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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장금 Sep 10. 2023

마닐라가 그립지 않은 이유

아쉬움과 황당함만이 남은 필리핀 여행

    필리핀에는 졸리비(Jollibee)라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있다. 졸리비 때문에 맥도날드나 KFC 등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한다고 한다. 필리핀뿐 아니라 필리핀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도 꽤나 많은 매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음식점 중 한 곳이다.


    졸리비가 다른 여타 패스트푸드 브랜드와 다른 점은 햄버거를 다양하게 파는 다른 패스트푸드 브랜드와는 다르게 이곳은 음식의 종류를 다양하게 팔기 때문에, 햄버거, 스파게티, 치킨, 그리고 심지어 밥도 함께 세트 메뉴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특히나 치킨과 스파게티는 꼭 한 번은 먹어봐야 하는 가성비 좋은 음식이기 때문에 4천 원짜리 치킨 한 조각과 스파게티를 세트로 구성한 메뉴를 마지막 날의 브런치로 결정했다.


    치킨을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에 한국에서도 치킨을 잘 먹지 않아 어떤 브랜드의 치킨과 그 맛을 비교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치킨의 튀김이 두껍거나 질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바삭하게 잘 튀겨져 있었다. 그리고 스파게티는 마치 학창 시절 때, 급식으로 나온 스파게티와 흡사한 맛으로 한 번의 경험 이후에 구태여 몇 끼 남지 않은 필리핀에서 다시 찾아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Copyright 2023. 농장금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졸리비에서 식사를 마치고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를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이곳은 과거 스페인이 마닐라를 점령하였을 때, 스페인인 혹은 스페인계 혼혈들 만의 거주가 허용된 곳으로 마닐라의 작은 유럽과 같은 곳이었다.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과거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하였을 때, 스페인 군대가 주둔했던 곳인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와 그곳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는 마닐라 대성당(Manila Cathedral)과 성 어거스틴 대성당(San Agustin Cathedral)이 있어 유럽풍의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관광지이다. 


    산티아고 요새의 입구에는 요새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겠다고 우리에게 접근하는 관광해설사들이 꽤나 많았다. 물론 그들에게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함께 산티아고 요새를 거닐었다면 이곳의 역사에 대해서 좀 더 많이 배워갈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그저 조용하게 이 공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그래서 별도의 가이드 없이 친구와 둘이서 강렬한 태양과 함께 산티아고 요새를 거닐었다.


    이곳은 매표소를 지나 1km 정도 되는 광장과 같은 곳을 걸어와야지 산티아고 요새의 진짜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광장의 바닥과 잘 가꾸어진 정원의 느낌과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요새의 입구는 너무나도 극명히 대비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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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의 안에는 호세 리잘(Jose Rizal)이라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를 기념하는 박물관도 위치해 있었다. 그의 삶의 연대기와 그가 어떻게 필리핀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였는지 등을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을 지나서는 파시그강(Pasig)과 맞닿은 요새의 끝에 다 달았다.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요새와 강을 사이에 둔 21세기의 마닐라의 모습은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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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요새를 둘러보고 향한 마닐라 대성당은 그 크기가 정말 웅장했다. 성당 입구의 건너편에서는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한 사람들과 그들을 대상으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주말에는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하기 때문에 성당 내부에 들어가는 게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다행히 우리가 방문한 일요일 시간에는 별도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지 않아서 성당 안도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성당 내부에는 곳곳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 때문에 좀 더 섬세하고 정교한 느낌을 받았다.


    마닐라 대성당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옆에 성 어거스틴 대성당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쉽게도 결혼식 이진행 되고 있어서 관광객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비록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바깥에서 본 성 어거스틴 대성당의 내부는 마닐라 대성당 이상으로 화려했다. 물론 결혼식 때문에 좀 더 화려한 꽃 장식이 들어가서 이곳의 분위기가 달라 보일 수 있겠지만 중앙에 위치한 샹들리에 하나만으로 충분히 고급스러움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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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트라무로스에서 택시로 20~30분 거리에는 필리핀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SM 몰 오브 아시아(SM Mall of Asia)가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을 하였는데, 쇼핑몰 안에 식당이 너무나도 많아서 어떤 음식을 먹을지 고르는 게 힘들었다. 특히 식당을 정한 뒤에도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한참을 헤매다 겨우 찾았다.


    30분을 쇼핑몰에서 돌아다니 겨우 찾은 현지인도 찾아간다는 필리핀 맛집 Mesa에서 우리는 세트 메뉴 Boodle B를 주문했다. 부들(Boodle)은 전장에서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먹기 위해 바나나 잎 위에 각종 음식들을 올려놓고 손으로 먹는 부들 파이트(Boodle Fight)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2인분을 시켰지만 그 양이 굉장히 푸짐하게 나왔기 때문에 결국 다 먹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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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식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항공사에서 갑자기 다음날 오후 2시 30분의 비행기가 그 다음 날 새벽 5시 30분으로 변경된다는 내용이었다. 무려 15시간이나 비행시간이 뒤로 밀리는 안내 메일이었지만 메일 상에는 변경에 대한 그 어떠한 이유도 적혀있지 않았다. 나중에 체크인 카운터에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원래 출발할 비행기에 기술적인 결함으로 인해 비행시간 자체가 연착된 것인데, 메일에는 그에 대한 체류 시간이 늘어난 부분에 대한 보상이라든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는 항공사의 태도가 굉장히 아쉬웠다.


    그렇게 갑자기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가 사라지고 나니 먹던 밥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졌다. 무엇보다도 빠르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비행기의 좌석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졌지만, 선택지는 너무나도 제한적이었다. 기존 항공사의 항공권을 취소하고 다른 항공권을 사기에는 다른 항공사의 티켓의 비용이나 항공사의 환불 정책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시간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해당 항공사에 이메일을 쓰거나 전화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요일에 고객센터가 운영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혹여라도 그렇게 고객센터에 연결을 하다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밤비행기의 좌석조차도 놓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티켓 변경 수수료를 내고 오늘 밤 자정의 항공권으로 티켓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하루의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었던 마닐라에서의 하루가 갑자기 몇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더니 뭔지 모를 아쉬움이 생겼고, 쇼핑몰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까워졌다. 그래서 반나절동안 인트라무로스를 걸어 다녀 피곤하긴 했지만 좀 더 마닐라의 순간을 눈과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쇼핑몰 밖으로 향했다.

    몰 오브 아시아는 마닐라 베이(Manila Bay)에 위치해 있고, 관람차를 비롯해 다양한 식당들이 바다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석양을 감상하러 오는 곳이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이었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석양을 감상하기 위해 제방 위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얼른 자리가 없어지기 전에 제방 위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당장 오늘 밤에 떠나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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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기치 못한 상황 때문에 갑작스럽게 마닐라를 떠나게 되어 마닐라에서 실제로 머물렀던 시간은 48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48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마닐라에서의 여행은 핸드폰의 사진 속에서도 내 머릿속에서도 뒤죽박죽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물론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은 좋았지만 도시가 주는 강렬한 인상은 많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관광지도 제한적인 부분이 많았고, 음식도 약간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마닐라가 다시 가고 싶어 질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마닐라가 아직은 그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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