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0일, 수요일, 아들이 시간을 낼 수 있는 날. 아이들 셋이랑 나, 네 명이 아들의 차를 타고 강화 갑곶성지로 향했다. 두 아이들을 등교시키느라 바쁜 딸들도 일찍 서두른 덕에 11시 성지 미사를 함께 봉헌할 수 있었다. 미사 후 봉안당으로 내려갔다. 준비해 간 연도 책으로 긴 연도를 바쳤다. 봉안당 전면에 새겨진 남편의 동판 영정 사진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울컥해지는 순간이 없진 않았지만 기도를 바치는 내내 아무도 눈물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성당 예수님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검색해 온 맛집에 들러 각자 원하는 메뉴로 점심 식사를 했다. 깔끔하고 고급진 한식 상차림이었다. 오후 세 시까지 귀가해야 하는 둘째의 일정에 맞추어 돌아오는 길을 서둘렀다. 둘째네 집 앞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하게 세 시. 아홉 시에 만나 먼 길을 왕복하고 함께 점심을 먹는 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일상의 소소한 신변잡기들과 아이들 이야기, 음악 이야기, 책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리고 아빠 이야기.
단 한 치 삐뚜름 없이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던 만큼 가족들에게 엄하고 불편했던 아빠. 큰애가 한마디로 결론을 내렸다.
"역쉬, 젠틀맨~!"
"맞아, 역쉬, 젠틀맨~! 딱이야."
내가 맞장구쳤다.
끝까지 존엄성을 지키며 자기를 다스린 듯한 임종. 많은 암 환자들의 힘든 마지막 투병기를 대하면 다시 한번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더 이상 검사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 이후 병원보다 집을 택한 자신의 의지. 끝까지 암성 통증 없이 사그라들 듯 마무리한 2년 반의 투병 생활.
평생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해 왔던 그 성격 그대로이다. 남겨 놓은 자료들도 차곡차곡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 세상에서의 숙제를 다했으니 더 이상 힘들어하지 말고 완전하고 따뜻한 내 사랑 속에 머물라고 하느님이 담쑥 안아 가신 듯하다.
소멸이 아닌 이동. 불완전한 인간 세상에서 온갖 의무와 책임에 최선을 다했던 삶. 그러나 참 많이 힘들어했던 삶. 하느님은 그 귀한 순수함과 성실함, 힘에 부치는 헌신을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아내인 나는 인간의 한계에 갇혀 힘들어했던 부분들을 하느님은 완전한 사랑으로 따뜻하게 감싸안으셨을 것이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평안하게 모든 불안과 근심, 걱정, 회한에서 벗어나 평화 누리라고 불러 가신 것이다.
맑고 천진한 매력적인 웃음을 그늘 한 점 없이 얼굴 가득 활짝 머금고 있을 남편 표정을 그려본다.
역쉬, 젠틀맨 ~!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