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은 두 개니까
‘잊는 법’
이별 후 상대방을 잊기 위해, 단점과 안 좋았던 것들을 억지로라도 생각해 보려 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겪은 몇 번의 이별 때마다 그러했다. 심지어 어릴 때에는 이별 직후 힘듦을 잊고 내 이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번호까지 매겨가며 그들의 단점들을 내 메모장에 나열한 경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그들을 잊었고 전혀 힘들지 않으며, 부정적 긍정적 감정 모두 소비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 마음은 동난 상태이기에 ‘저 방법이 효과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러나 이별의 원인이 어느 한쪽의 명백한 잘못이 아니고, 그저 상황 때문이며, 나름대로의 좋은 이별을 한 경우에도 상대방의 단점을 찾아야 할까?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힘듦을 덜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매 이별 때마다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게 헤어졌으니 좋은 것만 갖고 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안 그래도 힘든 이별인데 좋은 것만 가지고 가겠다고? 영원히 그 사람만 그리워하다가 독수공방 하며 쓸쓸히 뒈지란 거야 뭐야! “
그렇다… 그 사람만을 평생 그리워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어 그 사람의 장례식이 돼서야 보내주기엔 정말 좋은 방법이나, 우리는 그러면 안 되지 않는가?
비유하자면, 연애는 기차에 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다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같은 기차에 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다 보면 내가 됐던 상대방이 됐던 누군가는 내릴 시간이 찾아온다. 함께 사이좋게 내리는 것이 베스트긴 하겠으나 그런 이별은 정말 유토피아적이며 전생에 평생 홀로 살며 부처님, 예수님, 하나님, 알라신,.. 등등 만을 사랑하며 덕을 쌓지 않은 이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 그렇다고 그런 이별을 한 사람이 전생에 모태솔로라 조롱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말길 바란다.
‘기차에서 내리기’
어찌 됐든.. 상대방이 먼저 내린 상황이라면 우리는 기차에 홀로 남겨졌을 것이다. 둘만의 추억이 가득한 기차에 남아 추억팔이를 하다 보면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흐를 것이며, 밖에서 다른 기차를 기다리던 운명의 상대까지 지나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내려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부정적인 면만 보며 빨리 잊으려 한다면 그저 기차를 폭파시키면 된다. 그럼 확실하게 기차에서 내릴 수 있을 것이지만 둘만의 추억도 더럽혀져, 다시 회상하려 해도 지저분한 잔해 만이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이번엔 어떻게 잘 내렸지만, 다음 기차에서 내릴 때에도 또 폭파시킬 것인가? 다다음도, 다다다음도? 조금 우스운 말로 들릴 수 있지만, 폭파시킬 때에 우리 몸에 흠집이 나는 것도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인 ‘좋은 것만 갖고 내리기’를 시도해 보자. 함께 간 여행, 같이 찍은 사진, 영양가 없지만 까르르 웃으며 나눴던 대화와 농담들, 함께 데이트했던 장소, 그 사람의 취향과 향기, 목소리, 말투 하나하나까지 다 챙겨보자.
문이 너무 좁다. 이 많은 것들을 다 챙겨 내리기엔 내 힘도 부족하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좁은 문을 뚫고 다 챙겨가는 건 무리다. 그렇지만 아직 잊고 싶지 않은걸, 나에겐 하나하나 너무 소중한 추억이고 행복했던걸. 그럼 조금만 더 기차에 머무르자.
추억들, 기억들을 정리하며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자.
가끔은 창 밖도 보며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보자. 창문을 열어놓고 기차에 앉아 달리다 보면, 내가 손이 부족해 쥐고 있지 못했던 추억들이 날아가기도 할 거다. ‘이 정돈 보내주자 ‘
그러다 보면 슬슬 추억을 잡고 있던 손도 저려오고, 기차에 머무르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을 놓아주는 것보다 가슴이 답답한 순간이 올 거다. 그때 내리면 된다.
이번에 챙기는 짐은 저번보다 훨씬 가볍다. 우리가 같이 나눴던 시시콜콜한 대화들은 흐릿해졌고 그가 좋아했던 것들 중엔 이미 내 것이 되어버린 것도 있어,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된다. 처음에 좁게만 느껴졌던 기차 문은 이제 넉넉하게 느껴지고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의 속도도 기차에서 내리기에 적당하다.
이 정도면 좋은 것만 갖고 내리기 성공이다!
이제 당신은 다른 기차에 새롭게 탈 준비도 되었고, 또는 조금은 혼자 걸으며 나와의 시간을 즐길 준비도 되었다.
글을 다 쓰고 나니, 왠지 “시간이 약이다”라는 뻔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처럼도 보인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굳이 더럽히고 안 좋은 걸 끄집어내지 않아도 당신은 괜찮아질 거란 것이다. 사람마다 기차에서 내릴 수 있게 되는 시간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일주일, 누군가는 한 달, 아니 6개월, 그보다도 더 필요할 수 있다. 그래도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다 보면 분명히, 언젠가는 아픔이 나아질 것이다. 충분히 아파하되, 때론 미래에 기차에서 내리며 미소 짓는 내 모습도 생각해 주자.
아, 물론 이렇게 정성을 쏟을 이별이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엔 쌩쌩 달리는 기차 안에서 그 사람이 내리기 전에 창문으로 밀쳐서 내리는 걸 도와주자!