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 티셔츠 편한 맛을 알게 된

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by 그님


아침엔 왕창 흐리고 봄비가 날리더니 점심 무렵 슬금슬금.....


구름 커튼을 걷은 해님은 고운 자태로 방긋 웃는다. 봄 햇살로 다가온다.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 하얀 매화..... 단비와 햇살로 봄을 키운다. 활짝~


현관문 똑똑똑. 소파에서 낮잠을 청하던 내 귀에 분명 들렸다. 일어나서 문을 열었더니 주문했던 남편의 옷이 도착.


"여보, 왔어~ 옷 왔어."

"그려? 일찍 왔네요."


남편이 포장한 비닐이 쭉쭉 찢길까 봐 겁이 난 나는


"가만있어. 사진 찍고. ○메프에 사진 올려야 돼."

"아구~ 블로그도 아니고 뭔 ○메프에도 사진을 올린댜~"

"리뷰 써야 하거든."

"그거 꼭 써야 해요?"

"그건 아닌데 그래도 물건 받으면 쓰고 있었어."

"그거 쓰면 뭐 준대요?"

"주긴 뭘 줘. 사고 싶은 사람들이 리뷰보고 구매하든지 말든지 하는 거지."

"아무것도 안 주는데 왜 써요. 안 써도 되지 뭘~"

"물건 받으면 항상 썼던 거라 쓰게 되네. 여보, 그럼 뭐 달라고 해 볼까?"

"됐슈~ 그냥 해 본 말여~ 신경 쓰지 마요."

"주지도 않을걸~"


이야기 하면서 사진을 찍는 나.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 남편은


"하이고~ 내 맘에 쏙 드네. 너무 이뻐요. 색깔도 다 마음에 들고요. 역시 당신이 보는 눈이 있어요. 어쩜 이렇게 딱 내 스타일이랴~"


퇴직하기 전까지 와이셔츠만 입은 남편이닷. 집에서조차 면 체크 와이셔츠를 입고 티셔츠는 칼라가 있는 옷만 고집하고. 어쩌다 라운드 티셔츠나 니트를 사 주면 자기한테는 안 어울린다 단정 짓고 거부하는 남편.


퇴직한 후 바뀌었다. 완전 바뀌었다.


한여름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는 남편한테 반팔 라운드 티셔츠와 브이넥 티셔츠를 내주며


"여보, 이거 입으면 시원하고 좋은데 입어 봐."

"글쎄애~ 나한테 안 어울릴 것 같은디. 한번 입어라도 볼까~"


말꼬리를 흐리며 어쩔 수 없이 입는다는 듯한 남편의 표정. 티셔츠를 입더니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으로


"이거 안 입은 거 같은데. 어뗘? 보기에 괜찮아요?"

"괜찮지 그럼. 당신만 좋으면 시원하니 아주 좋은 거야."

"그려? 어색하지 않아요?"

"그거언 당신 생각이고. 그동안 안 입어 봤으니까 그렇게 느껴지지."

"근데 이거 가볍고 시원하긴 하네요."


칼라가 없는 티셔츠를 입게 된 과정이닷.


작년 겨울에 남편 모르게 질렀다. 기모 라운드 티셔츠를 남편이 입으면 좋고, 안 입으면 내 것으로 하려 마음먹고 질렀다. 기모 티셔츠 석장을~


택배가 도착하면 으례히 관심을 보이는 남편. 자기가 주문한 것도 아닌데 꼭 확인하는 남편.


"또 뭐 뭐 주문했어요? 뭐야 그건~"

"응 당신이랑 입으려고 샀어."

"뭔데~ 나랑 입으신다고~"


은근 기대를 하는 남편한테 포장을 뜯어 내보이자


"당신 입어요. 내 스타일 아냐~ 난 그런 옷 안 입어요."


아주 완강하게 거부하는 남편이닷.


"이거 세 장을 나 혼자 입으라고? 당신 한 장만 입어 봐."

"아이, 아니 안 입어도 돼요."

"그냥 입어 보라니까. 다 내가 입을껴어~"

"당신이 입을 건데 왜 내가 입어 봐요."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남편은 싫은 티를 팍팍~


"내가 입기 전에 일단 당신 먼저 입어 보라고. 어떤 색이 마음에 들어?"


한 장을 꾸역꾸역 마지못해 입는 남편. 다독다독 다독이며


"와~ 잘 어울리네. 당신한테도 잘 어울려. 색도 그렇고."


침이 마르게 칭찬 세례를 한 덕분인지


"정말 잘 어울려요? 편하긴 하네. 거울 봐야지 그럼."


거울까지 보는 남편이닷. 이힛~ 넘어가기 일보 직전 귀여운 남편. 작전에 말려 들어가는 남편.


"어후~ 이거 입으면 춥지 않겠네요. 나는 라운드가 안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입어 보니께 좋네요. 이거 하나만 내가 입을게요."

"아니 두 장 입어. 내가 한 장 입을게."


이.렇.게. 약속을 했지만 겨우내 석장을 다 입었다는 썰~

"아구~ 이렇게 편하고 좋은 걸 몰랐네."라면서.....


지난주 산책길에


"여보, 겨울에 입었던 티셔츠처럼 된 라운드 티셔츠 얇은 거 봄에도 나와요?"

"나오지이~ 기모 없는 걸로."

"그려 그려. 기모 없는 거 또 사 봐요. 검색해서."


알았다고 하고 잊고 있었더니 또 상기 시키는 남편. 토요일에 검색해서 주문했더니 오늘 도착.


알았다. 알게 되었다. 한번 입어만 본다더니 편한 옷을 제대로 알게 된 남편.


"나는 이런 옷을 절대 안 입을 줄 알았어요. 근데 입어보니까 너무 편하고 좋아요. 진작 입을 걸 그랬어요."


옷에 대한 편견이 많았던 남편. 이젠 스스럼없이 나한테 주문 요청하는 귀여운 남편이닷.


언제든지 말만 하면 무조건 무조건이야~


(봄에 쓴 글)

SE-ce582346-1d14-4b60-8e66-03461f8d187f.jpg?type=w1
SE-dda31f38-b835-4351-b0c6-bd49c8b695b0.jpg?type=w1
SE-85db3b5c-656b-41e7-b69c-44f34ae71de3.jpg?type=w1
SE-8471e27a-b328-4c8b-859c-ddf5dc1f2cf4.jpg?type=w1


이전 08화나는 알뜰씨, 남편은 궁상씨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