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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Jan 01. 2023

집단 무감각 사고---‘Meme’에 대한 생각

집단 무감각 사고---‘Meme’에 대한 생각

 2015

 

한 50년 전에는 일을 하는 ‘상세한 절차서’가 없어서, 사람들이 실수를 좀 했다. 이제는 품질관리에서 Business Process라는 이름으로 업무에 잘 활용된다. 그러나 그것은 막는 일에는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매우 큰 사고는 큰 화재-전염병-대 지진-대 홍수-지독한 가뭄 등 이상기후-전쟁 등으로 인해 하나의 강대한 제국도 멸망시키는데, 우리가 평소에는 예측도 대비도 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일 수 있다. 더 정확하게는, “뭐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설마…”라는 대중의 공통된 무감각 심리인 Meme 때문이다.


 

절차서 개정

어떤 조직이 일을 하는 데는 ‘업무 시스템(Business Process)’이 필요하고, 그 중에서도 절차서(Procedure)가 필수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이 시스템이나 절차서는 더 많고 복잡하게 된다. 관련 조직이 세분되므로 그 각 조직의 존재이유와 존재가치를 인정하려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어떤 시스템이나 절차서도 조직에는 필요한 것이지만, 틈새가 있는 경우가 나타나므로 자꾸 개정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BPR이다.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은 바른 절차로 비능률 등을 고치자는 취지일 것이다. 

작년부터 벌어진 국내외 발전소 사고들은, 품질인증을 받고 잘 갖춰진 시스템이 무색할 정도로 기대를 저버리고 발생해 버렸다. 소위 ‘사고’란 놈이 품질 시스템의 약점을 뚫고 들어와 “사고를 쳐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춘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대체 큰 조직의 업무 시스템에는 무슨 약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생각도 못한 사고

일본 H원전이나 한국 G원전에서는, ‘비상 시에는 비상발전기를 운전해서 냉각수를 공급하라’는 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시 정지된 원자로를 냉각시킬 비상발전기가 동작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는 예측을 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3중, 4중의 후비보호설비를 믿고 있었는데, 그 중 아무 것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사고가 생긴 것을 보면 시스템 속에 분명 약점이 있다.

지난 30년 동안 문제없이 지내왔기 때문에, 누군들 다 안전한 것으로만 생각했지, 저 거대한 쓰나미가 비상발전기고-배관이고-전선이고-연료고 뭐고 다 쓸어 가버릴 줄은 몰랐을 것이다. 


meme 

요즘 어쩌다가 우리 사회에는 이 단어가 상당히 많이 쓰이고 있다. 간단하게는 ‘무심한 유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meme은, 바꿔 말하면 많은 사람이 특별한 의식이 없어 문제 자체를 생각하지 못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2011년에 발매된 『지금 경계선에서』라는 책에서 ‘meme’이라는 낯 선 단어를 읽었다.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별 일 없었던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 상태를 괜찮은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믿어버리는 풍조를 말한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 많은 인원이라면 이는 Super meme이 된단다(레베카 코스타. 미국 사회학자).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조직적으로 분담시켜 놓았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을 깨고, 어느 날 갑자기 큰 문제가 생기니, 어떤 문제가 생길지 문제 상정 자체를 못 한단다. 

그래서 잉카제국도-크메르 제국도-로마제국도 도저히 망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도 망했다는 것이다. 몽골제국인들 왜 안 그렇겠는가?

사고 원인이 될 일이 ‘너무 큰 일’이라서 쉬쉬하며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던 것인지, 그것이 20년, 30년을 지나가면 점점 더 감각이 무뎌진다. 그 동안 수십 년 간 별 일 없었으니 무감각할 수 밖에. 이것은 조직이 클수록 큰 문제다.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비책을 시스템으로 준비했는데도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엔지니어의 식견으로는 최선이었겠지만 meme의 입장에서는 침투할 틈이 많았던 것. 

조직이 방대하면, 진도9의 지진과 초대형 쓰나미나, 발전소 지하 케이블 룸에 불이 날 것이라는 등, ‘누가(Who) 그런 만화 같은 상상을 했어야 하는지, 일이 벌어지고 나면 관련자는 많아도 책임질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이것이 큰 조직의 문제다. 

아주 원초적이고, 그래서 어쩌면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인데, 당연히 잘 되어 있겠지 하는 믿음에, 또는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니 아무도 생각을 못 했거나, 생각을 했더라도 발설하지 못하는 때문에 대형사고의 원인이 생긴단다. 

 meme에 대한 해결책은, 절차서를 초월하여 그 발전소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설비의 취약점을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더 큰 안목을 가지게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과 교육에 의한 착안일 것이다. 

어쩌면 다들 제 직분에 더 집중하고, 업무의 핵심에 몰두하면 시정(Reengineering)할 수 있는 일이다. 


장(長)이 할 일

사람들이 핵심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본업에서 먼 일을 너무 많이 하게 만드는 분위기라면 문제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조직이건 장(長)자 타이틀을 가진 모든 상사들은, ‘휘하조직이 본업이 아닌 것에 정신이 팔리지 못하게, 자기 직분에 집중하여 일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한국처럼 승진-이동-순환보직 때문에 어떤 자리도 “곧 이동할 텐데…” 하는, 마치 ‘뜨내기’ 같은 심리로 근무하기 쉬운 나라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노사문제-품질문제-안전문제 등은 현안이기도 하고 그 역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핵심 본업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일인만큼,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게 만들면 문제도 못 보고 예상도 못한다. 

번드레한 업무시스템보다 알맹이 있는 업무집중이 meme을 깨부술 수 있어 더 중요하다. 업무집중이 되면 자연 업무시스템도 고쳐진다. 


2015.2.16 영종대교 106중 추돌 사고

지난 2월 12일. 안개가 자욱했다던 영종대교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106중 추돌이라는 기록적인 사고가 벌어져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는데, 이게 바다 한 복판에 건설된 긴 다리 위 사고라서 더 마음이 섬뜩했다. 충돌의 여파로, 다리 한 쪽 어디가 트여서 차들이 바다에 떨어졌더라면…. 

이는 2011년의 천안∼논산 고속도로 84중 추돌사고를 뛰어넘는 역대 최다 추돌사고라 한다. 사망 2명, 부상 73명이라는 기록을 보면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왜 그 많은 추돌을 막지 못했을까?”일 것이다. 가시거리가 10여 미터에 불과한 농무가 사고의 원인이었다는데, 나 원 참, 앞에서 사고가 났으면 뒷 차들은 못 들어가게 했어야지….


농무 속 추돌 사고는 막을 수 없는 거야?


2014년 5월2일에는 상왕십리역에서 지하철이 추돌하여, 170명이 부상한 적이 있다. 그 때도 다들 “앞쪽에 전동차가 있으면 뒤 차가 달리지 못하게 할 수 없었을까?” 정도는 생각했겠지? 

어떤 기술이 적용되어 있었는데, 그게 하필 재수없게시리 고장이 났거나 무슨 수가 났겠지? 

이럴 때마다 엔지니어의 한 사람으로서, 갑갑하다. 

다들 그런 비상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데…

다들 그럴 땐 무슨 기술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그럴 땐 누군가가 좋은 기술을 적용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다들 안전하겠지 하면서 살고 있는데…

다들 알고, 다들 한 번쯤 신경을 썼던 것이지만, 막상 오랫동안 문제없이 지냈으니 별다른 걱정은 안 했는데, 요게 돌았나, 갑자기 엄청난 사고를 일으키다니….


고속도로에서-교량에서-지하철에서, 저게 남의 일이니 손가락질하지만, 우리가 맡고 있는 발전 프로젝트에서는 Meme이나 Super meme이 없을지 그걸 고민해야 한다. 

사고예방은 “작은 사고도 막겠다”는 쪼잔한(?) 생각을 갖지 않으면 못 한다. “뭐 그런 것 작은 것까지 얘기하냐?”라는 멋지고(?) 대범한 태도로는 못 막는다. 미세한 간극, 보잘것없는 Control Logic, 작은 이물질 한 조각, 작은 Bolt 조이기 하나에서 문제가 생긴다. 

사고예방을 위해 생각만 하거나 고민만 하고 말면 얼레리 꼴레리 바보다. 남들의 손가락질이 무서워서라도, 내 것부터 챙겨야 한다. 행동으로 옮겨서, 사고를 막기 위해, 지금 바로, 될 때까지 행동해야 한다.  


* 2022년 현재

9월의 태풍 ‘힌남노’가 몰고온 폭우는 P제철소 인근 ‘냉천’의 범람으로 이어져, 3개월 내에 공장이 정상 가동되는 것을 전제로 볼 때 약 2조 원의 피해를 입게 되었다고 한다. 

P제철은 “P시의 냉천 공원화 사업으로 강폭이 좁아져 물길이 막혔다”는 주장을 하는데, 그런 분석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냉천 공사 때에 비상상황에 대해 대비를 완벽하게 했어야 했다. 

이것도 Me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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