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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을 쫓아서

바다로, 바다로ᆢ

by 서무아

남은 이틀의 여정에는 우리들의 또 다른 로망이 담겨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개통된 ITX ㅡ 마음 (부전 ~ 강릉) 열차를 타고 동해선을 따라 펼쳐질 차창 밖 바다 감상하기, 강릉에서 서울 젊은이들의 당일 데이트 코스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스타벅스 강문해수욕장점 바다 멍 때리기, 인기 특허품이라는 초당마을 짬뽕순두부 먹어 보기.

강릉의 명물인 99칸 전통 한옥, 선교장과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생가인 오죽헌을 방문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첫 번째 꿈은 허망하게 사라졌다. 다섯 시간 남짓의 승차 기간 동안 바다가 보이는 구간은 겨우 30분 정도에 불과했다. 묵호에서 동해로 지명이 바뀐 동해~정동진~강릉의 짧은 노선에서만 바다가 나타났다. 2026년 이후 KTX ㅡ 이음이 투입되면 소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들 예정이라고 한다.


역 앞에 줄을 선 택시를 이용해 숙소에 먼저 들렀다. 경포해수욕장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걸어서 20 여 분, 맵을 읽고 행인들에게 물으며 경포호를 지나 찾아간 초당 순두부마을. 막 주차장으로 들어선 대형관광버스 석 대에서 내리는 손님들이 떼 지어 몰려가는 곳으로 우리도 들어섰다. 대기 번호표를 뽑고 주문을 하고 북새통이었지만 이것도 여행의 묘미이다. 기다리는 일쯤이야 끊어질 줄 모르는 수다를 벌이는 또 다른 기회일 뿐이다.

호기심 넘치는 B는 매콤, 쫄깃하다는 원조 짬순 (짬뽕 순두부)을 주문했고 셋은 담백한 순두부 백반을 선택했다.


쉬어야겠다며 J는 숙소로 돌아가고 셋은 다시 스벅강문해수욕장점을 찾아 나섰다. 도보 10분 내외라고 맵이 안내해 준다.

흰 파도를 계속 보내주는 경포해수욕장 바다와 푸른 기상으로 쭉쭉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솔숲 사이의 데크길을 걸었다. 곧이어 나타난 강문해수욕장에서는 주말특별행사를 기획한 모양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차가운 가을비 속에서 무대와 음향기기 설치 작업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가 나왔다. 3층 통유리창에서 바라보는 바다 경치가 일품이라는 곳. 우리도 3층을 확보했다.

어느새 어둑해진 바다, 창문 밖의 검은 밤바다, 강릉 강문해수욕장.

카페를 나와 어두워진 바닷가 모래를 밟는다. 오는 길에 보았던 공연장에서 무명 여가수 홀로 마이크를 잡고 트로트를 부르고 있다. 낯 선 곡이다. 궂은 날씨 탓에 사람 없는 텅 빈 백사장. 셋이 잠깐 발을 멈추고 가락에 맞추어 어설픈 스텝을 밟았다. 몸치인 우리들의 웃기는 스텝. 웃기 바빴다.


어젯밤에도 밤 바닷가 백사장에 나갔다. <달맞이길 체코빵> 식당에서 돌아온 숙소. 열 시가 넘었지만 바닷가로 나가자는 누군가의 제의에 선뜻 따라나섰다. 동백섬이 있는 조선호텔 이 끝에서부터 달맞이 길이 시작되는 저 끝까지 걷다 보니 어느새 첫 출발점에 와 있었다. 신을 들고 맨발로. 학창 시절 해운대에 얽힌 각자의 추억들을 나누었다.


부산에서 연애를 한 사람들이라면 빠뜨릴 수 없는 곳, 해운대 백사장. 나도 예외일 수 없다. 켜켜이 쌓여 있는 많은 추억들이 내 마음을 두드린다. 행복했던 순간들이니 고마워할 뿐이다. 많이 누렸던 내 지나간 시간들에게 회한 대신 감사의 옷을 입혀 본다.

한편으론 내 추억 속에 빠지고 또 한편으론 친구들의 추억을 들으며 밤바다에 띄워 보낸 우리들의 웃음들. 자정을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던 어젯밤.


모래 위에 남긴 즐거운 시간들이 따뜻한 얼굴로 오래오래 빛날 것이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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