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붙이는 만능 스카치테이프

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by 그님


흐릿한 아침이 먼저 나서지만 뜨겁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구름이 막아서지 못하고 저만치 물러가며 흑흑... 나도 흑흑흑... 덥다 더워~ 더위가 매섭다.


이글거리며 달라붙어 쫓아내고 싶은 뜨거움을 꼬옥 끌어안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러 학사 식당으로 간다. 집 반찬에 비해 진수성찬이지만 내 입맛엔 그저 그렇다. 싱글벙글 웃으며 대만족하는 남편이닷.


호텔 뷔페보다 더 좋다고 한다. 그건 아니지 싶은데..... 호텔 뷔페는 과식으로 기분 좋음과 나쁨을 넘나들고 오병이어 뷔페는 적당한 양으로 배가 부르기도 하고 안 부르기도 하다. 외부 음식이 내 입맛에 꼭 맞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한 끼 때운다는 느낌. '오늘도 한 끼 잘 때웠습니다.'로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점심을 먹었으니 부른 배를 소화시키려 산책을 갔다. 배 둘레 헴이 두툼해질까 봐 걷기 하는 남편과 나~ 남편은 우산으로 해를 가리고 나는 모자 쓰고 부채질로 더위를 쫓아냈다.


가끔 남편한테 부채질을 해주었더니


"당신만 부쳐요. 나는 괜찮으니께."

"내가 더우면 당신도 덥잖아."

"당신 힘드니까 그렇지요."

"나도 괜찮아."


투닥 투닥 별것도 아닌 걸로 웃었다가 큰 소리 냈다가 다시 조용~


"뭐라 말 좀 해봐요. 나만 말하네요."


남편과 같이 걸으면 나보다 더 말이 많다. 읽은 책 보따리 풀어 놓고, 친구 얘기 보따리, 작은 도서관에 대한 얘기 보따리, 교회에서 친교 했던 얘기 보따리, 아이들 얘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풀어 놓는 남편. 산책길이 그리 멀지 않아 다행이닷.


집에 와서 흘린 땀을 수습하려 샤워를 하니 세상이 천국이닷.


세탁기가 빨래를 꺼내라고 멜로디로 부른다. 행동 빠른 남편은 성큼성큼 다가가 패드를 꺼내들고나오는데 갑자기 탁~ 치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다용도실과 주방 사이에 놓은 플라스틱 소화 기판을 발로 친 것이다.


"에구~ 소화 기판 부서지겠네."


말하니 발아래에 놓여있는 소화기를 1초, 2초, 3초... 약 5초 이상 쳐다보는 남편..... 혹시 발이 다친 건 아닌지


"아구~ 당신 발 안 다쳤어? 괜찮아?"

"늦었거든요. 신랑 발은 걱정하지 않고 소화 기판 부서졌냐고 물어보고."


아차차 한발 늦었다. 발은 괜찮은지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데. 여전히 소화기에서 눈을 못 떼는 남편이닷.


"왜? 소화 기판 부서졌어?"

"아니. 금 갔는데요."

"뭐? 발에 망치를 달고 다니나? 금이 갔다고?"

"붙이면 되죠. 뭘~"


'어머낫~ 언제부터 쿨한겨~ 나는 화나는디.'


"손대면 부서지고 발대도 부서지니 당신은 손하고 발에 망치를 달고 다니나 봐."

"뭐? 이 사람아. 내가 안 다친 게 중요하지. 다쳤으면 좋겠어요?"

"아니지. 왜? 당신 발 아퍼?"

"............."

"당신 다쳤냐구~"

"아니. 다치진 않았어요."

"거봐 다치지 않았잖아. 조심해야지. 당신 발이 거치니까 소화 기판을 발로 차니까 부서지게 되잖아."

"이 사람아~ 그래도 안 다친 게 어디야~"

"그치. 안 다쳤으니까 당신을 뭐라 해야지. 에구~ 당신 때문에 살림 거덜 나겄어~"

"그럼 당신이 빨리 와서 빨래를 꺼내든지 해야죠."

"미안혀~ 다 내 탓이지."


소화 기판은 플라스틱이라 다행이닷~ 만약 소화기처럼 판이 쇳덩이였다면 아찔~ 남편 발은 소중하니까~


패드를 널고 다시 다용도실에 조용히 들어간 남편. '찌지 직'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스카치테이프와 가위를 들고 소화 기판을 붙이고 있다. 모든 붙이기에 사용하는 만능 테이프를 겹겹이 붙인다.


'아이고~ 마음에 안 들어라~'


스카치테이프 붙이는 것을 싫어하는 나. 시간이 지나면 늘어지면서 끈적임이 남는데..... 주변이 누렇게 변색되는 경우도 있는데..... 남편은 스카치테이프를 최고라 생각하고 남발하는 재주가 있다. 모든 물건의 깨진 흔적을 테이프로 고정하는 남편. 약으로 치면 만병통치약~!!! 투명 테이프라서 괜찮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남편.


집 안 곳곳 두루두루 살펴보면 테이프의 흔적과 손 대면 끈적임이 만져진다. 나름 해결한다고 애쓴 흔적들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말해도 자기 생각대로 하고야 마는 남편.


'그려~ 당신이 옳소.'


흔적을 지우려고 흔적을 남기는 것도 감사.


(여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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