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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May 08. 2024

不在

가까운 듯 멀리, 저 멀리 ᆢ

 연휴 가운뎃날인 5월 5일, 일요일. 세 아이들 모두 아들네 집에 모였다. 아들네 두 아이들이 가장 어리기 때문이다. 함께 배달 식사를 하고 어린 조카들의 재롱을 보며 떠들썩한 가운데 하루 해가 저물었다. 칭얼대는 어린 손자를 업어 재웠다. 피곤해 보이니 엄마도 좀 들어가 쉬라고 다들 입을 모은다. 어젯밤 내가 손주 밤잠 당번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네 시간 간격으로 두 번은 깨서 우유를 먹는다. 아이들의 성화에 손주 옆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인 사이 딸들은 문자를 남기고 먼저 출발했다. 좀 더 머물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덧 밤시간이다.


 9시 40분, 카톡방에 문자가 뜬다.

 "이모, 조금 늦었지만 통화 가능하세요?"

 둘째 언니의 아들 딸, 남매 중 누나인 조카딸 E이다. 바로 전화를 넣었다. 또롱또롱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모, 오늘 동생네도 불러서 엄마랑 시어머니 모시고 고기 구워 먹으며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얼마 전 꿨던 꿈 생각이 나서 엄마께는 말씀드렸는데 이모한테는 아직 말을 안 한 것 같아서요."

 "그래? 무슨 꿈인데?"

 "이모부 꿈이에요. 이모부가 어린 아기를 안고 번쩍번쩍 들어 올리며 어르시는데 그렇게 활짝 웃으시는 모습은 처음 봤어요. 너무나 환하게 웃고 계시더라고요."


 내 눈에는 벌써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남편이 떠난 지 넉 달 후에 태어난 여섯 번째 손주. 생전에 만나본 다섯 손주 모두 이뻐했지만 아들의 아들, 친손자에 대한 정은 아마도 더욱 각별할 것이다. 간절한 그 마음 알고도 남기에 손자 이름에 할아버지 이름 한 자를 넣어 지다.

 "그래, 그러실 거야. 얼마나 좋아하시겠니?"

 목소리까지 바로 젖어들었다.

 "그런데 이모, 내가 왜 이모부 꿈을 꿨을까요?"

 "네가 영이 맑아서 그럴 거야."


 아이들과 나, 조카에게까지 남편은 꿈으로 많은 메시지를 전해 온다. 우리가 참 많이 그리워한다는 것을 천성적인 섬세함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새삼 부재를 확인하게 되기에 많이 슬프지만 또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애잔해하는 우리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알려 주는 듯하다.


 얼마 전 아들은 하루 걸러 아빠 꿈을 꾼다고 했고 느낌은 나쁘지 않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장례식 다음 날, 24층 아들네 창가 방충망 밖, 빗속에서 꽤 오랜 시간 머물며 세 식구 모두에게 날갯짓하던 크고 화려했던 나비의 기억이 큰 위로가 된다고 했다.


 둘째는 생일 다음날 나에게 긴 카톡을 보내왔다.

 

 2024.04.06


꿈에 아빠가 나오셨다.

생일 선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선물이 너무 슬펐다.


꿈속의 나는 사전투표를 하러 가려고 옷을 찾고 있었다.

요셉은 어머님 아버님께 연락할 것이 있다고 전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빨리 나가야 해서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갑자기 현관문에서 언니 아빠 엄마의 인사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달려 나갔다.

언니 아빠 엄마는 인사를 하고 우리 집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언니가

 "ㅇㅇ아, 우리 갈게."

하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고

아빠는

 "ㅇㅇ아, 잘 지내라."

하고 예전과 같이 인사를 하셨다.

모두 웃고 있었다.


나는 '언제 오셨는데 벌써들 가시는 거지?' 하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아빠가?'라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꿈속에서 찰나의 짧은 시간 동안 질문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밝은 목소리로 놀라 물었다.

 "아빠가 어떻게 여기에?"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꿈이라는 것을.

 바로 눈을 떴고 하염없이 울었다.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꿈속에 좀 더 머무를 수 있었을까? 아빠는 무슨 얘기를 더 하셨을까?

 꿈속의 아빠는 언니, 엄마와 함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연한 베이지색의 봄점퍼를 입고 계셨다.

 아빠의 꿈을 꾼 것은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필리핀에서 바다를 보며 아빠 생각을 많이 하던 때였다.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꿈에서 아빠를 봤고 그날도 많이 울었다.


 오늘은 내 생일

생각지도 못하게 아빠가 꿈에 나타나

"ㅇㅇ아, 잘 지내라"

 라고 하셨다.

 이 말이 내 생일날 아빠가 하고 싶으셨던 인사인가 보다.

 "네, 그럴게요, 아빠도 잘 지내세요."


 답글을 넣었다.

 ㅡ생명들이 소생하는 봄이 되니 아빠 생각이 더 많이 난다. 부활절에는 더더욱ᆢ.

 예민함의 두 얼굴인 섬세함과 까칠함으로 참 많은 기억과 추억, 안타까움과 감사를 남겨두고 가신 분이다. 우리 모두에게 ᆢ.

 어젯밤 K를 재우고 낮에 나의 아지트인 집으로 돌아오면서 길에서 이 카톡을 읽었다. 흐느껴 울면서 ᆢ

 하지만 더 좋은 곳에 가 계신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도 그 좋은 곳으로 함께 가기 위해서는 조심해서 더 잘 살아야겠다는 묵상을 하곤 한다.


 배우자는 정말 대단한 인연이다.


 너희들이 잘 지내고 있는 걸 아시니까 아빠도 가벼운 마음으로 그런 인사를 하셨을 거다. 아빠도 특유의 그 순수함으로 잘 계실 거고ᆢ.


 마지막 임종과 장례의 모든 절차가 우리의 부족함 가운데서도 감사하게 잘 치러진 것을 보면 하느님 은총을 많이 받으신 것 같다. 강화 봉안당에 모셨지만 어디서든 함께하시니 너무 슬픔에 함몰되지 말고 희로애락 모두 스쳐 흘려보내려 한다.


 ㅇㅇ아, 잘했어.

 아빠의 사랑 잘 기억하면서 잘 지내자♡ㅡ


 남편 없이 처음 맞이한 가정의 달, 2024년 5월. 겉으로는 씩씩하게 밝게 아이들도 나도 모두 각자의 일상을 잘 영위해 가고 있다.

 어제는 아들네 세 식구와 강화 봉헌당에 다녀왔다. 장거리 이동이 아직 무리인 어린 손자는 함께하지 못했다.

 세 살짜리 손녀가 할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서 귀엽기 짝이 없는 앙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할아버지 어디 계셔?"

 며느리가 대답한다. 나도 거든다.  

 "하늘나라에 계셔."

 "이젠 안 아프셔?"

 "응, 이젠 안 아프셔."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던 모습, 약해진 몸으로 잠깐잠깐 같이 놀아 주던 모습이 어린 손녀의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는 모양이다. 어른들의 눈시울이 담박 뜨거워진다.

 매일 아침, 매일 밤, 불쑥불쑥 그런 시간들이 찾아온다. 어쩔 수 없다. 다만 가장 평안한 곳에서 가장 평온하게 잘 지낼 것이라고 굳게 믿을 뿐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72년 세월, 우리 모두 잘 기억하고 많이 감사드려요.

 많이 많이 평안하세요.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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