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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9. 2022

경영혁신---[꽁트] 西海電力株式會社

경영혁신---[꽁트] 西海電力株式會社

1989년 

 

꽁트는 꽁트일 뿐이다. 마치 담배를 피우다 버리는 꽁초처럼 쉽게 버릴 수도 있다. 버리고는 깨끗

하지도 않은 구두 끝으로 비비 비비고 짓이겨 불을 끈다. 바로 전까지도 제 입에 넣고 필터를 쥔 

손가락이 뜨거울 정도로 마지막까지 흡입하여 불을 당겨 피우던 고마운 담배와의 인연은 냉정하

게 끊을 수도 있다. 꽁트에 담긴 내용도 그렇게 버릴 수도 있다. 꽁트와 꽁초만 마음 아프다.

  

                                                    <나오는 사람들>

구품즙     은 한구전력 사장으로, 개혁의지가 강해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  

임금삼은 신설되는 서해전력 과장으로, 나무수풀처럼 쭉쭉 벋는 사람.

石磊砳   석뇌력은 신설 서해전력 사장으로, 공들여 경영의 돌을 쌓는다.

印打燮   인타섭은 구품즙 사장을 밀어내고 Intercept해 들어오는 한구전력 후임 사장.

 

     구품즙 사장과 임금삼 과장

구품즙 사장이 韓救電力公社의 경영을 맡게 된 것은 어수선한 이 회사의 꼬락서니를 더 이상 어물거리면서 놔두고 볼 수 없다는 정부의 단호한 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소야대

의 청문회 정국 하에서도 소문만 무성했던 전사장의 비행에 대해 별다른 단서를 노출시키지 않았던 한구전력의 교묘하고도 단수 높은 행정력은 운 좋게도 야당의 예봉을 피하긴 했지만, 그러나 정치권 공격의 표적으로 계속 남아있는 불씨였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차제에 뭔가 일대 쇄신의 의지를 천하에 보일 필요가 있었다.

특히 88올림픽 개막을 얼마 앞두지 않고 벌어졌던 전기원들의 집단행동은 “앗 뜨거워라!”하고 급히 처치는 했으나, 그것은 소위 약과이고, 뒤이어 불붙을지 모르는 발전소 근로자들의 웅성거림은 자칫 산업계를 아니 온 나라전체를 암흑으로 만들만큼 큰 우려를 낳는 것으로서, 정말이지 그들이 일을 벌이는 날에는 ‘모모 연구소’의 쟁의로 컴퓨터 가동이 중지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므로 관련 고위 책임자들을 현장으로 급파하여 이들 근로자들을 달래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구품즙 사장은 그래서 뽑힌 것이었다. 그는 누구인가? 저 요란했던 6.29때 온 나라가 노동자 천지로 노조운동이 마치 마른 잔디에 불 번지듯 하던 때에, 浦河제철주식회사의 사장으로 있던 그가 근로자들의 노조설립 움직임을 보기 좋게 무산시킨 장본인이 아니던가.

포하제철이 오늘의 국제 경쟁력이 있기까지 키워온 그 공로가 인정되어 장관으로 입각까지 했던 경력이 있는, 이름만큼이나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전문 경영인인 구품즙 사장인 것이다.

     

취임식에서 그는 “국민의 기업을 잘 경영하고 있지 못한다”는 힐난을 하면서, 이어 달포 후에 있은 조회사에서 “비대한 기업의 군더더기 살을 빼려는” 수술 칼의 예기를 전 사원에게 번떡여 보여주었다.

 (임금삼) 과장은 이 회사 직원으로, 남다르게 섬뜩한 칼날을 목젖에 느끼면서 마치 오랜 동안 숨죽이고 참고 있던 침을 삼키듯 호기심을 가지고 한 가닥 희망을 가지면서 또 한편으로는 일말의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미 이류회사로 떨어져 버린 한구전력의 어두운 앞날을 밝히는 서광의 희망을 가지면서, 반대로 물에 물 탄 듯 싱겁고, 늘어지는 엿가락처럼 맺고 끊는 게 없으며, 바람 타기에 익숙한 버드나무 같이 잘도 위기를 넘기는 이 회사가 오히려 口사장의 의지를 흡수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도 갖게 되었다.

특히 국내 굴지의 전통 노조를 자랑하는 한구전력에서 ‘있는 노조를 없애지는 못할 테고’, 그들의 요구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그러면서도 마치 “권위주의가 횡행하는 국민의 기업답지 못하다”는 지탄을 받고 있는 이 회사의 색깔을 어떤 색으로 바꿔 나갈 것인가? 참으로 회사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회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지는 불안이었던 것이다.


서해전력주식회사 설립 

취임 전부터 구 사장은 이 사람 저 사람 분주하게 만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수많은 보고도 들으면서 천재적인 경영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그가 파악한 문제점과 이를 타개하는 방책으로 참으로 신속하게 구상해 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西海電力株式會社’ 창설이었다.

‘西海電力’은 한구전력이 관장하던 「충청남도와 대전직할시의 발송배전에 이르는 모든 전력설비와 영업권까지 독립시킨 子회사」로서 주식의 51%는 한구가 보유하면서, 口품즙 사장 자신의 分身과도 같은 ‘石磊砳(석뇌력)’씨로 하여금 이 회사를 맡게 하고, 경영의 굵은 끈은 口사장이 직접 잡아당기는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만든 새 회사였다.

회사 설립지역을 충청남도를 선정한 것은, 때마침 불고 있는 서해안 시대와 걸맞은 일이었고, 특히 수년전에 자체 심사한 목표관리 최우수 사업소인 支社부문의 忠南支社와 水火力 발전소 부문의 安寧火力本部, 支店부문의 서산지점이 우연히도 모두 충청남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며, 그리고 또 곧이어 준공될 泰安火力本部의 출현과, 전국 제2의 도시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大田직할시를 염두에 둔 장기계획과, 중공 및 북한과의 발전연료 교역지로서 최적 지점으로 판단한 때문이었다.

또 하나 풍력, 조력 등 소위 공짜 자원에 대한 지리적 이점이 높아 이의 개발을 위한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 소신껏 경영케 하려는 미래업무에의 통찰 또한 노리는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한구전력에 대해 가해지는 ‘조직의 외형적 방대함에 대한 국민 여론’을 주눅들게 만들고, 지방화시대에 대비한 시범경영조직을 양성하는 고려를 하면서, 西海電力으로 하여금 자신의 意志를 대신 수행하게 하여, 한구전력에 되돌아 파급되는 효과를 노리는 작전을 구사한 것이었다.

자세히 분석해 보니 회사를 쇄신할 수 있는 전망은 없고, 잘못 했다가 노조가 들고 일어날 것이니, 차라리 손대지 않고도 일대 개혁을 일으키는 쪽이 낫다는 결론에 이른 것. 이것은 정면승부를 회피하는 일이 아니라 극도의 고단수 포석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충청남도를 선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진 등 충남지방에는 새로운 발전소를 더 많이 건설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신설 자회사를 만들면 새로운 조직과 새로운 신입사원들은 경영자가 좀 쉽게 요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대부분 새 경영진을 데리고 쓰리 큐션을 날려 일석삼조를 노린다 -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님 보고 뽕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 줍고, 꿩 먹고 알 먹고...


경영혁신 

임금삼 과장은 안녕화력발전소에서 西海電力 본사로 전출되어, 예산에 있는 서해전력 本社 기획관리실에 배속 받았다. 한구전력의 기획관리실은 사무 일만 처리했으나, 서해전력 기획처에서는 기술경영을 위한 기획부서가 핵심부서가 되어, 엔지니어인 임금삼도 그곳에 배속받았고, 임무는 「산재된 기술의 결집」이었다. 회사 내에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우수한 기술들을 한 데 모

아 ‘회사의 기술로 활용’하려는 회사의 원대한 기술기획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이것은 더 높은 경영기술을 만들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오늘은 출장명령을 받고 山川火力발전소를 거쳐 옛 근무지 安寧火力本部를 경유하여, 쾌속정을 타고 태안화력으로 가고 있다. 교통편이 발달하지 못해 쾌속정이 바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택시처럼 내달렸다.

안녕화력본부 옆 송도에는 Coal Center가 건설되어, 북한과 중공 그리고 호주 등지로부터 날라온 석탄이 대형선박으로부터 양륙되고 있다. 이곳에 하역된 석탄은 인근 석탄발전소는 물론, 전국 각지로도 운반되어 산업용으로 쓰이는데, 대형선박의 항구로 적합하여 서해전력이 개발하고 운영하고 있는 시설이다. 각 발전소가 각각 큰 하역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되었다.

서산 해안국립공원을 지나는 많은 섬에도 해저 케이블로 연결하여, 전기공급에 관한 한 섬이 아닌 육지로 만들었고, 삽시도 풍력발전소는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다. 태안화력발전본부 건설은 발전소 터 문제로 지역 주민들과 오랫동안 마찰이 있었으나 그 지방 출신 일부에게 평생직장을 제공하고 지방발전에 크게 기여할 굵직굵직한 약속들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극적으로 타결되었던 것이다. 

현안문제는 오히려 당진군에서 야기된 것이다. 이웃 태안군민들이 그토록 반대하던 발전소 건설이 지방발전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을 본 당진개발위원회가 후속발전소 유치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石磊砳사장의 돌을 쌓아 올리는 듯한 정성어린 노력과, 주어진 자율권한을 잘 활용한 지방행정기관과의 밀접한 유대가 발전소 터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었던 것. 

林과장은 태안화력발전본부에서 출장업무를 마치고 이곳을 떠나 ‘난지도 조력발전소’ 건설현장으로 다시 배를 몰았다.

석뇌력 사장은 사원들이 일당백의 일을 하도록, 가급적 조직확대를 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원성을 사던 민원부서의 상당부문과 발전소의 일부를 여성사원으로 대체시키고, 전체 사업소의 技術水準을 世界水準으로 끌어올리도록 技術自立에 심혈을 기울였다.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에 기라성 같이 모였던 명문대학 출신자들이 30여 년 만에 끊어졌던 후배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명문대생이 입사 시험에서 떨어지기도 했는데, 국내 산업계에 신선한 충격파가 되었다. 입사자의 자질이 우수해지자 초급간부임용고시가 사라지고, 일 잘하고 품성 좋은 사람이 간부로 발탁되었다. 정6면체같은 상하-전후-좌우의 엄격한 다면 평가로 간부를 선발하니, 한심전력의 명성 높은 ‘초급간부고시’보다 더 효과가 좋아졌다. 간부시험을 염두에 둔 사람들의 정신이 시험합격에 분산되는 정신을 모아 회사일에 집중하게 하였다. 

직원들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예민한 눈으로 회사 일을 처리하고 불합리한 요소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남의 회사처럼 느껴지던 기분이 사라지고 나의 회사 우리 회사라는 마음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우리사주’ 제도는 이러한 심경의 변화에 큰 동기가 되었다. 이 결과 수 없이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발전소 건설과 운전기술은 완벽하게 자립되고 있었다. 이것들이 발전원가를 떨어뜨리는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경영상태가 좋아지자 직접 주식시세에 연결되어 주가를 높이고 말았다. 林禁森 과장도 다른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사주로서 부자가 되어 있는 셈이고, 그래서 더욱 회사 일에 애착을 가지고 종횡무진 뛰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국산 중전기 및 중공업계의 납품품질을 엄격히 규제하고 지도하여 품질제고에 실질적인 기여를 함으로써 20년 전에 수행했던 국내 산업계의 리더자리를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품질부서와 감사성격의 업무는 통합하여 ‘기술 수평 전파’와 ‘경영기법 전달’ 업무로 바꿨고, 태양력, 조력발전과 같은 미래 에너지 분야에 대규모 투자가 진전되었다.


새로운 수요 창출

충청과 대전시의 영업, 타 시도로의 전기 수출. 이것 만으로도 회사는 잘 경영되고 있었지만, 대규모 자금조달 등으로 더 큰 회사로 도약하기는 어려우므로, ‘새로운 전기수요 창출’에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자동차, 가전제품회사 및 중전기 제작사들과 공동으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연구에 착수하였다. 성과를 거둔 것은 역시 전기자동차, 레이저 광선, 음향기기 개발 등이다.

그 성공은 결국 사원들의 머리싸움에 달렸던 것으로서, 결국 ‘우수인력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특별히, 발전소는 공한지가 없을 만큼 나무와 잔디를 심고 선진국과 똑같은 무공해 발전소를 실현시켰다. 울창한 숲에는 야생 동물들이 몰려들었고 학생들을 위시한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일단 한번 발전소를 구경한 사람들은 발전소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중요성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게 되었고, 심지어는 야당인사들까지도 전력회사의 노고에 칭찬을 아끼지 않게 하는 電力弘報의 승리였다.

大田을 비롯한 주요도시에는 電力文化館을 설치하고 전력홍보를 강화하였다. 이것은 국가사업에 대한 대국민 홍보는 물론이지만, 전력사업의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한 가스공급자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나 빌딩의 열병합발전 등 개인 사업자의 자가발전에 대처하기 위한 사전조치이기도 한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받던 독점기업이 손님을 불러들이고, 이해를 시키고, 긍정적으로 ‘우리 편’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뛰었다.


노조무력화?

문제의 노동조합은 어찌 되었는가? 구품즙 사장은 비록 석뇌력 사장을 통한 개혁을 순조롭게 추진하였지만 노동조합 문제는 매우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서해전력이 한구전력으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실질경영이 口사장에 의해 이뤄지듯 노동조합 또한 한구전력 노동조합의 지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口사장이 염려한 것은 만일의 경우에 발전소 근로자들이 들고 일어나면 어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로 판명되었다. 발전소 기술자들은 자신들의 집단행동이 산업을 마비시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차라리 조금 불이익을 당할지언정 대규모 정전사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이 포인트였다. 왜 그렇게 순순히 파업을 포기한 것일까? 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해전력이 추진하는 일을 보니 젊은 자신의 미래를 맡겨도 될 정도로 장래성이 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자, 경영진은 “점잖은 사원들을 좀 더 잘 대접해 주자”----이렇게 결심하자 노동조합에 대한 口사장의 철학은 전면적으로 바뀌고 말았다. 종업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낮은 임금으로, 그것도 ‘한 목소리’의 절대적 명령복종이라는 군대식 경영으로 걸음마 철강산업을 국제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포하제철에서는, ‘노조는 걸치적거리는 것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점잖은 노동자들, 성심을 다하는 사원들을 보고서는 ‘노조 무력화’로 방향을 전환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력한 노조를 만든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노조를 만든다? 그런 노조는 노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 전에 회사가 먼저 가려운 데를 긁어주어서 가능한 일인데, 오해할지 모르지만, ‘쓸데없는 노조’라는 의미가 아니라, ‘종업원은 주인이고 사장도 주인’ 이라는 아주 홀딱 벗고 주겠다는 이론이었다.

한구전력에서도 또 서해전력에서도, 노동자의 투쟁대상을 경영층이 아니라, 독립경영을 위한 상당부분의 권한을 쟁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부 쪽으로 쏠리게 하는 작전을 쓰면서도, 특히, 서해전력에 있어서는 石사장을 통해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정책에 앞장서 나가게 한 것이었다. 

문제는 풀리고 있었다. 회사 전체 분위기가 일하고 연구하고 뛰고 생각하고…. 

이렇게 되자 소문이 소문을 낳고, 드디어 中國 山東省에서 전력사업의 위탁관리를 의뢰해 오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관례의 내습

이런 서해전력 때문에 한구전력은 자연히 껍질을 벗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군-구 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회사조직 자동팽창, 일부 몰지각한 직원들의 물귀신 작전과 눈치작전이 더 이상 통할 수 없음은 주식시세가 증명해 주었다. 강 건너 불붙는 듯한 서해전력의 주가가 과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좀 더 오랫동안 교류를 하지 말고 남북격차가 더 벌어지게 내버려둬야 한다’는 억설처럼, 구품즙 사장은 西電과 韓電의 격차가 더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서해와 한구의 격차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한구 직원들은 한숨만 쉬고 있을 수 없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폭포수는 낙차가 클수록 세차게 흐르는 법--한구전력 직원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스스로 박차고 일어나려는 기운이 무르익었다. 노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제야 말로 구품즙 사장이 노리던 쓰리 쿠션 효과가 나타날 징조인 것이었다. 오래 공들여 가꿔온 결과가 빛을 발한다고 확신이 서던 어느 날, 口品즙 사장은 정부의 고위관료를 지냈던 印打燮(별명: Intercept)

씨가 그 자리를 밀고 들어오는 통에 그만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한구전력의 고질적인 문제를 처리하도록 기용했던 口사장이었지만, 정부는 정부대로 장관을 지낸 고위관료를 위해 역시 관례대로(?) 그렇게 사장을 바꾸고 말았다.


“뭣 좀 해볼까 하면 사장 바꿔치기 하니 뭐가 될 턱이 있나! 사장이 바뀌면 또 경영방침은 180°홱 바뀔 테지…. 韓救電力社長이 언제 무슨 끗발이 있어서 소신을 펼 수 있었던가! 그러니 맨 날 그 모양으로 한심스럽게 지내는 거 아니던가!”


서해전력 사원들이 한구전력에 대고 하는 볼멘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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