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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라고

쑤욱 쑥

by 서무아

동네 골목길을 지나칠 때면 매번 눈길을 뺏기는 곳이 있다. 어린이 놀이터다. 아이들이 줄어든 탓일까? 아님 아이들도 다른 일들로 바쁜가? 옛날만큼 북적거리거나 활기차지 않다. 온몸이 움츠려 드는 겨울철 놀이터는 더더욱 휑하니 비어 있어 적막하기 일쑤다.

간혹 무리 지어 뛰노는 아이들의 높은 외마디 소리와 뒤에서 지켜보는 엄마들의 오손도손 얘기 소리가 한가득 공기 속을 떠돌 때도 내게는 와닿지 않는다. 온 마음 다 기울여 양손에 한 명씩 손 잡아 데리고 다녔던 외손녀 D와 연년생 남동생 Y. 어린 두 손주가 눈을 반짝이며 놀이에 몰두하던 앙증맞은 모습들이 이제는 먼 과거 속의 아련한 잔영으로만 남았기 때문이다.


놀이터 한 귀퉁이에 마련되어 있는 모래밭과 바로 옆 수돗가가 가장 인기 있었다. 끊임없이 페트병에 물을 받아 나르고 모래밭을 적시며 소꿉장 놀이하느라 지칠 줄 모르던 모습. 내 기억 속에는 아직 아가들로 머물러 있는데 어느덧 중학생이 되고 6학년이 되었다. 오래된 기억 속 손주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알고리즘으로 엮여 불쑥불쑥 핸드폰 앨범 속에서 나타난다. 10년 전 그때 그 모습으로. 3년 간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남긴 사진들이 이렇게 귀한 추억이 될 줄이야. 애써 찾지 않아도 수시로 챙겨서 보여 주는 핸드폰의 선물이다. 하지만 일방적인 소통, 혼자만의 감상에 젖어들 뿐이다.

이제는 초등학교 졸업식장에 선 손녀 D. 선 채로 서로를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눈높이가 같아져 있다.


손녀는 이번에 자신이 받을 졸업식 상장을 예능상으로 명명했다. 예절상, 재치상, 우정상, 체력상, 봉사상ᆢ . 이 모든 상장 이름들이 다 어울리지만 내가 보기에도 제일 비중이 높은 손녀의 특징은 예능이다. 그중에서도 그림이다.


동네 어린이집이 턱없이 부족했던 그때, 만 5세까지 연년생인 남동생과 둘이 하루 종일 집에서 지냈다. 내복 차림으로 끊임없이 그리고 접고 오리고 붙이는 일들로 하루를 채웠다. 아무 제재 없이 제공되는 복사지와 크레용과 색연필, 사인펜 그리고 선물 포장용 대형 스카치테이프. 손으로 핸들을 돌리기만 하면 일정한 크기로 똑똑 잘린 스카치테이프들이 후드득 밀려 나왔다. 마루 한 귀퉁이에는 A4 복사지 한 묶음이 늘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고.


집안의 정리정돈은 저 멀리 물 건너가 버렸고 후딱후딱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매일 온 바닥과 벽들을 채웠다. 스카치테이프를 폭탄 투하하여 A4 용지로 실물 크기의 화려한 날개를 만들고 부리와 손가락, 발가락도 그리고 오려서 온몸에 붙이고 펄럭이며 새 처럼 집안을 휘젓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쓱싹쓱싹 긴 속눈썹을 만들어 두 녀석 나란히 눈썹 아래 붙여 있기도 하고.


출근하면서 그대로 열어둔 아빠의 작업용 컴퓨터를 마음대로 이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아빠에게 전화로 물어서 해결하곤 하더니 이제는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드로잉의 대가가 된 듯하다. 내 눈에는ᆢ^^.


시간과 정성을 쏟아 넣은 성실하고 섬세한 손녀의 그림 속에는 풍요로운 스토리텔링이 들어 있다. 전시회장에서 명화를 해설해 주는 도슨트들처럼 자신의 그림을 설명해 주는 손녀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노라면 깊은 공감과 감동의 미소,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게 된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많이 좋아하고 깊이 몰두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는 손녀의 뒷모습이 믿음직스럽고 아름답다.


2023년 방배 유스센터 재개관, 20주년 축하 기념 디지털 드로잉 공모전

대상 수상 작품

초등5년생 D가 담아 놓은 많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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