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by 하루나무




'선풍기'는 여름에는 필수인 기구이다. 한낮 내내 옆에 틀어 놓기도 하고, 밤새 옆에 틀어 놓고 자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필수적으로 쓰이면서 여름에 가장 옆에 있는 선풍기는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가을에는 어느덧 점점 쓰이지 않다가 겨울이 되면 필요가 없어져 창고에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고 먼지가 쌓인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 아닐까? 일손이 필요할 때는 급하게 모집되어 쓰인다. 없어서 못 쓴다. 하지만 그 쓰임이 다하면 비정규직은 바로 필요가 없어져 쓰이지 않게 되고 다시 회사에서 사라진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잔인한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정규직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지만 비정규직은 마치 4계절을 돌아다니는 선풍기처럼 어느 때는 여름에 밤낮으로 쓰이지만, 어느 때는 겨울에 창고에 들어가 먼지만 쌓이는 선풍기의 모습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선풍기가 사실 사계절 내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겨울에도 환기가 필요하고, 봄에도 공기 순환이 필요하다. 실내 공기가 답답할 때, 빨래를 말릴 때, 난방이 과할 때, 우리는 선풍기를 찾는다. 하지만 우리는 선풍기를 '여름 전용'으로 규정하고 나머지 계절에는 창고에 쳐박아 둔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노동은 사계절 내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그들을 '성수기 전용'으로 취급한다. 연말 물류 대란 때, 여름 휴가철 때, 명절 특수 때만 급하게 불러내고, 끝나면 다시 창고로 밀어 넣는다. 정작 그들이 없으면 일상이 돌아가지 않는데도, 우리는 그들을 '임시방편'이라 부르며 언제든 치워도 되는 존재로 취급한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선풍기가 아니라, 선풍기를 여름에만 쓰는 습관이다. 비정규직이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을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도구'로 보는 시스템이 문제다. 사계절 내내 필요한 노동을 왜 계절 노동자처럼 취급하는가. 이제는 창고에 쳐박힌 선풍기를 꺼내 먼지를 털 것이 아니라, 애초에 창고에 넣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