펼치기까지 그들이 흘렸을 눈물과 땀을 생각하면 신성하다, 성스럽다는 말이 조금도 과하지 않다.


 내려놓기와 채워 넣기를 반복해 가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인 듯하다. 도전과 성취를 즐기는 사람, 그러한 것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사람. 각자 타고난 성향에 너무 어긋나지 않게 또각또각 자기만의 생을 걸어가는 이 인생길이 도전도 포기도 모두 경험해 보는 건강한 삶, 프로의 진지함과 아마추어의 따뜻함이 루 자리 잡은 풍요로운 삶이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콰지모도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