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미사를 끝내고 성당 사무실에 들렀다. 7월 11일, 다가오는 목요일이 남편의 첫 기일이다. 새벽 6시 연미사 봉헌을 신청했다. 수도원에 특별 연미사를 신청해 놓았지만 본당의 새벽 미사는 또 다른 내 마음이다. 십 년 넘는 긴 세월을 함께 다녔던 이곳 성당. 접수를 받는 사무장님 표정이 살짝 흔들린다. 무심히 돌아서는데 뜨거운 마음이 왈칵 눈으로 치밀어 오른다. 다행히 주위에 사람은 아무도 없다.
토요일 밤을 손주랑 보내고 일요일인 오늘 낮에는 큰애 부부가 다녀갔다. 아들까지 유모차에 손주를 태우고 와서 합세했다. 그러다 보니 일요일 저녁 7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8시를 조금 넘긴 시간, 성당 옆 골목길로 접어들어 나무 계단으로 연결되는 둘레길로 들어섰다. 어둑해지기 시작한 여름 저녁의 숲 속은 넉넉한 여유로움이 있다. 듣고 본 한낮의 모든 사연들을 넓은 품에 다 녹여들인 듯하다.
아들의 대학 진학을 따라 학교 코앞인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이 둘레길을 얼마나 많이 남편과 같이 걸었던가? 이른 아침, 한낮, 저녁 할 것 없이 수시로 함께 나섰던 길이다. 이 길의 저쪽 끝에는 둘째네의 집이 있기도 하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는 거미줄 걷어 준다며 키 큰 남편이 앞장서고 낮에는 툭 트인 시야 확보하라고 키 작은 나를 앞세웠다. 예민한 성격이 지닌 섬세함과 까칠함의 두 얼굴을 극명하게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다. 섬세함 앞에서는 헤헤거리며 감동했고 까칠함 앞에서는 헥헥거리며 저항했던 시간들이다.
어둑한 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남편은 까칠하게 또 한마디 할 것이다. 무슨 여자가 자연도 사람도 겁내는 게 없냐고.
20여 분 둘레길을 지나 툭 트인 도서관 잔디밭에 이르렀다. 24시간 안전하게 개방되어 있는 넓고 잘 가꾸어진 도서관 앞뜰. 길 건너편으로는 성모병원 뒷산의 무성한 숲이 키 큰 나무들을 품고 있다. 잔디밭 한 모퉁이에 변함없이 놓여 있는 기다란 나무 벤치. 이 자리는 바람길이 열려 있는 가장 시원한 곳이다. 여름밤 검은 비닐 속에 캔맥주 세 개를 담아 들고 집을 나서 종종 이곳을 찾아왔다. 둘이 나란히 앉아 어둠 속에서 캔 맥주를 홀짝거렸던 시간들이 아련하다. 나는 한 캔, 남편은 두 캔. 인기척 드문 넓은 잔디밭이 마치 우리 둘만의 정원인 듯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그 의자에 앉아 있었던 여러 날의 여름 밤들. 다정하게 나란히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티격태격 엇갈린 주장으로 다투기도 했지. 할 수 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미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남편의 차가운 고백을 듣기도 했고.
오늘도 변함없이 어둠에 담겨 있는 그 공간에 잠깐 눈길을 두었다.
남편의 첫 기일, 7월 11일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