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앙리 展, 창덕궁
2025년 새해를 맞은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월 29일, 또 하나의 새해, 이른바 구정(舊正) 설날이 되었다. 1월 25일 토요일, 주말 휴일부터 시작하여 30일까지 장장 6일 간의 연휴가 주어졌다.
딸네 두 가족들은 필리핀 어학연수로, 스페인 패키지 투어로 각각 서울을 떠났다. 성당에서 바치는 조상들을 위한 합동 위령 미사를 아들가족과 봉헌하기로 했다. 수도원에도 미사 봉헌을 신청했다. 아가 둘을 데리고 미사에 참여하겠다던 아들 부부의 야무진 포부는 두 녀석의 옷을 입히고 육아용품들을 챙기느라 출발도 하기 전에 무산된 듯싶다. 열 시 미사 직전에 아들 혼자 도착했다.
제대 앞에 차려진 제례상에 두 명씩 줄 지어 묵례와 분향을 하는 순서에만 20여 분이 소요되었다. 연도가 너댓 번 반복되었다. 아가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부부, 자녀를 앞세운 가족들, 혼자 참석한 남녀노소 등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꽉 채운다.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먼 길을 나서거나 모여든 친척들과 차례를 지내느라 명절에는 성당 올 생각조차 못 했던 예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점점 더 간소화되어 가고 있는 가정의례의 변화가 늘어난 미사 참석 인원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미사를 마치고 아들네 집으로 갔다. 현관 안, 중문 반투명 유리창에 비치는 아가들의 그림자가 바쁘다. 탕탕 문을 두드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낸다. 며느리 혼자 둘을 보살피느라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집.
떡국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히 할머니인 내 몫이다. 냉장고며 싱크대 안의 모든 주방 도구들이 이미 내 살림인 양 손에 익다. 필요한 재료들을 꺼내어 뚝딱뚝딱 맛있는 떡국을 준비했다. 온도만 맞으면 대충 합격인 즉석요리 떡국이 이런 자리에서는 적격이다. 냉장고 속에는 안사돈 어른이 챙겨다 놓으신 유리그릇 속 밑반찬들이 깔끔하다. 좌충우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대는 아이들 둘을 쫓아다니며 먹이고 건사하느라 어른 셋이 바쁘다.
부엌 정리를 다 끝내었다.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바쁘게 현관을 나섰다. 양력 설날인 1월 1일을 함께 지낸 E와 음력 설날도 같이 기념하자는 약속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중인 미셸 앙리의 꽃 그림들을 감상하기로 했다. 오후 2시의 약속 시간을 조금 넘겼다. 저 멀리 서 있는 반가운 E의 얼굴과 눈 맞추는 순간, 헐레벌떡 달려오느라 숨 가빴던 마음 한 자락을 스르르 풀어내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꽃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캔버스 위에서 꽃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상상력이라는 마법을 부린다는 미셸 앙리. 그의 이름 앞에는 '위대한 컬러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주최 측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채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이 전시회를 홍보한다.
빨간 양귀비꽃을 많이 그렸지만 노랑, 분홍, 하양, 보라,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탁자 위 투명한 크리스털 꽃병 안에서, 시원한 강바람 부는 창가에서, 초록이 무성한 들판에서 예쁜 자태와 화려한 색깔을 맘껏 펼쳐 보이고 있었다.
지나갔던 곳을 돌아와 몇 번씩 다시 보기도 하면서 느긋하게 꽃 그림과 그에 대한 화가의 생각을 보고 읽었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는 날이다. 돌아와 함께 저녁을 준비했다.
냉장고 파먹기. 냉장고 속 재료들만으로 후딱 만들어진 집밥이 훌륭한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야채 박스 속, 한 봉투 가득 들어있던 당근 몇 개는 새콤하고 구수하게 식감 좋은 라페로 변하여 두 개의 유리병에 꼭꼭 눌러 담겼다.
간단한 과일과 달걀, 쑥떡으로 이튿날 아침을 먹고 구정 명절 나들이로 나선 곳은 창덕궁. 며칠 전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에서 유홍준 님의 끊이지 않는 물길처럼 유려하고도 해박한 창덕궁 설명이 귀에 쏙쏙, 마음에 폭폭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를 계기로 새로운 왕조의 중심 궁궐로 건설한 경복궁. 그 이후 조선 3대 왕에 등극한 태종 이방원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겪으며 이복동생을 죽이는 등 가족 간의 갈등과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떠올리게 하는 경복궁을 피해 그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하나 더 지었다. 창덕궁.
기존의 정통화된 직선적 궁궐 배치로 지은 경복궁을 법궁인 주궁으로 삼아 외국 사신 접대 등 공식 업무를 보는 한편 실용성과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조성한 창덕궁은 왕이 머무르고 쉬는 곳으로 삼았다. 양궐 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피난을 떠난 후 백성들의 방화로 완전히 불타 버린 경복궁은 흥선대원군에 의해 1868년, 270년 만에 법궁의 지위를 회복했다. 반면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창덕궁은 광해군 2년, 1610년에 중건이 완료되어 260년 간 법궁 역할을 하며 중심 궁궐로 자리 잡았다.
헌종이 주문한 양반가의 사랑채 분위기로 지어진 창덕궁의 낙선재는 국권을 상실한 순종과 마지막 황후인 순종의 비 윤황후,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 여사, 무력한 대마도 도주 소 다케유키 백작과 정략결혼을 했으나 정신분열증을 앓아 이혼을 한 고종의 딸, 덕혜옹주 등이 불우한 여생을 보낸 조선 왕조 마지막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평지에 지은 것이 아니라 산자락을 타고 지었기에 창덕궁 뒤의 10만 평 울창한 숲, 거대한 자연이 후원이 되었다.
창덕궁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주변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여 자연환경과 조화로운 배치를 이루는 비정형적 조형미를 보여주는 독창성
*사계절 변화하는 자연미와 독특한 조경양식을 갖춘 후원의 아름다움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조선시대 궁궐로서 한국 전통 건축 및 조경의 뛰어난 가치
* 조선 왕조의 철학과 문화, 전통 풍수지리 사상과 유교적 정치이념이 반영된 대표적인 건축
유홍준 님의 깊고 넓은 인문학적, 역사적 문화재 해설은 창덕궁 편에서 유난히 그 진가를 높인다. 대학 시절 처음 만난 신선한 감동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출간되는 대로 정신없이 읽은 이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분이 참으로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어르신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발행 부수 500만 권을 넘어섰다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 책 자체가 우리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한껏 높이 일깨워 주는 귀한 문화유산이다.
구정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 일요일.
별로 붐비지 않는 고궁 안에는 허술하고 요란한 한복 차림의 외국인 관광객, 어린 아가씨들이 꽤 많다. 셀카봉을 들고 열심히 사진 찍을 자리를 찾는 나홀로 여행객도 적잖이 눈에 띈다.
궁을 나와 십여 분 걸어서 찾아간 맛집,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서울분원 법련사 지하 한식뷔페식당.
많이 기다린 끝에 가성비 200%의 성대한 상차림을 마주했다. E와 함께한 구정 새해맞이 나들이를 마무리하는 순서, 행복한 밥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