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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꿈길 방문

by 서무아

당신과 같이 장만했고 당신이 내 명의로 셀프 등기를 했고 마음에 들게 알뜰한 리모델링을 해서 들어가 살았던 집. 투병 2년 반 만에 당신이 먼저 그 집을 떠났습니다. 1년 9개월이 지난 2025년 4월 10일 나도 집을 옮겼습니다. 참 많이 좋아했고 살뜰히 가꾸었던 그 집과 우리들의 인연이 다한 모양입니다.

처음으로 혼자서 이사를 했고 아이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모든 것이 쉬이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입주청소, 성당과 동사무소 전입신고, 인터넷 연결, 가스 연결, 에어컨 설치, 방범시설 가입 설치까지 모두 빠른 시일 내에 깔끔하게 잘 진행되었습니다.


옮겨온 곳은 친정 7남매의 둘째, 우리 집 장녀였던 큰언니가 남은 여섯 형제들에게 물려준 집입니다. 90세이신 큰오빠를 위시한 6남매의 대표 상속자가 된 내가 6개월 동안 비워 두었던 이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2년 간 소유하여 양도소득세를 면제받고 매도 후 6남매에게 1/n씩 분배하기까지 이 집을 잘 관리하고 간수해야 합니다.

막내 남동생 J, 조카 E와 나, 세 명이 힘을 합쳐 지금까지 복잡하고 까다로웠던 법적, 세무적 상속업무를 잘 마무리했습니다. 연세 많으신 형제들과 장성한 조카들의 조용한 응원과 적극적인 협조가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언니가 30년을 살았던 이 골목, 10년을 살았던 이 집. 내가 아는 이웃은 아무도 없지만 전혀 낯선 곳도 아닙니다. 긴 세월 형부와 언니께 명절, 생일, 공휴일, 함께 인사 다니고 식사 나누었던 곳이니 당신에게도 익숙한 집입니다.

이사 온 지 19일째인 오늘, 2025년 4월 29일, 새벽 3시 30분. 당신이 이곳으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꿈속에서 내가 머무르고 있는 집은 밝고 크고 아늑했습니다. 집에서 신부님과 여러 교우들을 초대하는 공식 모임이 있었습니다. 긴장 속에 그 일이 잘 끝났습니다. 친구들 몇은 끝까지 남아 나에게 이런저런 충고들을 해 주었습니다. 내가 잠깐 어디로 가게 되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집을 비싸게 세를 주라는 충고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곧 돌아올 계획이니 남에게 빌려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친구 E랑 집 밖으로 나오니 앞집 화단에 무척 커다란 귤과 탐스런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나도 우리 집에 저 나무들을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둘은 몰래 살짝 조금씩 옆집 과일들을 따먹기도 했습니다. 그 집 마당가의 서랍에는 많은 과자와 빵, 먹고 남은 포도가 몇 알밖에 붙어 있지 않은 볼품없는 포도 두 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E는 옆집 서랍에서 맛있어 보이는 빵 하나를 꺼내 들고 우리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조금 지저분한 타월 걸레를 집 앞 냇가에서 깨끗이 빨았습니다.


내 침대 위, 내가 누워 있는 침대 가장자리로 누군가 겅중겅중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잠결에 어슴프레 당신인 것이 느껴졌습니다. 출장을 갔는데 업무가 빨리 끝나 일찍 돌아왔답니다.

"여보, 여보! 자기야? 자기 맞아?"

입 밖으로 말을 꺼내려했지만 가위에 눌린 듯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안타까웠지요. 한순간 당신이 누워 있는 내 가슴 위로 머리를 묻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뒤통수를 쓸어내리며 내 품에 당신을 안았습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이렇게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만지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은 끝까지 아무 말 없이 폭 안겨만 있었습니다. 나는 숱 많고 잘 다듬어진 당신의 뒤통수 머리만 하염없이 쓰다듬었습니다.

눈물에 흠뻑 젖은 두 눈을 떴습니다. 꿈이었지요, 너무나 생생한.


나는 소리 내어 계속 말했습니다.

"여보, 정말 고마워. 잊지 않고 찾아와 줘서, 멀리 떠나 버리지 않고 이렇게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늘 내 옆에서 나와 함께 해 줘. 내게 맡겨진 일들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유능하고 꼼꼼한 당신이 많이 도와줘. 이 집을 잘 관리하고 잘 매도해서 돌아가신 언니의 마음도 헤아리고 형제들과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당신이 도와줘. 아이들에게도 좋은 엄마 역할을 잘할 수 있게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


뜨거운 눈물 속에서 다시 한번 우리들의 50년을 떠올렸습니다.

섬세하고 따뜻했지만, 많이 사랑했고 공통점도 많았지만 또 많이 힘들고 어려웠던 우리 둘의 그 세월. 너무 많이 싸워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것이 큰 숙제로 남았습니다. 어렸던 우리 둘의 어깨에 지워진 양가의 무게와 미숙한 자기 방어, 인색한 표현으로 충돌하고 배척하며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지만 우리 만남은 긴 세월 변함없었던 뜨거운 순정이었고 귀한 선물이었음을 우리는 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했고 나 또한 당신을 얼마나 많이 좋아했는지를 우리는 둘 다 잘 알고 있지요.

다시 선택한다 해도 나는 당신을 내 배우자로 선택할 것입니다. 그때는 결코 연약하여 걸려 넘어지지 않고 결핍을 뛰어넘고 인내하여 당신을 따뜻하게 포옥 안아주는 성숙한 인격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나흘 후인 5월 3일은 어머님의 10주기 기일, 두 달 후면 당신의 두 번째 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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