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팥빵과 기분좋은 반띵

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by 그님


아침 먹고 혼자 걷는 산책길이 춥다.

점심 먹고 둘이 걷는 산책길도 춥다.

저녁 먹고 혼자 걷는 산책길은 더 춥다.

하루 종일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은행에 만기 예금 문자가 나의 기분을 up up~


잊고 살았다. 기쁜 소식이다. 남들은 주식을 해서 크게 불린다는데 마음이 새앙쥐만한 나. 이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크게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는 일 년 보장 정기예금에 의지하고 살고 있기 때문. 적은 이자여도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다.


은행이 집 가까이 있었는데 이전해서 가수원동까지 가야 한다. 남편한테 말했더니 데려다준다고 하며 보태는 말~


"근데 데려다주면 뭐 그런 거 콩고물 떨어지는 거 없어요?"

"아니. 없어."

"에이~ 그럴 땐 콩고물 아니라 떡이 나온다고 해야죠."

"떡도 없어."

"그래도 뭔가 있어야죠. 안 그래요? 내가 은행 가면서 라떼 대접하리다."


콩고물을 기대하는 남편은 라떼를 사준다고 기분을 상승시킨다. 이럴 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야 들어준다.


"여보, 거기 근처에 정인구 빵집 있다고 했지?"

"응. 근데 왜 갑자기 빵집이 나와요"

"나 그 빵 먹고 싶어."

"빵을 왜 먹어요. 밥 먹지. 난 빵 안 먹어요."

"당신 입만 입이여~ 내가 먹고 싶다고 하는디~"


팥빵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나도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요? 그럼 은행 데려가 주면 팥빵은 당신이 쏘는겨?"

"아니. 라떼도 당신이 사고, 빵도 당신이 사~"

"뭐라고요? 에이, 그건 불공평하잖아요. 공평하게 해야지."

"당신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하잖아~"

"에이~ 벼룩이 간을 빼먹지. 그거 얼마나 된다고 그래요."


오늘따라 유난히 집요하게 걸고넘어지는 남편이닷.


"한 가지는 당신이 사야죠. 나는 원활한 예산 지출을 집행하기 위해서 아끼고 절약해야 당신 여행도 시켜주고 라떼도 사주죠."

"알았어. 그럼 당신이 좋아하는 팥빵 사줄게."


니캉내캉 한 번씩 사기로 조율 끝.


팥빵은 나보다 남편이 더 좋아한다. 유기농 팥빵은 가격이 비싸다. 집 주변에 있는 빵집이 아니라 자주 다니기 어려운 빵집이닷. 마음먹고 꼭 사 오려고 다짐 중이었다.


은행에 갔다. 원금을 재예치하고 이자는 현금으로 받았다. 기분 좋게 쓰려고 봉투에 쏘옥 넣어 은행을 나왔다.


승용차에서 내려 나를 기다리는 남편한테 갔다. 차에 타려는데 모퉁이에 내가 애타게 찾았던 정인구 빵집이 눈에 보인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찾으러 다닐 뻔했다. 찾는 자에게 바로 보이는 마법. 내가 찾는 빵집이 여기라고 손짓하자 남편은 핸드폰으로 검색하려다 깜짝 놀라며 멋쩍게 웃는다. 대각선으로 걸어 길 건너 빵집에 들어갔다.


팥빵을 사면서


"여보~ 찹쌀떡 드실 거야?"

"아니. 안 먹어요. 생각 없어. 사지 마요."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사면 잘 먹는 남편인 줄 알기에 찹쌀떡 두 개를 냉큼 집어 계산하고 탁자에 앉아서 맛있게 냠냠~ 안 먹는다고 했던 남편은 어디 가고 같이 먹는다. 나보다 더 맛있게 드신다. 시아버님을 닮아 팥빵 귀신이다.


냉동실에 저장했다가 먹으려고 한 박스 12개를 샀다. 한 박스 더 사려다 말릴 걸 알기 때문에 참았다.


"한 박스 씩이나 사요? 몇 개만 사지. 저거 다 어디다 놓으려고 그래요?"

"냉동실. 냉동해 놓고 먹어도 괜찮대. 당신 팥빵 좋아하잖아"

"나 안 좋아해요."


좋아하는 걸 아는데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남편. 왔을 때 사야 한다. 나중은 없다. 남편이 좋아하는 빵인데도 사러 가자고 하면 항상 안 간다고 하기 때문에..... 다음에 빵집 가자고 하면 분명 안 간다고 결사반대할 남편이다.


오늘만 있다. 지금 현재 저질러야 한다. 남편을 잘 알기 때문에 항상 일을 저지르고 나중에 칭찬받는 나. 솔직하지 못한 남편은 뒤늦게 고마워한다.


승용차에 탔다. 집에 가려고.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흥~ 알면서~ 입이 귀에 걸고 씨익 웃는다.


"얼매에요~"

"반띵."

"반띵~ 그것도 좋지. 고마워요."


이자 전액을 주려다 반씩 나눴다. 내 기분도 좋아야 하니까. 나도 남편을 위해 써야 하니까.


여행 가서 맛있는 것으로 대접하겠다는 남편. 보너스 같은 작은 이자지만 기분 up된 오늘은 부자가 된 것 같다.


남편이 좋아하는 팥빵을 냉동실에 쟁여놔서 더 부자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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