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셋째 금요일, 대학 동창 모임. 일곱 명이 모인다. 이름은 효우회. 모교의 교지 이름이자 학교가 자리 잡은 터를 일컫는 새벽 뜰, 曉原의 첫 글자를 따왔다. 새벽 효, 벗 우.
중, 고, 대 동창들이니 실상은 50년을 넘어 60년 가까이 이어온 인연들이다. 70년대 후반, 남편들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직장을 따라 대부분 교직에 종사했던 본인의 직장들을 훌훌 던져 버리고 당연한 듯 태어나고 자란 낯익은 부산에서 낯설기만 한 서울로 훌쩍 떠나왔다. 집 전화도 귀했던 때이다. 남편들이 회사 전화로 연락을 대신해 주는 심부름을 해 주기도 하면서 하나, 둘 만나기 시작했다. 두 친구가 빠져나가고 일곱 명이 남았다.
매번 순서를 정해 차례로 집에서 만나 집밥 점심을 먹고 안부들을 주고받았다. 70년대, 80년대, 임신과 출산을 겪는 과정을 비롯하여 단칸방에서 출발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가정사를 다 알고 있는 구성원들이다. 눈 오는 겨울날 버스를 바꿔 타 가며 치렁치렁 어설픈 홈드레스 차림으로 세 살 터울 큰애는 걸리고 둘째는 포대기 둘러업고서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의 단독주택을 찾아가던 기억이 새롭다. 다 힘 있고 젊었던 때의 이야기다. 81년생 동갑내기 그 집 아들과 우리 딸을 나란히 포대기에 눕혀 놓고 찍었던 색 바랜 사진을 보니 40년 전 우리들의 풋풋하고 소박했던 젊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어느덧 70 전후를 헤아리는 우리들.
2024년 7월 18일, 3금에는 다섯 명이 모였다.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고 단골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야기 끝에 Y의 신앙 고백이 등장했다. 일곱 명 중 네 명은 가톨릭, 한 명은 개신교, 다섯 명이 크리스천이다. 오늘 이야기를 꺼낸 Y는 가톨릭 신자다.
지난 4월, 남편과 함께 스페인, 포르투갈 역사 기행으로 한 달간 자유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도중 단체 카톡방에다 진지한 기행기와 아름다운 사진을 올려 주곤 했다.
오늘은 그 여행 중 포르투갈의 파티마 성모발현성지에서 겪은 신앙 체험과 그 후 달라진 신앙생활에 관해 이야기했다.
포르투갈어와 영어로 드리는 로사리오 기도와 야외 미사, 은은하고 고운 목소리의 성가, 소원을 빌며 성당 광장을 무릎 꿇고 순례하는 사람들, 밤 9시 30분의 촛불 미사, 마지막으로 십자가와 천상모후의 관을 쓴 성모마리아상을 든 사제들의 뒤를 따라 광장을 한 바퀴 도는 촛불 행진 등을 보고 참여하면서 알 수 없는 신비의 힘이 자신을 이끄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귀국해서는 매일 미사를 다니기 시작했고 가기 전에 그날의 복음을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 두 가지로 읽고 간다고 했다.
모임 전날 참석한 저녁 미사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신부님 강론을 이야기했다.
복음은 마태복음 11장 25절.
ㅡ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ㅡ 신부님이 강론 도중 언급하신 '直觀'이라는 어휘를 주제로 집에 와서 남편과 1시간 반 동안이나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직관
1. 감관의 작용으로 직접 외계의 사물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을 얻음.
2.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
이 직관은 또한 성령의 은총과 이어지며 영어 성경에서 은총은 [undeserved kindnesse : 받을 만하지 않은, 부당한, 받을 자격이 없는 친절]로 표현되어 있고 철부지를 찾아보니 [ordinary man : 보통의, 일상적인, 평범한 사람]으로 적혀 있어 또 한번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내가 찾아본 가톨릭 성경에서는 철부지가 childlike라고 되어 있었다.
ㅡI give praise to you,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for although you have hidden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the learned. You have revealed them to the childlike.ㅡ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가 아닌, 평범하고 아기처럼 뭘 모르는 이들에게 은총으로 주어지는 직관을 통해 깨닫게 되는 진리의 말씀, 우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수. 오만과 편견이 있는 곳에서는 뿌리 내릴 수 없는 생명의 말씀.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이에게는 도저히 이해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황금률.
ㅡ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마태 7장 12절
Do to others whatever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ㅡ
오늘의 복음을 영어 성경과 비교까지 해보며 그 깊은 뜻에 대해 1시간 반이나 대화를 이어 갔다는 친구 부부.
그 모습이 바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성가정의 모습일 것이다.
전해 듣는 우리 모두 숙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